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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기 900년 서라벌 랜드마크, 미탄사 3층탑 보물 된다
[헤럴드경제=함영훈기자] 황룡사와 미탄사는 지금의 경주 북천(北川)의 남쪽에 있는 큰 절이다. 북천은 지금 경주 도심의 북쪽에 있지않고 남쪽에 있음에도 ‘북쪽에 있는 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이는 과거 북천의 남쪽에 큰 사찰을 중심으로 거대한 도시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거대한 황룡사가 나홀로 시내 바깥에 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왕실-백성과 근거리에서 호흡하던 불교 사찰은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야 산으로, 심산유곡으로 은거했다.

미탄사(味呑寺)는 황룡사 남쪽에 위치한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 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추정되며, 문지(門址)도 2차례 이상 중건된 것으로 확인된다.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이 변화하는 과도기적 요소를 지닌 석탑이다. 석탑이 제작된 것으로 짐작되는 9세기 혹은 10세기 초에는 앞 시대보다 석탑의 크기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흐름과 달리 드물게 규모가 큰 편이라 그 가치가 주목된다. 9세기 혹은 10세기 초는 서라벌이 콘스탄티노플, 뭄바이, 장안 등과 함께 세계5대 도시에 들 정도로 인구 100만의 엄청난 세계적 명성을 구가하던 시기였다.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慶州 味呑寺地 三層石塔)’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높이 6.12m의 총 35매의 부재로 구성된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1980년 이전까지는 기단부와 탑신부(塔身部, 몸돌= 각 층을 이루는 부분)의 일부 부재가 소실된 채 방치되어 있다가 1980년에 남은 부재들을 활용해 복원됐다. 소실된 부재는 새 부재를 치석(治石, 돌을 다듬음)하여 조립하였다.

파손되고 결손된 부재는 새 재료로 보강ㆍ보충하여 구 재료와의 이질감은 있지만, 신라석탑 기초부의 형식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조사를 실시한 점과 그 형태가 정연하고 적절한 비례감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특히, 일반적인 석탑의 판축(板築)기법과 달리 잡석(雜石)과 진흙을 다져 불을 지피는 방식으로 한 단이 완성될 때마다 굳히면서 쌓아나가는 기초부의 판축 축조방식을 사용한 점이나 기단부 적심(積心:초석 아래 돌로 쌓은 기초 부분) 내에서 지진구(地鎭具)가 출토된 점 등 특이하고 학술적인 의미가 있어 한국석탑에 관한 연구에 실증적 자료로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미탄사 삼층석탑의 보물 지정예고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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