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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역사에 갇힌 아이들…긁을수록 덧나는 상처들
데뷔10년 김은성 작가의 ‘희곡 2편’
‘썬샤인의 전사들’
위안부·제주4·3사건·한국전쟁…
소설가 꿈꾼 소년병 통해 사연풀어내
‘함익’
여자 햄릿 내세워 섬세한 심리 묘사
“욕먹더라도 명작에 되바라진 반역 시도”


한 젊은 극작가의 희곡 두 편이 비슷한 시기 연달아 무대에 올랐다. 한 편은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햄릿’을 여성 주인공으로 재창작한 연극 ‘함익’, 다른 한 편은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을 엮은 ‘썬샤인의 전사들’이다. 동시대 문제의식과 연극의 근원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작가 김은성(39)이 내놓은 작품들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를 졸업한 김은성은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동라사’가 당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순우삼촌’ ‘연변엄마’ ‘달나라 연속극’ 등을 통해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무대 위에 풀어냈다. 2012년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연극 ‘목란언니’로 그해 동아연극상 희곡상과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 등을 휩쓸며 국내 연극계가 주목하는 극작가로 성장했다.

작가 김은성은 세월호 사건을 지켜본 뒤 “우리 근현대사 어딘가에 갇혀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차디찬 바다 속에 갇혀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펜을 갈았다. 처음 구상하고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 사랑하는 아이들을 잃어버린 아픔과 다시 찾아야겠다는 각오로 작업에 임했다”고 말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작가 김은성, ‘선샤인의 전사들’, ‘함익’의 한 장면.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은 김은성은 희곡 두 편을 준비했다.

먼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오는 22일까지 공연되는 ‘썬샤인의 전사들’은 2012년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로서 선보이는 신작이다. 작품은 일본군 위안부, 제주 4.3 사건, 한국전쟁, 군부독재 등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적 사건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가진 깊은 슬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지만 뜻밖의 사고로 어린 딸을 잃고 절필한 ‘승우’가 꿈속에서 만난 딸 ‘봄이’의 부탁으로 역사 속에 갇힌 아이들의 아픔을 글로 풀어낸다는 내용이다.

소설가를 꿈꿨던 소년병 ‘선호’가 적어둔 전장일기에서 제주 4.3사건 때 부모를 잃고 동굴 속에서 숨을 거둔 선호의 동생 ‘명이’, 한국전쟁 당시 함경도 장진호 협곡의 나무상자에 갇혀 죽은 고아 ‘순이’, 일제강점기 만주 위안소 쪽방에서 몸과 영혼을 빼앗긴 식모 ‘막이’의 이야기가 차례로 등장한다. 여기에 살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던 중공군 ‘호룡’과 시를 사랑하던 인민군 군의관 ‘시자’, 군부 독재에 끌려가 부당하게 고문을 당했던 ‘시춘’의 사연이 켜켜이 쌓인다.

김은성은 2014년 벌어진 세월호 사건을 지켜본 뒤 “우리 근현대사 어딘가에 갇혀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참사 이후 3년간 느꼈던 생각과 감정을 이번 극 안에 꾹꾹 눌러 담은 것이다. 그는 “차디찬 바다 속에 갇혀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펜을 갈았다. 처음 구상하고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 사랑하는 아이들을 잃어버린 아픔과 다시 찾아야겠다는 각오로 작업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9월 말 개막한 연극 ‘함익’은 서울시극단과 함께 선보이는 작품으로 오는 1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비중 있는 민간 극장과 공립 단체에서 같은 시기 같은 작가의 신작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드문 경우다. ‘함익’은 지난해 6월 서울시극단장으로 부임한 김광보 연출이 올해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기를 맞아, 대표작 ‘햄릿’을 모티브로 한 창작극을 김은성 작가에게 주문한 결과다.

앞서 안톤 체홉의 ‘바냐 아저씨’를 ‘순우 삼촌’으로,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동물원’을 ‘달나라 연속극’으로 각색하며 고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드러냈던 그는 ‘햄릿으로 태어나 줄리엣을 꿈꾸는 여자’라는 부제로 새로운 플롯을 만들어냈다. 여자 햄릿 ‘함익’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원작의 잘 만들어진 ‘남성적 복수극’을 뒤로 밀어내고, 이면에 숨겨져 있던 인물의 섬세한 심리를 앞으로 끌어냈다.

김은성은 “금테 두른 세계 명작, 인류 최고의 비극, 웅장한 복수의 드라마를 함부로 건드렸다는 욕을 먹더라도 되바라진 반역을 시도해봤다”며 “400년 전 영국에서 발표된 ‘햄릿’을 방자하면서 경쾌하게 비틀어 2016년 서울 관객과 만나게 하고 싶었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뉴스컬처=양승희 기자/yang@newscultur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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