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리더스카페] 일베, 매갈리아를 규제하지 못하는 이유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최근 우리 사회에서 ‘혐오 발언’은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다. 김치녀, 일베에서 시작된 혐오발언은 매갈리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으로 더욱 양산, 확산돼가는 추세다. 이런 혐오현상을 학문적으로 조명하는 작업도 활발해지는 가운데 혐오와 성역할의 본질을 새롭게 조명한 두 권의 책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페미니스트’로 소개되는 주디스 버틀러의 ‘혐오발언’(알렙)과 미국의 사회운동가 토니 포터의 ‘맨박스(Man Box)’(한빛비즈)가 바로 화제의 책. 그런데 둘은 좀 당혹스럽다. 버틀러는 ‘상처를 주는 말’에 모욕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포터는 ‘선한 남자’가 ‘나쁜 남자’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혐오 발언/주디스 버틀러 지음, 유민석 옮김/알렙

주디스 버틀러는 이 책에서 상처를 주는 말이 어떻게 발화, 전달되고 수용되는지 마치 화살이 날아가는 모습을 담은 프레임처럼 정밀하게 분석해낸다. 버틀러는 흔히 언어학자나 철학자가 주장하는 혐오발언은 권력을 가진 자가 의도적으로 행사하는 차별행위이고, 이 말들은 곧 행위가 되며 수신자를 열등한 지위로 종속시킨다는 견해를 부정한다. “말하기가 그 자체로 행하기인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버틀러는 혐오발언이 상처를 주게끔 행위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동시에 혐오발언 규제의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언어가 직접적, 인과적으로 영향을 주진 않는다고 본다. 발언과 행위, 발언과 효과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는 것이다. 언어 행위가 반드시 의도한 대로 행위하지 못한다는 특성은 혐오 발언의 효력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뜻하며, 한편으론 혐오발언이 전복에 취약함을 보여준다.

버틀러는 상처를 주는 말의 전달은 그것이 호명한 사람을 고정시키거나 마비시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또한 예상밖의 가능성을 여는 응답을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즉 ”혐오 발언은 듣는 이를 침묵시키지만은 않으며 오히려 되받아쳐 말하는 저항의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버틀러는 책에서 혐오발언과 관련, 국가 규제의 문제, 검열과 표현의 자유, 언어적인 상처, 말의 주체와 호명된 자의 관계 등을 다루며, 최근 제기되고 있는 혐오발언을 국가가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혐오발언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가 그들을 지지하는 것과 같다는 논리에 버틀러는 혐오발언에 어떤 규제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규제가 오히려 발언에 의미를 다시 부여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혐오발언을 언어ㆍ철학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이어서 상당히 전문적이지만 옮긴이의 친절한 해제가 이해를 돕는다.

맨박스/토니 포터 지음, 김영진 옮김/

토니 포터의 ‘맨박스’는 남자다움의 강박이 가져오는 불행에 주목한다. 토니 포터는 200만뷰를 기록한 ‘남자들이 꼭 봐야 하는 TED강연’으로 꼽히는 ‘A Call To Men(남자들에게 고함)’으로 잘 알려진 강연자. 포터는 책에서 우리가 당연시해온 ‘남자다움’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남자를 둘러싼 고정관념을 ‘맨박스’로 규정하고 거기서 나오라고말한다. 모든 남성이 우월하지 않아도 괜찮고 느낌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하며, 그냥 친구로만 지내는 이성이 있어도 괜찮다고 권유한다.

“남자로서 가질 수 있는 훌륭한 자산은 지키되 남성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돌아봐야 한다”는게 그의 주장.

맨박스를 불편하게 여기는 남자도 있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 안에서 결속감과 안도감을 얻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남성의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든 맨박스는 개인은 물론 사회 전반에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 남자들의 삶을 지배하는 데 그치지 낳고 여성의 삶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가령 여성들은 밤늦은 시간에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계단을 이용할 때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택시를 탈 때 차량 번호와 색깔을 주위에 남겨야 한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거나 한 낮 야외에서조차 큰 차 옆에 주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배운다. 이젠 혼자 공중 화장실 가기도 위험할 정도로 여성들의 삶은 위축돼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대부분의 남성들은 남의 일이라고 여긴다. 단지 몇몇 나쁜 남성, 예외적 남성이 저지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저자는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와 자신은 별개라고 생각하며 자아 성찰을 거부할 때 사회 구조적 차별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조차 외면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선한 남자들의 행동이 오히려 폭력을 강화한다는 얘기다.

“우리의 침묵이 결과적으로는 동의의 표현이나 마찬가지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책은 모든 남성이 여성 폭력 문제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의무감을 갖고 진솔하게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각오로 싸워주길 부탁하고 있다. 딸이 겪게 될 세상을 생각하면 모든 건 확연해진다는 것. 매 순간 딸들을 쫒아다니며 방패막이 돼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고 저자는 묻고 있다

/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