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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서 흑인은 한번도 국민인 적 없었다”
인종차별에 대한 흑인 저널리스트의 일침
“흑인 잇단 살해는 美 역사이자 유산…
흑인 차별은 인종 아닌 권력의 문제”
끝내 희망 전하지 않는 냉정한 현실인식
“자신의 삶을 살라”는 한마디 깊은 ‘울림’



흑인 과잉 단속과 진압으로 미국사회가 여전히 들끓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인종 현실을 고발한 화제의 책 ‘세상과 나 사이’가 출간됐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저널리스트 타네하시 코츠가 쓴 이 책은 지난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는 등 지난해와 올해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흑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란 부제를 단 책에서 코츠는 오늘날 미국에서 벌어지는 흑인 살해를 단순히 몇몇 인종주의자의 돌발 행동이 아니라 미국의 역사이자 유산으로 규정한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그들만의 민주주의’일뿐, 미국에서 흑인은 한 번도 ‘국민’이었던 적이 없었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코츠는 무허가로 개비 담배를 팔다 경찰에 총을 맞아 죽는 현실, 빈곤층 거주 지역에 금융과 소매업 등 서비스 제공을 제한하는 차별의 뒤에 무엇이 있는지 묻고 또 묻는다.

“나는 왜 세븐일레븐의 주차장에 서 있는 소년들이 총을 꺼내 드는 그런 세상에 살았을까? 저기 저곳, 소행성 너머의 다른세상(백인들의 교외)에서는 삶이 왜 그렇게도 달랐던 걸까, 학교에서는 흑인 인권운동가들을 가르치고 전시하지만 유독 흑인들에게만 순종과 도덕성을 강요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왜 수많은 흑인들이 주기적으로 경찰의 총에 쓰러지고 그 경찰은 아무 기소도 받지 않는 걸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기도 한 이런 물음은 차별에 대한 깊이있는 사유로 그를 이끈다. 결국 흑인 차별은 ‘인종’문제가 아니며, 노예제의 미국에게 흑인은 곧 부의 원천이었고. 권력을 쥔 백인들이 자신들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 흑인들의 몸의 지배권을 가진 것이란 인식에 도달한다.

코츠는 대학시절, 검은 피부가 열등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분투했다. 자신들의 영웅을 찾아 나섰다. 그때 코츠를 사로잡은 인물은 제국주의 시대 네덜란드 대사와 협상을 벌인 마탐바 왕국(현재 앙골라)의 은징가 여왕이었다. 여왕은 네덜란드 대사가 의자를 내주지 않으면서 모욕을 주려하자 시녀를 불러 ‘인간의자’를 만들게 했다.

“자신이 이 나라에서 꼭 필요한 아래쪽이라고 이해한다는 건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관해, 우리 삶에 관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관해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 관해 생각하고 싶어하는 모습 가운데 너무 많은 부분을 부숴버린다.”(‘세상과 나 사이’에서)

하지만 어느 순간 코츠는 뭔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누군가의 의지에 따라 부서질 수 있고 거리에서 위험에 처하고 학교에서도 두려움에 떨던 내 몸은 그 여왕 가까이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자인 시녀에 가까이 있었다는 인식이다.

인종은 그냥 밑바닥에 있는 존재일 뿐, 그 자리에 여성이든, 성적 소수자이든, 다른 어떤 존재로 대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차별은 권력의 유무에서 생겨난 것이다.

백인 역시 백인으로 범주화되기 이전, ‘코르시카인’, 웨일스인, 메노파 교도, 유대교도 등 다른 어떤 존재였다. 이들은 흑인들 몸에 채찍질과 사슬을 채움으로써 자신들을 하얗게 ‘세탁’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짚어낸다.

9.11테러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 역시 냉담하다. 세계무역센터에서 치솟는 화염을 바라보며 코츠는 오래전 그 곳이 흑인들을 경매에 붙이던 자리였음을 떠올린다. 빈 라덴 이전, 똑같은 장소에서 또 다른 형태의 테러가 자행된 것. 그곳은 바로 흑인들의 ‘그라운드 제로’였다.

비분강개하거나 거친 말 대신 우회와 은유로 깊은 상처와 아픔을 냉담하게 하나하나 드러낸 글은 끝내 희망을 얘기하지 않는다. 괜찮아질 거라는 위로도 투쟁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격려도 없다. 그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뿐이다.

“사모리, 아빠는 우리가 그들을 멈출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그들은 스스로 멈춰야 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는 꿈을 좇지말고 깨어있으라고, 누구의 기준에 맞춘 삶이 아닌 흑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 내라고 아들에게 당부한다.

이 책의 제목인 ‘세상과 나 사이’는 흑인 린치 현장을 묘사한 리처드 라이트의 동명 시, “어느 날 아침 숲속을 거닐다 갑자기 그것과 마주쳤다./비늘 덮인 떡갈나무와 느릅나무가 파수를 선 풀밭 공터에서 그것과 마주쳤다./그 현장의 그을린 온갖 것들이 일어서며 세상과 나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에서 따왔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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