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김수한의 리썰웨펀]‘공익’이 부끄럽다구요? 공익이라 자랑스런 그들의 이야기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이른바 ‘공익’으로 불리는 사회복무요원들에 대한 이야기가 수기집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로 2일 병무청에서 발간됐다.

이 책에는 올해 병무청의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모집에 응모해 당선된 최우수 1편, 우수 1편 등 총 30편이 당당히 수록됐다.

올해 11회째 발간되는 수기집 공모는 지난 4월15일부터 6월14일까지 2달간 진행해 총 479편이 접수됐다. 심사는 한국문인협회가 맡아 공정성을 높였다.

공익근무요원의 줄임말인 공익은 통상 신체적으로 뭔가 이상이 있는 사람들이 현역 군인으로 가지 못하는 대신,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

군복무 대상자들의 신체등급 1~3급은 현역 군복무인 반면, 공익은 신체등급 4등급 보충역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일부 군입대 예정자들은 신체적으로 고되고 외부 사회와 단절된 현역 군 생활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자기 신체에 위해를 가해 보충역인 공익행을 택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복무요원들이 기초수급자, 독거 어르신 등 생활이 불편한 분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병무청 기자단]

그래서 공익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군인의 명예와는 거리가 멀다.

즉, 공익은 건강 상태가 현역 군복무를 할 수 없는 수준이거나, 아니면 군복무 회피자라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는 것.

그래서 병무청은 지난 2013년 6월 병역법 개정에 따라 공익근무요원이라는 명칭을 사회복무요원으로 변경하기에 이른다(같은해 12월 4일 시행). 이에 따라 1969년 1월1일부터 1994년 12월31일까지 향토방위소집이라 불렸던 현역 외 보충역은 1995년 1월1일부터 2013년 12월3일까지 공익근무요원으로 불리다가 2013년 12월4일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불리게 된다.

그러나 2일 발간된 사회복무요원들의 수기집에는 외부 시선과는 다른 사회복무요원들의 고충과 노고가 깊이 배어 있다.

사회복무요원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면 이 책을 통해 사회복무요원들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된다.

▶“공익? 에이 그게 무슨 군인이냐?”=여수지방해양수산청에 근무 중인 빈경환씨는 입선작 ‘보이지 않는 영웅 사회복무요원’이라는 수기(입선)를 통해 사회복무요원들이 사회적 편견에 여전히 가려져 있지만, ‘그들이 있기에 공공기관이 움직인다’는 작은 깨달음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빈 씨가 친구들에게 “나는 공익”이라고 하면 “그게 무슨 군인이냐”, “이 자식 진짜 꿀 빠네‘ 등의 반응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영화 ‘배트맨:다크나이트’를 보면서 이름없이 배트맨을 돕는 알프레드와 루시어스의 존재를 통해 사회복무요원의 존재감을 자각한다.

이어 그는 피아니스트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는 ‘페이지터너’, 의사를 돕는 간호사 등의 예를 들며 ‘사회복무요원이 없는 공공기관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언제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평범한 깨달음 속에 변화된 생활상을 전했다.

빈씨는 “(영화 감상) 그 뒤로 나의 마음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며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소속기관의 감사실 준비 업무에 임했더니 담당 공무원(주임)으로부터 “진짜 잘했다”는 칭찬을 받았다. 그는 큰 기쁨 속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누군가가 알아준다’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그는 ‘우리는 겉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국가를 지키고 시민들이 편리하게 생활하도록 돕는 보이지 않는 영웅’이라며 글을 마쳤다.

대전광역시 서부교육지원청 배울초등학교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인 임정섭 씨는 ‘복무지 밖에서 찾은 자부심’이라는 글(입선)을 통해 또 하나의 작지만 큰 깨달음을 전한다.

6.25전쟁에서 무공훈장을 받은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장교의 꿈을 키웠던 임 씨는 고등학교 시절 운동 중에 다친 어깨가 문제가 되어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초등학교에서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스스로 흔히 ‘똥방위’라 불리는 사회복무요원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사회복무요원들의 작지만 큰 깨달음 “나는 자랑스런 사회복무요원”=대학 여자동기들로부터 ‘나중에 사회복무요원 출신이란 걸 알면 결혼도 제대로 못하고 취업도 제대로 안 된다’는 얘기를 듣고 깊은 상심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24개월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토요일 오후의 한 사건이 그의 생각과 태도를 한 번에 모두 뒤집어놓고 말았다.

