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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동일한 과로사…업무상재해 누구는 인정, 누구는 불인정
-일각에선 “산재 인정 기준 오락가락”


[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이른바 ‘과로사’(過勞死)의 업무상재해 인정을 두고 법원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과로에 대한 법원의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없어 소송당사자들이 혼선을 빚는만큼 일목요연한 정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같은 과로사인데,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사건1과 인정받지 못한 사건2의 사례를 통해 그 근거를 들여다본다.

▶사건1=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헌재사무관 “업무상 재해“

지난 9월 서울행정법원은 헌법재판소 사무관으로 일하던 A(37)씨의 죽음이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A씨는 지난 2014년 8월 대로변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숨졌다. 사망 전 A씨는 통합진보당의 정당해산심판 사건의 지원업무를 맡은데다 국정감사 준비와 모친상이 겹쳐 과로한 것으로 드러났다. 숨지기 6개월 전 그는 약 26시간~62시간 남짓의 초과근무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A씨의 과중한 업무와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근경색 발병악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정당해산심판 사건에서 장시간 집중하면서 업무를 수행하느라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사무관업무를 처음 수행하는 상황에서 일반적인 참여사무관에 주무사무관 역할까지 해야해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심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또 국정감사 업무에 익숙하지 않았던 A씨의 업무상 부담이 컸을 것으로 재판부는 판단했다.

비록 A씨가 심장병에 대한 가족력이 있고 10년간 하루에 담배 10개비를 피우는 등 흡연력이 있었지만, 재판부는 A씨의 젊은 나이를 고려했을 때 과거 흡연력이 심근경색을 유발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사건2=한파 속 취재 심정지 일으킨 기자 “업무상 재해 아냐”

반면 지난해 10월 서울행정법원은 한 연예스포츠지의 사진 기자로 일하던 B씨의 죽음은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B씨는 지난 2012년 12월 자택에서 갑작스런 심정지로 쓰러졌다. 이날 B씨는 연말 가요대제전 취재를 하느라 영하의 추위 속에서 8시간 남짓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또 사망 직전 일주일 간 총 67시간 30분을 근무하고, 사망 전 3개월 간 주당 평균 58시간을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B씨가 정상 근무시간을 초과해 근무한 사실은 있지만 이같은 근무시간만으로 취재기자로서의 업무를 수행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B씨가 더 과중한 업무를 수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부검을 하지 않아 B씨의 사인을 추정하기 어려운 점, B씨가 15년 이상의 기간 동안 매일 한 갑 이상 담배를 피운 점을 재판부는 고려했다.

법원은 과로와 사망 간 인과관계를 판단할 때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판례를 종합하면 법원은 주로 ① 최근 업무량의 변화 ② 동종 업종 종사 근로자들의 통상 업무시간 ③ 업무에 대한 숙달 정도 ④ 망인의 건강상태와 기타 사정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로’에 대한 구체적 판단기준 없이 재판부가 사정을 종합하다보니 시민들 사이에선 재판부가 입맛에 따라 ‘오락가락 판결’을 내린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또 패소한 당사자가 무조건 항소할 수 밖에 없어 사회적 비용이 낭비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건축설계사 C씨의 유족은 4차례의 판결을 거쳐 지난 2월 서울고법에서 “C씨의 사망을 업무상재해로 볼 수 없다”는 확정판결을 받았다. 패소한 측이 번번이 항소하며 4차례 서로 다른 재판부에서 판결을 받게 됐다.

C씨는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설계업무를 담당하며 휴무 없이 출근했고, 뇌동맥류 파열로 숨졌다. 1심은 “C씨가 이미 업무상황에 익숙해졌을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유족이 항소했고, 항소심은 “A씨가 휴일없이 계속 출근했고 근무시간이 점차 늘어나는 등 업무가 과중됐다”며 A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공단 측이 항소했고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휴무가 없었지만 저녁 8시 이전에 퇴근한 만큼 충분한 휴식이 가능했다”며 A씨의 사망을 업무상재해로 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전문가는 과로에 대한 법원의 일정한 판단기준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박소민 노무사는 “일정한 기준이 있을 때 유족들이 소송에 들이는 비용이나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며 “판례가 축적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부적으로 양형기준과 같은 과로에 대한 기준을 만드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yea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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