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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의 선택 트럼프] 구겨진 미국식 민주주의… “선거 제도 개선 필요”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어느 때보다 극심한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된 이번 대선은 미국 정치의 위신을 땅바닥으로 추락시켰다. 이에 변화한 정치 환경에 맞게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8세기의 유물 간접선거, 언제까지…

이번 대선은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했지만, 실제 득표는 힐러리 클린턴이 더 많이 가져갔다. 9일 오후 3시 현재(현지시각ㆍ전국 개표율이 92%), 트럼프의 득표수는 5946만여 표(47.5%)로, 힐러리(5967만여 표ㆍ47.7%)보다 약 21만 표가 적다. 그럼에도 실제 당락을 가르는 선거인단 수에 있어서는 트럼프 290명, 힐러리 228명이 됐다.

이는 득표와 무관하게 후보별 선거인단 확보수로 승패를 가르는 미국의 독특한 선거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 대선은 이중 절차로 치러진다. 1차적으로 주(州)별 유권자 선거를 치러 각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이 어느 후보에게 투표할 지 승자독식의 형태로 결정되며, 2차적으로 이들 선거인단 538 명이 유권자의 뜻에 따라 각 후보에 투표를 한다.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간접선거인 것이다.
[사진=123rf]

이런 방식은 18세기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는 교통ㆍ통신 수단이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았고, 선거 관리도 쉽지 않아 직접선거가 물리적으로 어려웠다. 또 민주주의 발달 초기여서 직접선거를 치를 경우 중우정치의 문제가 생겨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소수 경합주에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쥐어줌으로써 과도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대선에도 후보들은 플로리다,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등 주요 경합주의 표심을 얻기 위해 막판까지 총력을 기울였다. 판세가 박빙일 경우 더욱 심해진다. 반대로 양당의 텃밭이라 불리는 지역들의 영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선거인단 제도는 유권자들의 표를 많이 얻은 후보가 탈락하는 비민주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조지 W. 부시 당시 공화당 후보와 민주당 소속 앨 고어 부통령이 맞붙은 2000년 대선이 그랬고, 이번 대선도 그럴 가능성이 10%가 넘는다는 선거분석기관의 전망이 있기도 했다.

▶양극화된 민심… 서열투표제(RCV)가 대안될까

메인 주(州)에서는 미 대선(11월8일)과 같은 날 치러진 주민투표 하나가 정치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모든 선거에서 서열투표제(RCVㆍranked-choice voting)를 도입할 지 여부를 놓고 주민들의 의견을 구한 것이다.

서열투표제는 현재처럼 유권자 가장 선호하는 1명의 후보만 골라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후보들에 대한 선호 순위를 매겨 투표하는 것을 말한다.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가 없을 경우 최하위 후보를 탈락시키는 대신, 그에게 투표한 유권자들의 2순위 선호 후보에게 표를 나눠주는 절차를 과반수 후보가 나올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민주ㆍ공화 거대 양당의 열성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군소정당이나 무당파 유권자들도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소수 정치성향 유권자들의 표가 사표(死票)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권위자 래리 다이아몬드 스탠퍼드대 교수는 최근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글에서 “양극화, 정치적 교착 상태, 금권 정치가 미국 유권자들을 소외시켰다”며 서열투표제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정치는 양당 모두에서 아웃사이더 돌풍이 일고, 자유당의 개리 존슨,녹색당의 질 스타인 등 제 3당의 후보들의 지지율이 크게 올라갈 정도로 양극화가 극심해졌다. 기존의 양당제로는 포괄하기 힘들만큼 민심이 분화한 것이다.

서열투표제가 도입되면 후보들은 더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기 위해 극단적인 주장보다는 중도적인 입장에서 더 폭넓은 유권자들을 포용하는 주장을 할 것이라고 래리 교수는 말한다. 또 후보 간 타협이나 연대도 가능해져 사회 통합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금권선거 끝낼 수 있을까

미국 선거는 ‘쩐(錢)의 전쟁’이다. 올해 대선에 후보자와 정당, 이익집단이 들인 돈은 무려 25억 달러(2조84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200 달러 이하 소액 기부자들의 순수한 ‘기부’도 있지만, 기업 및 이익집단의 ‘투자’도 있다. 헤지펀드 매니저이자 환경운동가인 토머스 스타이어는 민주당과 그 후보에게 5700만 달러(650억 원)를 기부했고,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재벌인 셸던 애덜슨은 4700만 달러를 공화당 쪽에 냈다. 한 분석에 따르면 올해 대선에서 200달러 이상을 기부한 사람은 0.44%에 불과하며 이들이 낸 돈이 전체 금액의 70%를 넘는다.

특히 2010년 미국 정부는 개인당 한 후보에 지원할 수 있는 선거자금을 4800 달러로 제한했지만, 대법원은 기업이나 노동조합이 특정 후보를 지원하는 데 지출하는 광고와 홍보비에 제한을 둘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외곽 후원단체 ‘팩(PAC)’의 영향력이 커졌다.

물론 돈으로 표를 산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나 기업과 이익단체로부터 거액의 후원을 받은 정치인이 그들의 입김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롭게 정책을 펼칠 것인가에 대한 의심은 계속되고 있다.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했던 지점도 이 부분이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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