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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 기자의 신세계사] 테러가 바꿔놓은 세계-1: 증오, 분노로 가득한 ‘포비아의 시대’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15년 전 오늘, 피랍 당한 비행기 2대가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를 총돌하면서 미국의 안보정책은 180도 바뀌었다. 국가 단위로 움직이던 국제질서도 ‘테러리스트’라는 새로운 행위자를 맞아 혼란기에 빠졌다. 9ㆍ11테러가 발생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그 충격과 여파는 여전하다.

서구를 중심으로 테러는 일상화가 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알카에다 세력과 탈레반 세력을 근절시키지는 못했다. 빈 라덴과 사담 후세인 정권은 무너졌지만 빈 라덴의 추종세력은 미국의 공습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을 흡수, 다시 세력을 키워나갔다. 사담 후세인 정권을 이끌었던 간부들 다수도 알카에다 이라크지부에 편입됐다. 이들은 향후 세계를 테러 공포에 빠트리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IS)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증오는 증오를 확산시켰다. 사회와 동화되지 못한 일부 이민자들은 테러단체의 선동에 현혹된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이 런던 지하철 테러, 보스턴 테러, 샤를리 앱도 사건 등 각종 테러를 일으켰다.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은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 동시다발 테러를 계기로 올해 벨기에 브뤼셀 테러, 미국 올랜도 총기난사 사건, 니스 테러 등 프랑스와 미국, 벨기에 등 대(對)테러 연합국의 일상을 위협했다.

테러단체가 감행한 불특정 다수를 향한 공격에 서방은 불특정 다수의 무슬림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외로운 늑대들이 속출하면서 가장 부각된 문제는 인종과 민족 간 갈등이었습니다. 영국경찰서장협의회에 따르면 브렉시트 결정 이후 영국 내 7월 1~28일 간 증오범죄 발생건수는 6561건으로, 4887건이었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 증가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이끈 영국독립당(UKIP)는 이슬람 신자들을 ‘테러리스트’나 ‘범죄자’로 몰아넣었다. 독일에서는 이민을 반대하는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득세했다. 프랑스에서는 이슬람전통양식을 접목시킨 수영복인 부르키니의 착용을 돌연 금지시켰고, 이슬람 복장을 착용한 학부모의 학교 출입을 막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의 대통령은 선거유세장에서 이슬람 전통복장을 입은 여성을 쫓아내버렸다. ‘이슬람교는 평화적인 종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는 이 여성은 “몸에 폭탄이 없는지 발가벗겨봐라”라는 백인들의 외침소리를 들으며 현장에서 쫓겨났다. 유럽 주요 도시 거리마다 무장경찰이 배치됐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테러방지법을 통해 시민의 통신내역 등을 확인하고 감시할 권한을 강화했다. 

2001년 미국을 강타한 9ㆍ11 테러 [사진=게티이미지]

