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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속 아픈 청춘들, 결론은 역시나 ‘판타지 ’
-올 드라마속 청춘은…

취준생·피곤한 직장인등 캐릭터…
돈없고 빽없는 흙수저 아픔 그려

힘들어도 맥주 한캔에 에너지 충전
종종 술마시고 딴짓해도 공시 합격
“루저로 끝나면 더 위로받을텐데”


청춘은 여전히 아프고 힘들다.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가 쉽지 않아 취업을 포기하고, 매달 입금되는 고정 수입이 없어 연애와 결혼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포기할 게 너무 많아 N포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수저계급론’의 구조적 불균형에 희망 대신 절망을 동력 삼아 살아간다. 지금의 청춘들은 우리가 살아갈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른다.

TV는 ‘아픈 청춘’을 고스란히 옮겨왔다. “드라마는 트렌드를 벗어나선 이야기할 수 없는 장르이자, 이 시대를 반영”(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하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올 들어 드라마가 그려낸 청춘의 얼굴은 안쓰럽기 그지 없다. 



‘학벌 지상주의’ 노량진에 입성한 변두리 출신의 초짜 강사(tvN ‘혼술남녀’ 박하나)는 가성비가 좋다. 스타강사들에 비해 ‘헐값’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판다. 수배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돌아오는 건 ‘계급사회’의 부조리 뿐이다. 설상가상 반지하 방엔 장마철도 아닌데 물이 들어차는 경제적 어려움에도 맞닿아있다. 임용고시와 9급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10년차 백수커플(SBS ‘우리 갑순이’)은 아예 N포세대를 대변하는 캐릭터로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비정규직 기상캐스터는 직업과 권력구조 안에서 차별 당하기 일쑤다. 꿈은 정규직 아나운서(SBS ‘질투의 화신’)다.

올 한 해 안방극장엔 N포세대가 유달리 많았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동시대의 정서와 사회현상을 담고 있어 N포 세대 캐릭터의 등장은 지속적으로 나타난 경향”이라고 전제하며, 다만 “이전엔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낭만적 모습에 초점을 맞췄던 반면, 지금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력서를 수십장을 써도 번번이 미끄러지자, 취업 스트레스는 탈모(SBS ‘미녀공심이’)까지 불러왔다. 학비와 생활비, 가족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하루 평균 서너 개의 아르바이트를 뛰고 20대다운 연애는 꿈도 못 꾼다(JTBC ‘청춘시대’ 윤진명). 아무리 노력해도 되는 일이 없고,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기댈 데라고는 초월적 존재뿐인 불안한 청춘(MBC ‘운빨로맨스’ 심보늬)의 모습이 그려진다. 올 한해 뉴스를 뒤덮었던 갖가지 청춘의 고단함이 드라마로 투영, “공감할 만한 캐릭터”(박상주 드라마제작사협회 국장)로 만들어졌다.

가난한 현실을 살아가는 캐릭터엔 동시대 20~30대 청춘들의 특징적인 모습도 담겼다. 올 여름 브라운관을 뜨겁게 달궜던 tvN ‘또 오해영’은 대표적이다.

드라마는 예쁘고 잘난 동명이인으로 인해 학창시절 일생일대의 트라우마를 안게 된 평범한 서른두 살 오해영(서현진)의 현실적인 일상을 다뤘다. 번번이 비교당하기 일쑤였던 학창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경쟁사회에서 자존감이 떨어지는 인물의 모습을 그렸다. “단순 로맨스에 묶이는 것이 아닌 잘난 사람에 의해 그늘질 수 밖에 없던 설움을 겪은 오해영이라는 인물의 에피소드”(윤석진 교수)가 드라마의 성공요인이기도 했다.

최근 종영한 ‘청춘시대’는 청춘과 더불어 “소통을 이야기한”(박연선 작가) 드라마다. 저마다의 집안사, 트라우마, 연애사로 시끌벅적한 20대를 보내는 다섯 명의 여주인공을 “이들 세대가 소통하지 못 하는 이유”를 찾아갔다.

N포세대 캐릭터가 득세하자 이야기 구조도 변화했다.

‘백마 탄 왕자’와 신데렐라, 혹은 캔디형 여주인공의 로맨스가 주를 이뤘던 멜로드라마는 현실 밀착형 캐릭터를 입고 경제적, 사회적 차별을 없앴다. 계급간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에서 계층을 뛰어넘는 로맨스는 현실 불가능하다는 것이 최근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인식이다. “여성 시청자 대다수가 재벌2세와 캔디렐라(캔디+신데렐라)형 여주인공의 사랑은 비현실적이고, 현실 불가능한 로맨스라는 것을 인지”(윤석진 교수)하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역시나 비현실로 나아간다. 지치고 고단한 청춘의 삶은 아무리 애틋해도, 맥주 한 캔이면 ‘슈퍼맨’처럼 에너지가 충전(‘혼술남녀’)된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은 종종 술도 마시고, 딴 짓도 수준급이지만 누군가는 꿈을 이룬다. 현실은 다르다. 피 나는 노력은 끝끝내 부정 당해 희망을 희망할 수도 없게 됐다. 캐릭터는 지극히 현실적이라 “동시대 청년 세대와의 공감대를 형성”(윤석진 교수)할 수 있으나, 드라마의 해피엔딩은 철저히 판타지이라는 반응이 따라온다.

윤석진 교수는 “결국 드라마에선 현실에서는 이뤄지지 않는 것들이 이뤄진다”며 “이 같은 해피엔딩은 대리만족을 주는 위로를 주거나 현실에서의 박탈감을 주는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래도 드라마에서 만큼이라도 해피엔딩을 보며 내 현실을 잠시 잊고 희망을 품고 싶다”(28세, 박수정씨)는 반응과 더불어 ‘현실과의 이질감’으로 ‘불편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1년차 직장인 이모(26)씨는 “드라마 주인공처럼 열심히 하면 나도 잘 될 수 있다며 희망을 거지거나 대리만족을 받기 보다는 현실과 너무 달라 씁쓸함이 더 크다”라며 “주인공도 나처럼 팍팍한 현실의 루저가 돼서 차라리 동변상련을 느끼며 위로받고 싶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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