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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각자의 ‘할 수 있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스포츠의 감동은 매번 바뀌게 돼 있다. 주인공이 다르고, 그들이 품어 왔고 이겨냈을 꿈ㆍ역경의 스펙트럼이 각양각색이어서다. 더 스펙터클하고 짠한 스토리가 있는 주역이 나타나면, 앞서 환희를 선사한 영웅은 조용히 영광의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 대중이 보이는 관심의 흐름이 그래왔고, 미디어가 이를 쫓아가기에 그런 측면이 있다.

최근 끝난 ‘지구촌의 축제’ 리우 올림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펜싱 선수 박상영의 혼잣말이다. 결승전에서 14대 10으로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그는 숨을 고른 뒤 중얼거렸다.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입모양만으로 ‘워딩의 전모’를 잡아낼 수 있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땀으로 뒤범벅 된 만 20세 앳된 청년의 주문을 목격하곤 나는 그와 한 몸이 돼 버렸다. 진정성이 온전히 전달돼서다. 그의 표정과 몸짓은 마법 같았다. 정교하고 날렵하게 허를 찔렀다. 여태껏 한 번도 무언가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본 기억이 없던 ‘목표의 빈곤’ 속에 놓여 있던 나태함을 질책했다. ‘뭔가 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꿈틀대게 했다. 그가 거짓말같이 내리 5점을 따 금메달을 획득한 건 감동적 스토리의 화룡점정이며, 여운은 당분간 지속될 거다.

낭떠러지에 몰린 게 확실한데 당사자들만 부인하며 ‘마이 웨이’하는 부류도 ‘감동 카드’를 써봐야 한다. 정치와 스포츠를 연결하는 건 마뜩찮지만 어차피 대중의 감동을 먹고 산다는 측면에서 필요하다. 


‘우환(禹患ㆍ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에 발목 잡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집권 세력을 보면 이젠 정말 남 일 같다. ‘한 번 믿기로 한 사람에 대한 신뢰는 쉽게 거두지 않는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용인술(用人述)은 이번 정부들어 수 차례 도전 받았다. 이쯤되면 스스로 퇴(退)를 결정할 법도 한데 버티기하는 당사자의 뚝심이 대단하다. 언젠가 식사자리에서 “난 (피의자를 상대로) 주로 질문을 한 사람인데 (기자들이) 질문해오는 것에 답변을 해야 하나”라는 취지로 얘기하던 그의 자신만만함은 진작에 알아봤으나 이런 화제의 인물이 될 줄은 몰랐다.

집권자가 내놓는 위기 대처 솔루션은 아이러니하다. 민심이반을 걱정해야 할 시기인데 다수의 의견에 척을 지는 해법을 내놓는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경제활성화에 대해 설파해도 공허하게 들린다. 모든 힘을 쏟아부어 뛴다는 느낌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민심 처방전이 이토록 궤도이탈을 했는데, 행정수반 밑에 있는 관료들이 정교하게 국민들 가려운 곳을 긁어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쓸 데 없는 짓에 가깝다.

대통령은 “리우올림픽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이 보여준 긍정의 에너지가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긍심으로 이어져 우리 사회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길 바란다”(8월 22일 을지국무회의)고 했다. 긍정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올 구멍이 어디에서 막혀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틀에 박힌 메시지만 읊는다면 ‘우리의 할 수 있다’가 아닌 ‘각자의 할 수 있다’로 머무르다 끝날 거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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