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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씁쓸한 차례상 분쟁 ①] 제사는 무조건 장남 몫이라고요?
-‘불효 장남’, 이복 여동생에게 父 유골 뺏겨

-‘사업실패로 궁핍’ 장남, 제사권은 동생에게

-法, 자격없는 장남 제사주재자로 인정 안해



[헤럴드경제=김현일ㆍ고도예 기자] 모처럼 온 가족이 모인 추석 명절. 들뜬 마음으로 고향집을 찾았고 집으로 돌아왔거나 돌아오고 있지만, 이따금 명절때 가족 간 벌어진 다툼 때문에 귀경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특히 제사 문제는 명절 때마다 가족 간 갈등의 주요 소재가 된다. 제사권을 주장하는 장남과 나머지 형제들 간의 싸움은 종종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장남 정모(54) 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골 소유권을 두고 지난해 이복 여동생과 소송전을 치렀다. 정 씨는 여동생 정모(31ㆍ여)씨가 아버지 유골을 자신이 거주하는 뉴질랜드 지역의 가족묘로 옮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유골인도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정 씨는 결국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올 4월 “장남 정 씨는 일본에 거주하면서 국내에 있던 아버지와 거의 연락을 취하지 않은 반면, 이복동생들은 투병 중이던 아버지를 사망할 때까지 간병했다”며 여동생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10여년 전 아버지가 송사 문제로 일본에 방문하려 했을 때 장남 정 씨는 항공료 등을 보태주는 것을 단호히 거절했고, 이후 아버지와 서로 연락이나 왕래가 없었다”며 “일본에서만 거주해 한국어를 거의 못하고, 수십년 간 아버지나 이복동생들과 왕래하지 않던 정 씨에게 정상적으로 제사를 지낼 의사나 능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장남이라도 불효했다면 제사 못지내”=우리 관습은 통상 장남에게 제사 주재자로서의 지위를 부여해왔다. 그에 따라 조상 묘나 유골을 지키고 관리하는 것도 장남이 도맡았다. 대법원 역시 지난 2008년 판례를 통해 “제사주재자는 우선적으로 상속인들끼리 협의로 정해야 하지만 협의가 안될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남이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명시했다. 아들이 없으면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되고, 장남이 사망한 경우 장남의 아들, 즉 장손자에게 그 자격이 돌아간다.

이처럼 딸보다는 아들에게, 둘째보다는 첫째에게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해주고 있지만 단 조건이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중대한 질병이 있거나 방탕한 생활을 한 경우 장남이라 하더라도 제사를 주재할 수 없다. 장기간 외국에 거주했거나 평소 부모를 학대한 자녀도 제사주재자가 될 수 없다. 앞서 본 사례의 정 씨 역시 외국에 거주하면서 아버지와 왕래를 안 하고, 임종도 못 지킨 것이 발목을 잡았다.



▶‘사업실패에 이혼’ 제사권 뺏긴 장남=생계가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 궁핍이 심각한 경우에도 제사주재자가 될 수 없다.

장남 정모(59) 씨는 15년간 조부모와 아버지 제사를 직접 지내왔지만 2011년 사업실패로 제사를 지낼 집이 없어지고, 이혼까지 하면서 결국 다섯 동생들과 가족회의 끝에 제사권을 남동생에게 넘겼다. 묘소가 있는 선산 일대 토지도 동생에게 승계됐다.

그러다 정 씨는 3년 뒤 동생들을 상대로 선산 토지를 나눠 갖자며 상속재산분할청구 소송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조상 묘가 있는 토지는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되는 재산일 뿐 상속인들끼리 분할할 재산이 아니다”며 각하했다. 이에 반발한 정 씨는 부모님 기일 때마다 제사를 혼자 따로 지내며 남동생에게 제사권을 돌려달라고 주장했다.

정 씨는 애초 동생들과 논의할 때 자신의 형편이 나아지면 제사를 본인이 다시 지내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구지법 안동지원은 이달 8일 “정 씨가 경제적 여유가 생겼더라도 동생들의 전원 합의 없이는 제사를 다시 주재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제사주재자를 남동생으로 바꾸기로 했던 가족회의의 효력을 인정한 것이다. 다시 변경하려면 재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제사주재자는 우선적으로 상속인들끼리 협의로 정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그 근거가 됐다.

법원은 제사주재자 지위를 둘러싼 소송과 관련해 “관습을 고려해 제사주재자를 판단하지만 과거의 관습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기본적 이념이나 사회질서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형성된 현재의 관습을 기준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joze@heraldcorp.com



<사진설명> 추석 명절때 특히 제사 문제는 가족 간 갈등의 원인이 되곤 한다. 제사주재권을 놓고 형제들끼리 소송을벌이는 경우도 있어 관련 사항을 숙지하는 게 좋다. 사진은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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