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영화 기자]진짜 몰랐을까요? 아니면 쉬쉬하다 들킨 걸까요? 치약 파동이 또 터졌습니다. 지난 2014년 말 파라벤에 이어 이번엔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ㆍ메칠이소치아졸리논(CMITㆍMIT)이 원인입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알려진 이 화학물질은 폐 섬유화 등을 일으킬 수 있어 유해성 논란이 이어지는데요. 우리가 매일 쓰는 치약에 이런 독성 물질이 들어있었다니 충격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26일 CMITㆍMIT가 들어있다고 발표한 문제의 치약은 아모레퍼시픽 ‘메디안’, ‘송염’ 브랜드 11종입니다. 파문이 커지자 아모레퍼시픽 측은 ‘미처 몰랐다’고 발뺌을 합니다. 납품업체가 보낸 서류에 그런 내용이 없었다는 겁니다.
진실은 법정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치약 피해 소비자들이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 및 심상배 사장, 원료공급사인 미원상사 사장 등을 형사 고발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치약보존제에 CMITㆍMIT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모레퍼시픽이 치약에 이 성분이 들어있음을 알고도 계속 판매를 해왔다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치약 시장 매출 2위(25.6%) 업체입니다. 특히 메디안은 시장 점유율 20.1%로, 전체 2위 브랜드입니다. 송염 치약은 시장에서 5.5%를 차지합니다. 이를 토대로 국민의 4분의 1이 잠재적 피해자라는 얘기도 들립니다. 만약 피해 소비자들의 주장대로 아모레퍼시픽이 사실을 알고도 쉬쉬했다면 부도덕한 기업으로 지탄을 받아 마땅합니다. 설령 몰랐다고 해도 제품 안전성 관리에 소홀했다는 책임을 면하긴 어렵습니다.
더 큰 문제는 파라벤 치약 파동 때와 마찬가지로 이를 적발한 곳은 식약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문제의 치약이 들통난 사정은 이렇습니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실에서 아모레퍼시픽이 미국에 해당 제품들을 수출하려고 미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한 자료를 추적해 회사 측에 사실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그러자 회사 측이 서둘러 식약처에 자진 신고를 한 겁니다. 식약처는 이번에도 뒷북을 치고 있습니다. 비난이 일자 담당 공무원들은 몰랐다면서 업체를 탓하느라 급급합니다. 하지만 이는 미리 조사 한번 하지 않았다는 직무유기를 시인하는 셈입니다. 인력이 달려 한꺼번에 조사하기 어렵다면 여러번 나눠서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처럼 안전관리가 허술한데 가습기 살균제 파동이 치약으로 옮겨붙은 건 사실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진 후 지금까지 공식 집계된 사망자 수는 920명, 생존 환자는 3566명에 달합니다. 이후 정부는 부랴부랴 가습기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정하고, 식약처에 관리를 맡겼습니다.
또 2013년 5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법 제정 초기 기업들은 지나친 규제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제조자ㆍ수입자ㆍ사용자ㆍ판매자로 명시돼 있던 화학물질 보고 의무 대상에서 사용자가 빠졌습니다. 화학물질을 원료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보고 의무가 사라진 겁니다.
화학물질 등록대상에 대한 규정도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현행 법에는 1t 미만 화학물질은 대상에 넣지 않고, 1t 이상이라도 유해성이 의심되는 기존 물질만 검사받도록 돼있습니다. 관련 정보가 없어 유해성이나 위험성이 포착되지 않은 화학물질은 등록 대상에서 아예 빠질 수 있는 셈입니다.
처벌 수위도 논란거리입니다. 화평법ㆍ화관법으로 위반 기업에 대한 과징금은 최고 3억원에서 매출액 대비 5%로 강화됐습니다. 하지만 최대 과징금이 적용되는 대상을 ‘모든 기업’에서 ‘고의적ㆍ반복적으로 사고를 일으키는 기업’으로 되레 제한했습니다.
치약 파동은 이런 수준의 제재 장치로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막기는 어렵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겁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같은 좀더 강력한 제재수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는 이유입니다. 기업의 악의적인 불법 행위에 대해선 피해자에게 끼친 손실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배상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은 아랑곳 없이 기업 눈치만 보는 정부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사태는 되풀이될 게 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