▶ 무슬림에게 돌아간 비난의 화살…외로운 늑대들은 이보다 복잡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증오의 악순환은 또 다른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양산해 피해를 키우고 있다. 지난 7월 프랑스와 독일에서 일주일 사이 발생한 총 4건의 테러가 발생했다. 테러를 일으킨 이들은 대부분 10~20대의 이민 2세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모든 테러리스트가 무슬림이었던 것도 아니요, 무슬림이 테러리스트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성급한 일반화를 우려했다. 불특정 다수의 무슬림을 향한 서방의 분노는 일반 무슬림을 과격화하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독일과 프랑스 당국의 조사 결과, 지난 7월 발생한 4건의 테러는 난민 망명신청자나 정신질환자에 의한 ‘증오범죄’ 혹은 ‘무차별 공격’이었고, 프랑스 성당에서 발생한 테러는 ‘이슬람 대 기독교’ 구도를 정립한 종교테러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종교테러를 감행한 테러리스트도 정신질환 이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엔지 압델카더 조지타운대학교 교수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법학대학 신문에 “종교가 아닌 정신질환이 자생적 테러의 핵심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자생적 테러를 종교나 정신질환으로 단순화시킬 수는 없다. 피스카토리 교수는 “테러리스트를 분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며 “‘IS에 의한 테러’란 IS의 프로파간다에 영향을 받아 발생한 테러라고 정의할 수 있다. IS를 추종하는 이들은 심리적, 사회적,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선동됐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무슬림이나 난민뿐만 아니라 세속주의적인 국가에서 사는 외국인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레바논의 퀀텀 커뮤니케이션스는 2014년 IS에 가입한 조직원들을 상대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벌였다. 해당 설문조사는 사상 처음으로 IS 조직원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관심을 끌었다. 퀀텀 커뮤니케이션스는 “가입 동기를 9가지로 분류했을 때 대체적으로 복수심, 종교적 채무감, 사회적 고립감과 절망감, 정체성 혼란을 느끼던 중 IS의 선전물을 접하고 과격화됐다”라고 분석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의 리처드 불리에트 역사학과 교수는 “실제로 서방에서 발생하고 있는 테러 공격은 2.2%에 불과하고 테러의 75%가 중동아시아와 북부아프리카 등 이슬람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다”라며 “미디어에서 테러의 가해자를 무슬림으로 단순화하고 있지만 실제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것 무슬림”이라고 지적했다. 제임스 피스카토리 런던경제대학교 이슬람정치학 교수는 “이슬람 극단주의로 인한 테러가 서방에서 일어나고 있고, 이 때문에 서방 세계가 이슬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범죄에 노출됐던 성장배경, 사회적인 고립, 정체성의 혼란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라며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에 정착한 이민자들의 과격화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지난 2015년 샤를리 엡도 테러를 일으킨 사이드 쿠아시와 셰리프 쿠아시 형제들은 알제리 이민가정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외곽에서 자란 그들은 유년기에 모친의 자살을 목격했고 사춘기를 고아원으로 보냈다. 동생 셰리프는 정서불안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사이드는 조용한 성격에 공부도 잘했지만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하고 종교심이 강했다고 한다. 이들은 파리로 거주지를 옮기고 피자배달과 피트니스 트레이너 등 일용직에 종사하다가 한 조깅클럽 멤버들과 친분을 쌓게 됐다. 이 조직은 향후 이슬람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운영된 일종의 ‘선교클럽’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급속도로 과격화된 사이드와 샤리프는 테러위험국가로 가려다 체포당했고, 그 사이 또 다른 테러리스트인 아메디 쿨리발리(파리 식품 인질테러의 범인)를 알게 됐다. 그렇게 샤를리 엡도 테러에 대한 계획은 프랑스의 공원과 교도소 안에서 시작됐다.

퀌턴 커뮤니케이션스가 밝힌 IS대원들의 가입 이유.
[그래픽=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 대중이 선택하지 않은 ‘세계화’ 물결…대중을 분노하게 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10일 “거짓말의 정치가 통하고 있다”라며 “정부조직에 대한 불신과 사회불안이 증오범죄를 부추기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치인에 선동된 것이든 아니든, 대중은 자유와 관용이라는 어려운 길을 택하기보다 통제와 차별이라는 단순한 길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어찌됐든 대중이 내린 선택이다. 이는 그만큼 테러를 둘러싼 대중들의 공포가 극에 치달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이쯤에서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교수인 대니 로드릭이 지난 7월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기고한 글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대니 로드릭은 도널드 트럼프나 프랑스 국민전선(FN)의 마리 르펜 당대표의 득세가 새삼 놀라울 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세계화의 가장 큰 단점은 국민들의 사회적 합의나 민주적인 절차와 상관없이 한 번 받아들이면 그 흐름을 중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니 로드릭은 세계화가 민주주의와는 달리 대중이 ‘선택’할 수 없는 중앙집권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프로젝트 신디케이트를 통해 “대중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세계화 현상 중 하나가 이민 문제”라며 “이민자의 유입으로 바뀌는 전통과 사회통합의 어려움은 극우정당들이 이용해먹기 좋은 소재거리다. 반(反)무슬림 물결은 예견된 일”이라고 말했다. 

조지타운대학교가 밝힌 자생적 테러리스트의 유형.
[그래픽=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전문가들은 과거 서방의 제국주의와 미국의 침공이 중동아시아와 북부아프리카의 정치혼란을 야기한 면이 있는 만큼 서방국가가 난민의 유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중동아 정치안정에 힘써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피스카토리 교수는 “국제사회가 시리아와 리비아 내전을 종결시키고 사회안정을 유도하는 데 힘쓰는 방법으로 난민의 발생 숫자를 자연스럽게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이외에도 이민자들의 극대화를 막기 위한 사회동화정책이 필요하다”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대책은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현실적으로 이뤄지기는 어렵다”라며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일단 현 사태를 억제하는 선의 방책을 강구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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