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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0 주거취약자 노리는 ‘방 쪼개기’ 급증
집주인 임대수익 높이려 다가구 개조
세입자 고시원보다 넓고 월세 싸 선호
市 3년간 492건 단속, 성북구 ‘최다’
강제금 평균 168만원, 처벌수위 약해
불법건축물로 화재 발생시 피해 심각




서울의 한 대학가에 있는 다가구 주택에는 16개의 계량기가 달려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8가구로 구성된 빌라였지만, 실제론 16가구가 살고 있다는 의미다. 한 가구를 두 가구로 늘리는 상술(?)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일부 신축 오피스텔의 도시가스 계량기는 기준 가구 수의 3배에 달하기도 했다. 인근 한 공인 관계자는 “임대 수익을 올리려 신축 오피스텔이나 다가구 주택을 개조하는 일은 예전부터 많았다”면서 “불법이란 걸 알면서도 처벌이 약하고 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하숙집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대학가 인근 임대사업이 안정적인 수익형 부동산으로 주목받으면서 이른바 ‘방 쪼개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방 쪼개기’란 부동산 등기부등본상 전유부분을 쪼개 방을 늘려 임대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소방시설과 이동통로가 기존 구조에서 변경돼 화재 등 사고 발생 때는 큰 피해가 우려된다.

임대수익을 높이려는 일부 집주인들의 이른바 ‘방 쪼개기’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세입자들은 고시원보다 넓고 월세가 싸다는 이유로 암묵적으로 계약을 하는 현실이다. 엄연히 불법건축물인 데다 화재가 발생하면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진은 서울의 한 빌라촌 전경.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1일 서울시의 ‘방 쪼개기 단속 현황’에 따르면 최근 3년간 492건이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단속 건수는 2013년 174건에서 2014년 146건으로 줄었지만, 지난해 172건으로 다시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성북구가 88건으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서대문구(87건), 성동구(57건), 동대문구(42건), 관악구(40건) 순이었다. 서대문구는 2013년 8건에서 2014년 이후 42건, 37건으로 급증했다. 성동구와 성북구도 지난해 각각 30건으로 늘었다.

정부의 단속망을 피해 ‘방 쪼개기’는 임대시장의 그늘 속에서 똬리를 틀었다. 수요자이자 피해자는 20~30대 젊은 층 위주의 주거취약자들이 대부분이다. 주거비를 줄이고자 불법을 알면서도 계약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비좁은 고시원보다 생활환경이 낫고 면적이 조금 더 넓어서다. 서대문구의 한 원룸에서 거주하는 김 모(27) 씨는 “얇은 벽을 세워 방을 나누다 보니 옆집에서 화장실 변기에 물만 내려도 소리가 들릴 정도”라면서도 “고시원의 소음이 더 심한 데다, 싼 월세에 넓은 방을 쓸 수 있어 그나마 여기가 낫다”고 했다.

방 쪼개기를 포함한 불법건축물은 계속 늘고 있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살펴보면 불법건축물은 2011년 7만5882동에서 지난해 10만7544동으로 증가했다.

안일한 정부의 대책은 과제로 꼽힌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행 강제금은 지난해 기준 평균 168만원에 불과하다. 징수율은 2011년 81.3%에서 지난해 57.9%로 줄었다.

약한 처벌 규정이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한참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방 쪼개기가 적발되면 원상 복구 명령을 하고, 이를 어길 때 이행 강제금을 징수하는 순서로 진행한다”며 “그러나 강제금보다 임대 수익이 높아 복구 명령을 무시하는 집주인이 많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세입자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는다는 점이다. 기존의 공간을 쪼개면서 자투리 공간까지 주거면적에 포함해 소방ㆍ환기시설이 협소해진 탓이다. 자칫 화재라도 발생하면 큰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 지난해 1월 130명의 사상자를 낸 의정부 주택 화재가 대표적인 예다. 여러 개의 방을 나눈 스티로폼 구조물이 불길을 키웠기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불법건축물이라는 이유로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 법적인 충돌도 빈번하다. ‘방을 쪼갠’ 사실을 듣지 못한 채 계약한 세입자들도 있다. 일부 세입자는 입주 이후 집주인에게 보증금이나 월세를 깎아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귀찮더라도 원룸 계약 때부터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미리 떼어 확인하라고 조언한다. 은평구의 한 공인 관계자는 “우선 건물이 단독ㆍ다가구인지, 구조상 독립성을 갖춘 집합건물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집합건물이라면 전유부분에 원룸 동호수가 적혀있는지 살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정찬수 기자/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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