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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김아미 라이프엔터섹션 차장] 좀비와 위작
영화 ‘부산행’을 보고 난 후 좀비 영화를 보고 싶어 ‘월드워Z’를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때 흘려들었던 대사가 귀에 들어왔다. 이스라엘이 좀비들의 습격에 대비해 거대한 벽을 세우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10명 중 9명이 맞다고 생각하는 이론을 단 한명은 반드시 부정해야 하는 시스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믿기 싫은 건 믿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믿기 싫은 것을 주장하는 누군가가 존재했을 때, 위기에 대비할 수 있음은 비단 영화속 일 뿐만은 아닐거다. 우리 미술계에는 믿기 싫은 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명지대 객원교수)과 이동천 감정학 박사다. 미술계에서 ‘가짜’ 주장을 가장 많이 했던 이들이다. 최 소장의 경우 2007년 촉발된 ‘빨래터’ 소송에서 감정인단 20명 중 19명이 진품이라는데 혼자 가짜를 주장했다. 이 박사는 2008년 1000원짜리 지폐 뒷면에 있는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가 가짜라는 내용의 책을 냈다.

2016년 두 사람이 또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최 소장은 경찰의 이우환 위작 수사에 참여해 압수품 12점을 모두 가짜라고 결론 내렸고, 이 박사는 ‘미술품 감정비책’이라는 저서에서 계상정거도는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 서울시립미술관에 걸린 천경자 그림까지 가짜라고 주장했다.

같은 사람이 계속 나서 이것도 가짜, 저것도 가짜라 하니, 듣는 입장에서는 피로해진다. 진짜든 가짜든 내 알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아가, 잘 그린 가짜라면 괜찮지 않은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에 대한 최 소장의 대답이다.

“가짜라도 일반 대중들은 나보다 잘 그린 그림이니까 좋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림을 잘 아는 사람들이 봤을 땐 두 번 다시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조악하다. 좋은 걸 보여주는 게 공부하는 사람들의 의무 아닌가. 그게 오늘의 문화고, 문화유산이 된다.”

오늘의 문화를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는 소명의식 때문이든, 혹은 일부의 비난처럼, 감정권을 둘러싼 패권 다툼 때문이든, 우리 미술판에서 가짜를 주장하는 사람치고 제 대접받는 사례는 드물다. 최 소장은 9월 쯤 연구소를 휴업할 생각이다. 더 이상 운영비를 댈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간간히 있었던 국가 용역 사업마저 이우환 사건 이후 뚝 끊겼다.

‘도상학(圖像學)’을 기반으로 한 이 박사의 합리적 의심은 ‘실물도 보지 않고 가짜라고 했다’는 이유로 주류 미술계에서 금세 외면 받았다. 이후 이 박사는 연락이 두절됐다. 과거에도 그랬듯 스스로를 ‘유폐’했다. 본업인 감정은 폐업한지 오래다.

위작 시비가 계속 일자 소모적인 논쟁을 자제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본래 논쟁이란 게 당대에는 소모적이다. 그것이 생산적인 일로 평가받는 건 후대의 일이다. 그런데 그 소모적인 논쟁을 누가 지금 이어가고 있나. 집단 무기력에 빠진 학자, 평론가, 감정 전문가들은 제대로 논쟁할 만한 판도 만들지 않았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외면하는 한 좀비같은 위작들은 죽지 않는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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