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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은 인간-비인간의 네트워크
과학은 자연자체이기보다 인간활동
스마트폰 편리하지만 SNS중독 유발

과학이 절대적이라는 태도에 경종
“자연법칙도 인간이 만들어낸 모델”




‘콤프턴효과’의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고 맨해튼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던 물리학자 아서 콤프턴은 1953년 어느날 학교 교정에서 차들이 너무 빠른 속도로 달리는 걸 보고 과속방지턱을 고안해냈다. 이는 놀라운 효과를 발휘했다. 방지턱은 지금 세계 전 도시에서 ‘잠자는 경찰관’으로 훌륭히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운전자들이 속도를 줄이는 이유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차를 망가트리지 않으려는 행동이다. 과속방지턱이라는 기술은 이타심을 이끌어내기 힘든 사람들의 이기심을 이용한 것이다.

20세기 뉴욕시의 구조를 기획하고 설계한 건축가 로버트 모지스는 존스 비치 공원을 설계하면서 흑인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할 방법을 구상했다. 존스 비치 공원으로 통하는 고속도로 위에 설치된 구름다리의 높이를 낮게 만든 것이다. 흑인들이 주로 다니는 버스가 공원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고, 공원은 백인들만의 놀이터가 됐다.

흔히 과학기술은 사회와 동떨어진 것으로 여기지만 사회와 상호작용을 하고 큰 영향을 미친다. 

과학기술학(STS: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을 국내에 소개하는데 앞장서온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동아시아)에서 과학의 발전 과정을 단순한 지식의 진보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의 네트워크, 사회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보도록 이끈다. 



저자는 현대과학을 이해하고 과학적 이슈의 흐름을 이해하는 열쇠로 ‘네트워크’를 제시한다.

저자가 말하는 네트워크는 실제 어떤 연결망이라기보다는 과학적 활동의 움직임의 궤적을 의미한다.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존재에는 인간만이 아니라 비인간이 포함된다는 점이 사회적 네트워크와 다르다.

과학자가 기구를 사용해 비인간인 자연을 조직하고 통제하고 길들이는 실험실에서의 일련의 과정을 저자는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본다. 즉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인간-비인간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다가 결국 어떤 지점에서 타협이 이루어져서 인간-비인간의 새로운 네트워크가 생기는 것”이란 해석이다. 따라서 실험실의 과학자는 작은 규모의 이런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이 네트워크 형성 과정에서 사실과 이론, 현상이 얻어지면 논문으로 나와 다른 과학자와 대중들에게 전해지고 유용한 기술은 혁신적 결과물로 나오기도 한다.

저자는 이렇게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사회적으로 들어가는 과정까지 모두 네트워크로 본다. 과학이 자연 본연의 속성, 날 것의 자연 자체이기 보다 ‘인간 활동’임을 강조한 것이다.

과학기술, 테크노사이언스 네트워크는 바로 인간과 비인간으로 이뤄진 네트워크로 비인간을 잘 다루는 것이 네트워크의 성공에 결정적이다.

가령 스마트폰은 여러 이점을 주지만 오히려 개인시간이 없어지고 SNS중독까지 유발시킨다. 또 어떤 기술은도덕적 태도를 강요한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 ‘찰칵’소리가 나도록 장치함으로써 동의 없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몰래 찍는게 불법임을 일깨워준다.

그런데 우리는 기술과 도구 등 비인간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지만 흔히 이를 간과한다.

이는 과학을 바라보는 시각과이 있다. 과학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태도다. 그러나 이는 조금만 과학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면 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가령 고대와 중세 사람들은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무거운 물체가 자기 자리를 찾아가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고, 뉴턴 이후에는 지구의 중력이 사과를 잡아당기기때문으로 봤다. 일반 상대성이론 이후로는 지구 주변의 공간이 휘어져 있고, 사과가 이 휘어진 공간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운동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 마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저자의 이런 네트워크 관점은 과학에 대한 유연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과학이 비인간을 길들이는 과정이기 때문에 과학자가 생각대로 과학활동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으며, 실험실과 실제 자연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점이다. 실험실로 자연의 일부를 가져올 때 단순화된 형태로 들여오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학에서 말하는 자연의 법칙 역시 “인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모델’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과학기술학의 새로운 시각으로 과학과 사회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해하기 쉽게 쓰여 핵심개념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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