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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순실이 삼킨 이슈] 고 백남기, 5ㆍ18열사묘역서 영면
[헤럴드경제] 고(故) 백남기 농민이 한 줌의 재로 돌아가기까지 42일이 걸렸다.

농민 백남기씨가 6일 광주 망월묘지 3묘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경찰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약 10개월간 사경을 헤메다 지난 9월 25일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한지 꼭 42일 만이다.

망월묘지 3묘원은 ‘5·18 구묘역’ 또는 ‘망월동 묘역’으로도 불린다. 1980년 이후 5·18 희생자 유해가 안장됐고,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가 숨진 이들이 안장되면서 민족민주열사묘지로 알려졌다.

향년 6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농민 백남기씨는 1947년 전남 보성군 웅치면에서 태어나, 1968년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해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박정희 정권에서 2차례 제적당한 뒤 1980년 ‘서울의 봄’ 때 복학해 총학생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5ㆍ17 비상계엄 확대로 신군부에 의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3ㆍ1절 특사로 풀려나 보성으로 내려간 뒤 농민의 길을 걸었다.

백남기 농민은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동료들이 정계에입문해 성공가도를 달리던 시절 “죽은 사람들도 있는데 살아남은 자가 무슨 공을 따지겠느냐”며 5ㆍ18 유공자 신청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한 백남기 농민은 경찰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고인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때 내걸었던 쌀값 21만원 보장 공약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다.

백남기 농민은 경찰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지 317일 만인 지난 9월 25일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했다.

고인에 대한 5ㆍ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심의는 유족의 신청으로 심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이르면 올해 말 백남기 농민이 5ㆍ18 유공자로 결정되면 그의 시신은 망월공원묘지에서 500여m 떨어진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될 수 있다.

고인의 장례위원회 관계자는 “5ㆍ18 유공자로 인정되더라도 국립묘지로 이장하는 방안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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