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이단을 자처하며 유가의 말기적 폐단을 공격하고 송명이학(宋明理學)의 위선을 폭로한 그는 결국 혹세무민의 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갇혀 76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명등도고록/이지 지음, 김혜경 옮김/한길사 |
김혜경 한밭대 교수에 의해 국내 최초 완역돼 나온 ‘명등도고록’(明燈道古錄ㆍ한길사)은 이지의 말년작에 해당한다. ‘등불을 밝히고 옛일을 논한다’는 뜻의 ‘명등도고록’은 동시대 지식인들과 대화하며 유가 경전을 해설해나가는 형식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로 시작하는 이지의 식견이 장마다 붙어있다. 그의 유명한 저서 ‘분서’(焚書)가 탱천하는 기상과 문장으로 읽는 이들을 흔들었다면, ‘명등도고록’은 경세가로서의 깊이를 보여준다. 이 책 역시 유가에 대한 날 선 비판을 보이지만 유가 자체를 부정한다기 보다 유가적 가치의 깊이를 더해 보편성으로 나아갔다는데 새로움이 있다.
이지는 유가의 핵심사상에서 경학자들과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유가의 핵심 사상인 도(道)를 풀이한 걸 보면, 유가는 가치판단의 기준인 리(理)를 깨닫는 마음을 ’도심‘(道心)이라 하고 욕구를 깨닫는 마음을 ‘인심’(人心)이라 하는데, 전통적인 유가의 시각에서는 도심으로 인심을 적절히 조율해야 인간의 모든 행위가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본다. 즉 도심이 인심 위에 있다는 것이다. 도심을 확고히한성인은 애당초 범인과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이지는 달랐다. 마음은 온전히 하나이며 다만 그 움직임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각 개인에 의해 운용되는 바를 인심이라 일컫고 이런 지각운동을 주재하여 하늘 땅 사람 만물의 크나큰 바탕이 되는 것을 도심이라 했다.
도심과 인심이 다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지각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도심과 인심의 위계를 뒤집는 차원을 넘어 아예 상하관계라는 틀 자체를 부순 것이다. 성인과 범인의 경계는 없으며 누구나 노력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예(禮)에 대한 해석도 다르다. 이지의 사상의 핵심은 인간의 자율성에 있다. 이지는 “사람이 곧 도이고 도가 곧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지는 이를 “사람은 본디 스스로 다스리는 존재”라고 표현한다. 군자조차도 “감히 자신의 기준으로 사람을 다스리지 못한다”. 여기에 이지의 시공을 초월한 보편성,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 자리잡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의미가 동등하다는 말이다. 그는 억압이나 속박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야말로 만물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고 여기에서부터 발전이 이뤄진다고 역설했다.
신분제와 봉건제, 유가가 깊게 뿌리 내린 16세기 중국에서 이는 이단일 수 밖에 없없다.
‘명등도고록’은 이지의 비판정신의 정수라 할 만하다. 유가의 폐해를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그는 새로운 살 길을 모색한다. 그런 그의 비판정신은 오늘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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