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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 정치의 계절, 권력을 쥘 자 누구인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책은 권력에 영향을 미친다. 과거 왕들에게 책은 권력을 지킬 방패였다. 천한 무술이의 아들로 뒤늦게 독서를 시작한 영조는 책을 탐독했다. 신하를 압도할 정도였다. 정조 역시 매일 분량을 정해놓고 책을 읽었다. 독서대왕을 꼽자면 세종대왕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어린 세종은 밥을 먹을 때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어린 그에게 책은 살벌한 정치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왕이 돼서는 독서는 국가경영의 바탕이 됐다. “책을 보는 중에 그로 말미암아 생각이 떠올라 나랏일에 시행한 적이 많았다”고 ‘세종실록’은 기록한다.

대권을 향한 정치의 계절. 정치인들의 손에는 어떤 책이 쥐어져 있을까. 최근 김무성, 오세훈, 김부겸 등 정치인들의 여름철 독서목록에 ‘랑야방’이 올라 화제가 되고 있다. 

랑야방/하이옌 지음, 전정은 옮김/마시멜로

책 한 권으로 일약 대륙의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른 하이옌의 무협정치소설 ‘랑야방’은 대량이라는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기린지재(麒麟之才): 그를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라는 말이 나돌 만큼 뛰어난 재사인 매장소가 주인공이다. 천하에 모르는 일이 없다는 랑야각에서 발표하는 랑야 공자방의 서열 1위는 언제나 그의 차지. 치세에 능한 매장소를 얻어 황제가 되려는 왕자들은 기를 쓰고 그를 모시려 하지만 매장소는 정작 권력에는 뜻이 없고 착하고 정의감이 넘치는 일곱째 왕자, 정왕을 황위에 올리기 위해 지략을 펼친다. 정왕을 선택한 매장소의 목적은 오로지 복수. 12년전 아버지 적염군 대원수 임섭이 역적으로 몰려 가문이 멸족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 그는 여러 개의 이름을 써 신분을 가린다. 그가 임섭의 아들 임수인 줄 아는 이는 없다. 정왕 역시 어릴 적 친구인 그를 몰라본다. 정왕은 임수 집안이 역적으로 몰릴 때 편을 들다가 황제의 눈 밖에 나 변방으로 쫒겨난 신세다. 무협소설이 대체로 그렇듯 암투와 복수, 우정과 사랑을 뼈대로 삼고 있지만 이 책이 정치인들의 관심을 받는 건 권력의지가 없는 정왕을 황제로 만드는 킹메이커 매장소의 책략이 시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매장소의 뛰어난 언변과 역동적인 인물의 관계도 역시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랑야방’은 2011년 중국 온라인 소설 연재 사이트에서 큰 인기를 끈 뒤, 책으로 출간돼 베스트셀러로, 또 드라마로 인기를 끈 바 있다. ‘권력의 기록’이란 부제를 단 ‘랑야방’은 현재 1,2권이 나와 있고 3권은 다음 주 출간된다.

세종의 서재/박현모 외 지음/서해문집

‘세종의 서재’(서해문집)는 성군 세종의 리더십의 형성과 발휘에 영향을 준, 세종을 만든 책들을 모았다. 청년 세종은 ‘구소수간’(歐蘇手簡)을 즐겨 읽었다. ‘구소수간’은 구양수와 소식의 서찰을 모은 책으로 한문 서찰을 작성할 때 지침서로 통했다. 세종이 백 번, 천 번 읽었다고 대대로 회자될 만큼 애독했던 책이다. 두 사람의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사유 양식, 농후한 서정성, 빼어난 문예미에 푹 빠진 세종은 그 감수성을 훈민정음 창제의 동인으로 활용했을 것이란게 심경호 고려대 교수의 견해다.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세종을 성군으로 만든 책으로 주저없이 ’대학연의‘를 꼽는다.

‘대학연의’는 세종이 선택한 첫 경연 교재로 세종의 정치와 리더십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책이라 할 만하다. ‘대학연의’란 사례를 담아 ‘풀어쓴 대학’이란 뜻으로 ‘대학’의 이해를 돕는 해설서다. 남송의 학자 진덕수가 사서오경과 사서에서 관련 내용을 뽑아 역대의 치란흥망과 인사의 시비선악을 분류, 상세한 해설을 붙여 편찬한 책으로 유교 국가건설과 성군 정치를 구현하는데 바탕이 된 학습교재였다. 세종의 즉위 교서부터 국정 철학의 핵심인 ‘민유방본(民惟邦本)’에 이르기까지 세종의 많은 말과 행동은 모두 이 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법전인 ‘당률소의’를 세종의 통치 원칙과 부합되는 법전으로 택한 것은 바로 법치 지향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률소의’는 역대 율 가운데 가장 형이 가벼운 것으로 평가되는데 이는 생명을 살리는 인의 정치에 힘쓰고자 한 세종의 철학과 일치한다. 세종은 이와함께 원나라 최후의 법전인 ‘지정조격’을 활용했다. ‘지정조격’은 중국 법제가 황제 중심에서 육부 중심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한 법전으로 판례법적 성격이 강하다. 현재 경주본이 완본은 아니지만 실물로 전해오는 세계 유일본이다. 세종은 이를 적극 보급해 강독과 시험, 인사고과에도 반영할 만큼 중시했다, 예약과 법제의 정비, 구체적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형사법원으로 ‘지정조격’을 활용한 것이다. 세종은 재위기간 동안 조선이 유교 국가로 자리 잡는데 주춧돌을 놓았다. 32년동안 형성된 문물제도는 국가 운영 전체에 걸쳐 있고, 이는 500년 조선의 기틀이 됐다. 여기에는 세종이 선택한 책들이 크게 작용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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