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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페라 ‘로엔그린’ 한국정치와 닮았다
-16·18·2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사회가 원하는 개혁은 또다른 독재
“나만 따르라”는 불통에 대한 경고
박근혜 정부 ‘최순실 게이트’와 유사
국내 프로덕션 독일어 원어 첫 작품



정치적 혼돈기, 새로운 세력에 대한 열망.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나타났으나 그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참지 못한다. 맹신과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하는 지도자, 심지어 그는 메신저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 대중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지금 한국 정치상황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바그너의 낭만주의 오페라 결정판으로 꼽히는 ‘로엔그린’의 이야기다.

‘고전이 매력적인 이유는 스토리에 ‘구멍’이 많아서’라는 말이 있다. 연출가들 사이 흔히 언급되는 이야기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약간은 헐거운 듯한 이야기 플롯이 오히려 해석의 다양성을 불러온다는 뜻이다. 발레리나의 전유물이었던 ‘백조의 호수’에 발레리노들을 대거 출연시킨 매튜본 ‘백조의 호수’가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다. 연출가의 새로운 시각은 고전의 묘미를 다시 한 번 깨닿게 한다. 국립오페라단은 오는 16일, 18일, 20일 3일간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로엔그린’을 공연한다. 2008년 국립오페라단 ‘살로메’ 연출로 호평을 받은 카를로스 바그너가 연출가로 나섰다. 그의 로엔그린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정치에 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선의의 독재자, 대중의 선택은=로엔그린의 기본 플롯은 동생을 죽였다는 누명을 쓴 여주인공 ‘엘자’를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이 구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동생을 숨긴 건 세습에 눈이 먼 텔라문트 백작과 그의 부인이자 마녀인 오르트루드다. 텔라문트 백작은 엘자를 국왕(하인리히)에게 동생을 살해했다고 거짓을 고하고, 국왕은 엘자에게 그녀를 대신해 결투에 나설 기사를 부르라고 지시한다. 이때 엘자를 구하러 나타난 것이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이다. 다만 로엔그린은 엘자에게 자신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어디 출신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묻지 말라고 요구한다. 곤경에 처했던 엘자는 ‘백마 탄’ 기사 로엔그린의 뜻대로 그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지만, 인간적 호기심과 불안함에 물어서는 안 될 질문을 하고 만다. 로엔그린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대신 엘자와 이 세상을 등지고 자신이 속한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는 게 전체적 흐름이다.

언뜻 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 ‘판도라의 상자’의 변형인 듯한 이 이야기엔 사실 정치적 함의도 상당하다는게 연출가의 설명이다. 텔라문트는 기존 정치세력을 대변하고 로엔그린은 새로운 정치세력, 엘자는 일반 국민을 상징한다. 텔라문트나 로엔그린 모두 엘자를 볼모로 세력다툼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게 연출가의 시각이다. 카를로스 바그너는 “로엔그린이 대변하는 것은 유토피아와 같은 세상으로, 정치가가 통치를 하지 않고 모두가 정치가가 되는 상황”이라며 “누구도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 상황에서 원하는 것을 모두 할 수 있는 정치상황을 재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신진세력으로 나선 로엔그린이 ‘자신에 대해 묻지 말라’는 것에 주목한다. 사회가 원하는 개혁이라고 할지라도 또 다른 독재의 시작일 수 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그의 존재를 궁금해하는 엘자의 호기심은 쓸데없이 일을 망치는 치기어린 감정이 아니라, 함께 시대를 살아갈 리더에 대한 정당한 요구로 읽힌다. 더구나 마지막 장면에서 로엔그린은 신진세력의 ‘파견자’일 뿐, 그가 신진세력 자체는 아니라는 것도 밝혀진다.

카를로스 바그너는 이것을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과 정치인의 관계로 재해석했다. “민주주의 신봉자인 나는 우리가 어떤 정치인를 뽑았을 때 그에게 모든 권한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정치인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해야하고, 우리 권리를 맡긴 만큼 그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사회를 광풍으로 몰아간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게이트’와 유사한 지점이 보이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나의 존재가 무엇인지 묻지 말라는 ‘불통’과 그저 나를 믿고 따르라는 무조건적 복종은 더이상 21세기 한국사회에선 통용되기 힘들다. 김학민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은 “이번에 선보이는 로엔그린은 특정 시대, 특정 국가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현재 혼돈기를 겪고있는 한국 정치상황과 100% 일치하지 않더라도 유사한 지점들이 보이며 우리 상황을 되돌아 보게 하는 것이 예술의 묘미이자 역할”이라고 말했다.

시대가 사라진 무대, 현대를 입다=연출가의 의도대로 로엔그린은 새로운 옷을 입었다. 배경은 10세기초 브라반트지만, 세트만 보면 어느 시기인지 알 수 없다. 그리스 시대 원형극장이면서 동시에 현대 국회의사당 본관 디자인을 차용했다. 등장인물의 의상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조명을 활용해 선과 악, 신진세력과 구세력의 대비를 극대화할 예정이다.

김학민 예술감독은 “종교적 의미에 집중했던 과거의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지구촌의 모든 현대인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현대판 구원의 메시지에 집중, 미래지향적 ‘로엔그린’을 선보일 예정”이라며 “최근 세계 오페라 무대의 혁신적인 경향을 국내 오페라 무대에 소개, 대한민국 오페라의 미래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로엔그린은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는 점 이외에도 국내 프로덕션이 독일어 원어로 공연되는 최초공연이라는 의미도 있다. 국립오페라단이 1976년 ‘로엔그린’을 번안 오페라로 초연한 적은 있으나, 독일어 원어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상 국내에 처음 공연되는 오페라 로엔그린의 주인공인 로엔그린 역에는 한국인 테너 최초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데뷔한 김석철이, 엘자 역은 2013 스위스 바젤 극장에서 엘자 역으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데뷔 극찬을 받은 소프라노 서선영이 맡는다. 하인리히왕 역에는 베이스 미하일 페트렌코가, 텔라문트 역에는 바리톤 토마스 홀, 오르투르드 역에는 메조소프라노 카트린 위놀드가 나선다. 미국 워싱턴내셔널오페라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인 필립 오갱이 지휘봉을 잡았다. 티켓은 1만원부터 15만원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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