KTX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가던 그는 앞 좌석 남성이 생면부지의 맞은 편 여성을 무음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을 알아채고 이걸 알려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큰 갈등에 빠졌다. 결정적 순간에 그를 다잡은 건 다름 아닌 ‘사회복무요원’이라는 그의 사회적 지위였다.

‘군인들은 나라를 지키고, 사회복무요원들은 사회 약자를 보호하며 사회를 좋게 만들어야 한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라.’ 그는 긴급한 그 순간에 1주일간의 병무청 소양교육 당시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그 스스로도 ‘나는 사회복무요원이기 때문에 불의를 보면 나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결국 해당 남성과의 몸싸움 끝에 그를 철도경찰에 넘겼다.

일을 마무리짓고 경찰서를 나설 때 한 경찰로부터 “좋은 일을 한 거다.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한 거다”라는 칭찬을 들었다. 스스로 자부심을 갖게 된 그는 이후 누군가 직업을 물어볼 때 당당히 사회복무요원이라고 밝힐 수 있게 됐다.

세계적인 작가 움베르토 코엘류의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에는 보물상자를 찾아 떠난 주인공이 나온다. 온 세계를 다 헤맸지만 허탕을 친 주인공은 결국 상심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 집 뒷마당에 자기가 그토록 찾던 보물상자가 묻혀 있었음을 알게 된다.

부산 중구청 광복동 주민센터에서 근무 중인 허태근 씨도 ‘연금술사’에서처럼 뒤늦게 사회복지요원으로 근무하면서 보물상자를 찾은 사람 중 한 명이다.

‘행복은 바로 옆에 있다’는 수기(입선)에서 허 씨는 20대의 전부를 사법시험에 걸었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패배자라고 생각했다. 삶의 포기까지 생각한 절망적 상황에서 그에게 사회복무요원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는 그때까지 자신은 ‘어떻게 하면 성공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할 것인가’라는 생각에만 매몰돼 있었다고 한다. 생활은 힘들고, 짜증나고, 외로웠다. 사회복지보조 업무를 맡은 그는 ‘나와 관련되지 않은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나눠주는 일’에 언제나 시큰둥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복무태도가 완전히 바뀐 것은 추운 겨울 어느 날의 한 사건 때문이다.

몸이 불편해 보이는 어떤 남성이 주민센터에 들어와 5만원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돈을…어려운 분들께…기부해주세요…”

그때까지 허씨의 인생관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허 씨가 되물었다.

“기부를 하신다구요?”

“네…꼭 부탁드릴게요.”

언어소통마저 불편해 보였던 그 남성은 ‘꼭’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옅은 미소와 함께 조용히 떠났다.

그 충격적(?) 사건 이후 허 씨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기초수급자 분들에게 지원물품을 가지고 가면서도 마음 속에 불만이 가득했던 그는 그때부터 자신의 조그마한 수고가 누군가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모든 작은 일에 진심을 다했다.

마음을 바꿔먹자 연탄 나르기, 쌀 포대 옮기기가 힘들지 않았다. 기초수급자 분들이 지원물품을 받으러 방문하면, 거동이 힘들어보여 스스로 직접 들어 가져다 드렸다. 그제서야 도움을 받는 모든 분들이 똑같이 말하는 한 마디가 귀에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스스로 잊고 있던 한 마디였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너무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는 거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제가 더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이었지만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감사하다'는 자신의 말이 들리지 않았을까봐 표정으로라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허씨는 말한다. 바로 이곳에서 사회복무를 시작하며 진심으로 누군가를 돕기 전까지 그는 사법시험 실패 후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가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행복은 ‘이기적인 행복’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그곳에서는 ‘나눌 수 있는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이기적인 행복은 쫓으면 쫓을수록 멀어져갔고, 자신의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막다른 길에 도달했을 때 그는 이곳에서 길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앞만 바라봤을 때는 알 수 없었다. 옆을 돌아봤을 때 비로소 그곳에 행복이 있었다”고.

그는 “많은 분들을 도와드렸지만, 그 누구보다 가장 큰 도움을 받은 사람은 나 자신”이라며 “감사합니다”는 한 마디를 모두에게 꼭 전하고 싶다며 글을 맺었다.

sooha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