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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경의 늑도는 2200년전 국제무역항”…게으른 사학계 뒤늦은 토론
[헤럴드경제=함영훈기자] #“영산강을 떠난지 700여리(175㎞가량) 되었으리라. 드디어 멀리 상단이 모이는 늑도가 보인다. 해지기 전에 서둘러 노 젖기 다행이다. 늑도는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운 섬이라서 그럴까. 늑도에 도착하기 전에는 빠른 물살 해역이 많았다. 천국에 도달하기전 가시밭길이랄까. 내가 준비한 사슴고기와 붉은 토기들은 항해 중 아무 이상 없었겠다. 어서 물건을 팔아 태환(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로 바꾸자. 이젠 무얼 살까. 한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청동거울이 탐나 흥정하기 바쁘고, 왜인들은 한나라 철기를 잔뜩 사서 돌아가네.”



유물을 토대로 상상해본 2000~2200년전 경남 사천시 늑도 일대 국제무역거래 풍경이다. 1979년 문화담당지방기자의 제보로 중요한 가능성을 감지한 이후 발굴작업을 벌여 한국 중국 일본의 기원전 2세기~기원 후 1세기대 유물 수만 점을 찾아냈다.

한반도 남부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제작됐거나 영향을 받은 외래계(外來系) 유물이 출토되어 초기철기・원삼국시대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교역 거점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놀랐지만, 국민은 몰랐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역사를 한반도 내로 가둬두려는 식민사관 계승세력이 여전히 사학계 일각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바이칼호 한민족 발자취, 한민족이 주도한 중국 홍산문명, 중국 연안 백제-신라의 영향력 흔적, 늑도유적 등 한국이 대륙을 호령하던 나라이며 동아시아 교역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이 좀처럼 국사교과서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로소 지난달부터 국립진주박물관이 관련 전시회 ‘국제무역항 늑도와 하루노쓰지’를 시작했다. 바다건너 일본 큐슈 이키(壱岐)섬에 늑도와 비슷한 기능을 했던 하루노쓰지(原の辻) 유적 출토품 168점도 비교전시되고 있다.

진주박물관 관계자는 “창선-삼천포대교가 개통되어 이제 늑도는 누구나 차로 갈 수 있는 연륙섬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적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이전보다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라고 아쉬워했다.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확인될때 마다 이를 지체없이 한국의 자랑스런 역사책에 올려야 할 역사학계의 행보는 너무도 느려터졌다. 식민사학자의 후대가 여전히 학계의 주류로 득세하는 것은 정치계나 경제계 일각의 친일세력 보다 훨씬 심각한 국가적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이번에는 전시회와 병행해 학술심포지엄도 함께 열린다. 국민은 ‘이렇게라도 교과서와 다른 역사’를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국립진주박물관(관장 최영창)은 오는 27일 국립진주박물관 강당에서 ‘늑도와 하루노쓰지를 통해 본 동아시아 교류의 양상’이라는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이번 심포지엄은 사천 늑도 발굴 30주년을 기념하여 오는 10월 16일까지 국립진주박물관 두암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과 연계하여 기획됐다.

2000년 전 동아시아 교류에 관한 각 분야 전문연구자들이 모여 현재까지의 연구현황 및 성과를 정리하고 이번 특별전을 통하여 새롭게 공개된 늑도의 유물들을 바탕으로 당시 해상교역의 양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복원해보는 자리다.

심포지엄은 국제무역으로 성장한 해상세력 등을 검토하여 당시 동아시아 교역의 세계에서 늑도 유적이 차지하는 위상을 재확인하는 이건무 전 문화재청장의 기조 강연(‘사천 늑도유적에 대하여’)으로 시작된다.

기조강연에 이어 ▷‘늑도 유적의 성격과 사회구조’(이재현 신라문화유산연구원 학예연구실장), ▷‘늑도에서 보이는 동물뼈를 이용한 의례양상에 대한 시론’(이지은 동아대학교 강사), ▷‘하루노쓰지 유적의 성격과 타 지역과의 관계’(후루사와 요시히사古澤 義久 나가사키현 교육위원회 주사), ▷‘하루노쓰지의 대외교섭’(다케스에 준이치武末 純一 후쿠오카대학 교수), ▷‘늑도의 대외교섭’(이창희 동국대학교 교수), ▷▷‘늑도와 하루노쓰지 시기의 동아시아 교류체제’(정인성 영남대학교 교수) 등 6편의 논문이 발표된다.

주제발표에 이어 사천 늑도 유적을 발견ㆍ발굴하고 연구를 주도한 신경철 부산대학교 교수를 좌장으로 박진일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구스미 다케오 후쿠오카시 주사, 김무중 중원문화재연구원장이 토론자로 참석하여 발표자들과 함께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고대 한일 양국의 국제무역항으로 그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 늑도와 하루노쓰지유적의 성격과 구조를 살펴보고, 대외교섭의 양상을 바탕으로 당시 동아시아 교류체제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진주박물관은 현재 진행 중인 특별전을 통하여 당시 국제무역항 사람들이 남긴 것들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이번 심포지엄은 국제무역항의 생활과 무역의 실체, 교류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복원하는 자리이자, 2000년 전 동아시아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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