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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연한 이야기]‘소의 화가’ 이중섭을 무대로 불러내다
“백정과 소도둑도 나만큼 소를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소의 화가’라 불리는 이중섭(1916~1956)은 여러 동물 중에서도 소를 지켜보는 일을 좋아했다. 한번은 소도둑으로 오해를 받아 경찰에 잡혀갔을 만큼 소에 매료돼 온종일 관찰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붓을 들 때만큼은 소를 보지 않고, 머릿속에서만 모습을 구조화해 작품을 완성시켰다. 그가 그려낸 소는 단단한 몸집과 강인한 근육이 느껴져 마치 캔버스를 뚫고 나올 듯한 생동감을 준다.

미술을 잘 모르는 문외한이라도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이중섭, 그리고 대표작 ‘소’는 떠올릴 것이다. 이중섭은 가난과 질병으로 평생 고단한 삶을 이어가면서도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맹렬한 기세로 예술혼을 불태웠다. 불혹의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후대의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올해 탄생 100주년, 타계 60주년을 맞아 전시, 출판,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중섭을 기리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공연계에서도 이중섭을 주요 캐릭터로 한 작품들이 무대에 오른다. 지난 9~10일에는 이중섭이 작품 활동을 했던 제주 서귀포에서 창작 오페레타 ‘이중섭’을 공연했으며, 오는 29일에는 이중섭과 그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가 주고받은 편지를 재현한 음악극 ‘이중섭의 마지막 편지’가 서울 관객과 만난다.

연극으로는 지난 10일 대학로서 개막한 연희단거리패와 이윤택 연출의 ‘길 떠나는 가족’이 있다. 이중섭의 드라마틱한 인생과 예술세계를 그린 작품으로 1991년 초연 당시 연극제 각종 상을 휩쓴 바 있다. 사실적 무대 장치 대신 살아 움직이는 상징을 만들기 위해 배우들이 직접 오브제를 들고 움직인다. 그림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소와 새, 물고기, 아이들이 무대를 채우며, 이중섭 역의 배우 윤정섭이 극 중 20분간 실제로 소 그림을 그린다.

이중섭을 비롯해 1950년대 활동한 전혜린, 박인환 등 예술가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뮤지컬 ‘명동 로망스’ 역시 하반기 고양, 목포, 영주 등에서 지방 공연을 진행한다. 지난해 10월 초연 후 올해 3월 대학로에서 재공연되며 누적관객수 2만명, 평균 객석 점유율 82%를 기록한 인기작이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도 그림을 놓지 못하는 이중섭의 처절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무대 위에 대표작 ‘흰 소’가 선명한 영상 배경으로 깔려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생전 소와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이중섭은 눈을 감은 뒤에도 소와 뗄 수 없는 작가가 됐다. 걸어온 발자취마다 소의 발자국이 따라붙는 그의 삶은 궁핍했지만 강렬했고 아름다웠다. 풍족해졌지만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시대가 이중섭을 불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가 유일하게 남긴 시 ‘소의 말’의 한 구절이 유난히 가슴 찡하게 느껴진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희 헤치다”

[뉴스컬처=양승희 편집장/yang@newscultur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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