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리더스카페] 겨드랑이 털로 유명해진 여자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아일랜드 출신의 캐나다 콩고디어대 연극학 교수 에머 오툴을 유명하게 만든 건 ‘겨털’(겨드랑이 털)이다. 영국의 지상파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사회의 미적 기준을 내세우는 상대 패널에 맞서 그가 보여준 것은 18개월동안 기른 풍성한 겨털이었다. 그 방송은 또 한번 페미니즘에 불을 댕겼다. 그의 전화기에 불이 나기 시작했고 하루가 지나자 유럽 전역, 남아메리카, 스칸디나비아, 동아시아에서까지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역사상 겨드랑이 털이 이렇게 주목받은 적이 있을까. 털을 기르는 건 쉽지 않았다. 오툴은 아침 출근때마다 정상적이고 편안한 기분을 느끼는 것과 자리를 비울 때마다 동료들이 체모에 대해 뭐라고 수근거릴지에 온통 신경이 곤두섰다. 오툴은 태어난 그대로 사는게 이토록 어렵고 수치스러운 이유를 부르디외의 아비투스(habitus) 개념을 빌려 설명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규범 그 자체인 아비투스는 사회구성원들의 규범적 행동을 정의하며 한번 만들어지고 나면 변화시키기가 아주 어렵다

저자는 용기를 내 인터넷에 털 난 여성으로서의 모험담을 세세히 적고 그에 따르는 기쁨과 위험을 솔직하게 공유하기에 나선다. 강간의 위협까지 당한 이 일은 고작 털이 아비투스를 흔들고 기존의 젠더 체계에 흠집을 낼 만큼 강력하다는 점을 인식하게 해준다.
[여자다운 게 어딨어/에머 오툴 지음, 박다솜 옮김 /창비]

오툴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집 안팎에서 알게 모르게 내면화하게 되는 성역할과 몸에 대한 인식을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아 하나하나 파헤쳐 나간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젠더 연기.남장하기, 삭발하기, 친척모임에서 집안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기 등이다. 사회적 통념에 몸으로 부딪혀 통과해낸 싸움의 기록이자 사회 구조적 맥락을 날카롭게 짚어낸 페미니즘 입문서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