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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기과제에 치우친 과학기술 ‘암울한 미래’
R&D 예산 연평균 증가율 4%대 그쳐
이전 10년간 증가율의 절반에도 미달

현안 위주 투자 미래부 장기과제 소홀
기초과학투자 매년 줄어 5%대로 감소
프로젝트에 목매는 연구자 사기 추락


한 때 국가경쟁력 제고 최우선 정책이던 과학기술관련 정책이 박근혜 정부들어 정부 정책 우선순위에서 뒤쳐지면서 연구성과가 크게 부진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 과학분야 정책 전문가와 연구자들도 지위나 입지면에서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으면서 자부심도 떨어지고 있다.

특히 기초과학 투자를 비롯해 과학기술 분야 예산이 매년 축소되고 성과도 부진하면서 오히려 과학기술 분야의 ‘암흑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가 R&D 투자 연간 증가율 감소=4일 기획재정부와 미래창조과학부 등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은 2013년 17조1000억원, 2014년 17조7000억원, 2015년 18조9000억원으로 소폭 증가하는데 그쳤다. 2016년은 19조1000억원으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고, 2017년 예산 역시 올해대비 1.8% 늘어난 19조4000억원으로 편성돼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2017년까지 R&D 예산은 총 2조3000억원 늘었다.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R&D 예산 연평균 증가율도 4%대에 머무를 전망이다. 초기 3년 동안은 매년 5~6% 증가율을 보였지만 올해와 내년도는 낮은 증가율(1~2%)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전 10년은 R&D 투자 연평균 증가율 10%가 넘었다. 지난 이명박 정부 때만 해도 R&D 예산이 2008년 11조1000억원에서 2012년 16조원으로, 4조9000억원 증가한 것과 대조된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국정기조로 내걸어 과학기술계는 R&D 예산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지난 정부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 것이다.

▶과학기술분야 예산은 제자리 걸음…연구성과는 ‘후퇴’=과학기술분야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올해 예산은 4조7554억원으로, 2013년(4조1057억원)에 비해 6500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2017년도 예산 증가를 감안하더라도 이명박 정부 5년동안 9100억원이 증가한 것보다 작을 것으로 보인다. 인건비 상승 등을 감안하면 실제 과학기술 분야 투자는 제자리 걸음을 한 셈이다.

이처럼 과학기술분야 출연연 투자가 줄어들면서 연구성과도 부진에 빠졌다. 출연연 특허 출원ㆍ등록 현황을 살펴보면 2013년 각각 9907건, 6746건이었던 특허출원ㆍ등록건수는 ▷2014년 8832건, 6581건 ▷2015년 8294건, 5062건으로 매년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올해도 6월 기준 각각 3804건, 2519건에 그치면서 감소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출연연의 국내외 SCI 등 논문게재 건수도 ▷2012년 9196건 ▷2013년 9744건 ▷2014년 9516건 ▷2015년 9115건으로, 2013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19조 R&D 예산 중 기초과학 투자는 고작 6%=박근혜 정부 들어 과학기술분야 투자가 한국형발사체사업ㆍ중입자가속기개발사업 등 몇몇 거대 응용과학분야에 집중되면서 기초과학분야에 대한 투자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계획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2014년 1조6000억원 정점을 찍은 기초과학분야 투자는 2015년 1조2000억원, 2016년 1조1000억원으로 매년 줄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2012년 7%던 정부 R&D 투자 중 기초과학분야 비중은 지난해 6.4%였으나 올해는 5.86%로 떨어졌다.

과학기술계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출범 초에는 기초과학분야에 의욕적으로 투자했지만, 경제활성화 논리에 밀려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2년 연속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지원되는 기초과학분야 연구비도 정부지정 과제가 대부분이고 과제 5개 중 4개는 5000만원 이하의 소액 지원 과제다.

이 관계자는 “19조원이 넘는 정부 R&D 예산 중 고작 6% 정도만 기초과학 연구자가 자발적으로 제안하는 과제에 주어진다”며 “미국은 전체 정부 연구비의 47%를 기초과학에 투자하며, 대부분이 연구자가 연구 주제를 정한다”고 말했다.

최근 방한한 라마크리슈난 영국왕립학회장은 “연구 주제를 결정하고 연구비를 지원하는데 있어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내려오는 ‘탑다운’ 방식 대신 현장 연구자들의 아이디어가 반영될 수 있는 ‘바텀업’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분야 정책ㆍ연구자 자부심은 ‘땅’으로= 정부의 R&D지원이 줄고 연구 성과가 부진하다보니 과학분야 정책ㆍ연구자들의 위상도 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과학기술분야 사령탑의 부재가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는 과학기술부가 존재하면서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었다. 과학기술부 장관을 부총리로 임명하고 과학기술부 산하에 과학기술혁신본부(장관급)를 둬 정부 R&D 업무를 총괄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를 합쳐 교육과학기술부를 만들면서 교육과 과학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으나, 교육 중심 교과부로 전락해 과학기술이 홀대된 바 있다.

이번 정부에서는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하는 창조경제를 국정철학으로 하고, 이를 전담하는 부서로 미래부를 만들었다. 그러나 미래부가 단기 현안 과제가 많은 ICT에 매몰되다 보니, 장기적 과제를 주로 다루는 과학기술 행정은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부의 과학기술 담당 제1차관마저 과학기술 분야가 아닌 인물이 연속적으로 기용되면서 과학기술인들의 소외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연구자들의 사기도 뚝 떨어진 상황이다.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절 정부 출연연의 연구원 정년을 61세로 낮춘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65세로 정년이 환원되지 않고 있다. 출연연의 연구원들은 한창 일할 나이에 정년을 맞는 아쉬움도 있지만, “출연연에 들어갈 때는 ‘금덩이’, 나올 때는 ‘돌덩이’가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적인 상처를 입고 있다.

연구원들이 연구과제 중심 운영체제(PBS)에 의해 연구과제 수주와 성과평가에 목을 매는 어려운 노릇을 하다 보니 장기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전문연구를 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한 관계자는 “연구팀들이 연구에만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수주에 목을 매고 있다”며 “단기 소액과제라도 따내지 못하면 팀 해체의 위기까지 몰려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전=박세환 기자/ gr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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