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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 처음 겪은 충격”…지진 공포 ‘여진’은 계속됐다
가재도구 쏟아지고 열차 갇히고
방송도 어떻게 하란 안내는 없어
통신 두절에 혼란은 두배로 증폭

기상청 출범 후 사상 최대인 규모 5.8 지진이 경북 경주시를 엄습한 12일 저녁, 혼란은 경주 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뒤흔들었다. 지진 이후 발생한 부분적인 통신 두절과 제때 기능하지 못한 정부의 재난방지체계에 시민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충격은 컸다. 더이상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실감한 국민들은 공포심마저 갖게 됐다. 게다가 13일 기상청이 당분간 경주 일대엔 여진이 계속될 전망이라고 하자 인근 주민들의 두려움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날 지진은 경주에서 발생했지만 그 피해는 영남지방 전체에서 나타났다. 경북 경주시에 살고 있는 손모(65) 씨는 12일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지진으로 인한 진동으로 발생한 충격이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진이 엄습한 그 순간 손 씨의 집 천장의 전등은 마치 괘종시계의 추처럼 크게 흔들렸다. 식기건조대에 세워둔 그릇이 와장창 깨지며 손 씨를 놀래켰다. 손 씨는 “밤새 더 큰 지진이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에 한 숨도 못잤다”며 “더 큰 규모의 지진이 나지말란 법이 없어 불안하다”며 몸서리를 쳤다.

울산 동구에 사는 김모(83) 씨에게 지난밤은 악몽에 가까웠다. 거실에 있던 난초 화분이 넘어지고 집안 가재도구가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김 씨는 황급히 살고있던 다세대주택에서 빠져 나왔지만 그 다음부터 막막해졌다. 주차장에서 만난 이웃 주민들도 김 씨 처럼 지진 발생 후 어찌할 바를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지진 발생 직후 1~2시간 가량 전화가 먹통이라 서울과 대구에 살고 있는 자녀들에게 연락을 할 수 없어 불안감에 떨 수 밖에 없었다. 김 씨는 “지금껏 대구와 울산 등에서 평생을 살아왔지만 이 정도 강도의 지진을 겪은 것은 처음”이라며 “평소 이 같은 경험을 할 것이라 생각도 하지 않고 있던터라 막상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어찌할바를 모르고 당황스럽기만 했다”고 했다.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박예안(25) 씨는 이날 추석연휴를 맞아 고향인 경북 영천시에 가기 위해 12일 오후 8시께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동대구발 KTX를 탔다. 그러나 평택역 인근을 지나서부터 멈춰선 열차는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경주 지진으로 KTX가 일시 운행을 중단한 것이다. 운행이 재개된 이후에도 선로 안전을 우려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같은 칸에 있던 사람들은 혹시 여진에 열차 사고가 날까 안절부절했다. 대전역 등에 열차가 서자 승객들은 급하게 플랫폼 자판기에서 물, 음료수 등 마실 것을 뽑아오기도 했다. 동대구역에 도착한 것은 예정시각보다 1시간 이상 늦어진 뒤. 결국 박 씨는 동대구역에서 영천으로 들어가는 환승열차를 놓쳤다.

평소 지진 대피 훈련이 돼 있지 않은데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대처방안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혼란은 가중됐다. 대구 달서구에 거주하는 김모(27) 씨 역시 지진이 엄습한 직후 대혼란에 빠졌다.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은 바닥으로 다 떨어지고 본진에 이어 여진까지 느껴지자 순간 책상 밑으로 들어가 숨어야 하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은 뻣뻣하게 굳어 말을 듣지 않았다. 정작 아파트 안내방송이나 TV속보 방송에서도 어떻게 하라는 안내가 나오지 않았다. 김 씨는 무엇을 해야 할 지 순간적으로 판단이 서지 않아 불안감이 엄습했다. 지진이 가라앉을 때까지 김 씨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계속 TV를 틀어놓고 뉴스 속보에 귀를 기울이는 것 뿐이었다.

지진 이후 전화와 문자, 카카오톡 등이 일시적으로 불통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대구에 사는 신모(36) 씨는 12일 지진이 엄습한 이날 오후 7시30분부터 약 한시간 동안 지진으로 인한 공포에 떨 수 밖에 없었다. 두살배기 아들과 목욕을 하던 도중 욕실등과 샴푸, 칫솔 등 집기가 흔들리는 것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 신 씨의 뇌리에 스친 것은 경북 의성에 살고 이는 80대 조부모의 안위였다. 그러나 전화는 물론 카카오톡이나 문자마저 지진 직후 먹통이 되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혹시나 조부모님께 위험한 일이 닥쳤을까 심장이 뛰었다. 신 씨는 “잠깐의 지진으로도 국가 통신망이 두절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엄습했다“고 했다. 

원호연 기자/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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