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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란법, 하루만의 상전벽해 세상 ①] 밤 되자 손님 끊기고, ‘김영란 세트’ 탐색꾼들만…
-“김영란 메뉴 확인하러 왔어요” 식당가에는 가격확인 손님만
-저녁되자 “눈치 보여 회식도 못하겠다” 손님 절반 이하로 줄어
-식당가 “가격 더 낮춰서라도 손님 붙잡아야 살아” 생존책 고심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맥주가 포함된 2만9000원짜리 김영란 정식 세트를 마련했으니 걱정 말고 찾아오세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된 2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일식집을 운영하는 이모(47ㆍ여) 씨는 오전부터 단골손님들에게 문자를 보내느라 분주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높은 일식집은 큰 타격을 받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기존에 가장 많이 팔리던 점심 코스 메뉴가 3만5000원가량이라 가격 조정이 불가피했다”며 “코스보다는 세트로 가격을 낮춰 고객들이 부담 갖지 않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했다.
[사진=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난 28일 저녁 식사시간이 됐지만 서울 광화문 인근 식당가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비싼 음식은 가려졌으며, 그나마 온 손님들도 더치페이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식사비를 3만원으로 제한하는 김영란법이 28일 시행되면서 식당가는 생존 경쟁에 돌입했다. 특히 광화문이나 여의도 등 중심가에 있는 식당가는 김영란법 시행 충격에 대비해 다양한 자구책을 고안하고 나섰다. 고객들도 김영란 세트를 확인하고자 식당가로 몰리며 첫날 분위기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로 가득한 음식점 안에서 점심때를 맞은 직장인들은 메뉴판을 꼼꼼히 확인하며 김영란법에 맞춘 식단을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여의도 식당가를 찾은 직장인 윤모(31) 씨 역시 김영란 세트를 확인하기 위해 한 한정식 음식점을 찾았다. 윤 씨는 “평소 외부인과 식사를 자주해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어떡해야 하나 걱정이 많았다”며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는 맛집을 미리 확보해야 해서 당분간 이곳저곳 돌아다녀 볼 작정”이라고 했다. 
[사진=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난 28일 저녁 식사시간이 됐지만 서울 광화문 인근 식당가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비싼 음식은 가려졌으며, 그나마 온 손님들도 더치페이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윤 씨는 결국 식당이 새로 마련한 2만5000원짜리 ‘김영란 정식’을 주문했다. 그는 “외부인과 대화할 수 있는 조용한 식당은 대부분 가격대가 높다”며 “이전보다 메뉴 구성은 줄었지만, 맥주 한 병을 시키더라도 4000원이 추가돼 메뉴 선택이 조심스럽다”고 했다.

음식점도 김영란법을 맞아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한정식집을 운영하는 조석래(50) 씨는 “점심은 사람이 크게 줄지 않았지만, 저녁이 더 걱정”이라며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점심 회식이 늘고 저녁에는 손님이 거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김영란법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은 점심때와 달리 저녁이 되자 김영란법의 여파로 식당가는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평소 회식을 하러 온 직장인들로 가득 찼던 식당가에 직장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80석의 음식점에 손님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한 음식점 주인은 “평소 2주씩 예약이 밀렸는데 오늘은 한 팀도 없다”며 “오전에는 김영란법 첫날부터 회식을 하면 주위 눈치가 보인다며 예약을 취소한 고객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진=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난 28일 저녁 식사시간이 됐지만 서울 광화문 인근 식당가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비싼 음식은 가려졌으며, 그나마 온 손님들도 더치페이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고급음식점 뿐만 아니라 일반음식점도 손님이 줄기는 마찬가지였다. 음식점에는 소규모 모임만 이따금 찾아왔고 단체 손님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찾아온 손님들도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다. 한 삼겹살 전문점 주인은 “무한 리필집인데도 술을 마시는 손님 자체가 줄어버리니까 매출이 크게 떨어졌다”며 “가격과 상관없이 술자리 자체가 눈치 보인다는 손님이 많았다”고 하소연했다.
[사진=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난 28일 저녁 식사시간이 됐지만 서울 광화문 인근 식당가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비싼 음식은 가려졌으며, 그나마 온 손님들도 더치페이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당장 매출이 큰 폭으로 내리자 식당가는 다시 고심에 빠졌다. 광화문 인근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는 김모(37) 씨는 “김영란법에 맞춰 가격을 내렸지만, 술까지 고려하면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며 “메뉴를 더 줄이더라도 술을 부담 없이 주문할 수 있도록 가격을 조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광화문의 다른 음식점 역시 “술값이 올라 메뉴 조정이 더 힘들어졌다”며 “메뉴 구성을 줄이면 손님이 줄어들 게 뻔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걱정만 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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