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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왕 생전퇴위가 불러온 세가지 논란…정년제? 모계천황? 정치개입이다?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일본에서 ‘천황제’(일본에서 왕실제도를 지칭하는 표현)는 가장 해묵은 논쟁거리 중 하나다. 천황제 폐지론자에서부터 왕실전범 개정론자까지 논란이 지속돼 왔다. 8일 생전 퇴위 의사를 밝힌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영상메세지는 천황제를 둘러싼 논란을 재점화했다.

▶아키히토 일왕의 영상메세지, 정치개입이다?= 요코다 고우이치(横田耕一) 규슈(九州)대학교 헌법학과 명예교수는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ㆍ닛케이)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아키히토 일왕의 영상메세지 자체가 정치개입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일반론으로서 생전퇴위 시비를 논하는 것과 일왕의 메세지를 받고 논하는 것은 다르다”며 “전자라면 찬성이지만, 후자는 일왕의 동정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냉정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영상메세지를 통해 생전퇴위에 대한 생각 혹은 기분을 드러내는 것조차도 정치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아키히토 일왕의 의지대로 즉각 일본 왕실 법률인 왕실전범 개정에 나서는 대신, 내부 검토를 거쳐 유식자 회의(전문 자문단 회의)를 설치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곧바로 유식자 회의를 구성해 법 정비에 착수하면 일왕이 국정에 개입했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어 좀 더 복잡한 절차를 택한 것이다.

요코다 교수는 “(일왕의 영상메세지가) 발단이 되어 제도 개정의 논의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일왕의 의사가 정치에 개입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연령에 의한 공무부담이 퇴위를 희망하는 이유라면 그 무게를 줄이면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왕이 국사행위(국가 행사 혹은 의전활동)만 해도 문제없다”고 지적했다. 요코다 교수는 ‘천황제’가 국민주권과 기본적인 인권의 원칙과 원리적으로 모순되는 제도라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정년제? 섭정제? 아베의 선택은? = “일왕의 고령화에 따른 대처방법은 국사행위와 일본국 상징으로서의 행위를 한없이 축소해갈 우려가 있다…(중략)…섭정을 하게 될 경우 일왕이 요구되는 임무를 다하지 못한 채 평생의 끝에 이르기까지 왕으로 계속 남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날 영상 메세지 말미에 아키히토 일왕은 ‘섭정’의 한계까지 언급하며 왕실전범 개혁을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섭정이 아닌 ‘생전퇴위’에 대한 뜻을 강하게 피력한 것이다. 닛케이와 요미우리(讀賣)신문 등도 아키히토 일왕이 정치개입을 우려해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개인의 의사를 “강하게” 표출했다고 분석했다.

아키히토 일왕의 주장에 따라 국왕정년제가 다시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지난 2011년 아키히토 일왕이 폐렴으로 19일 간 입원하면서 일본에서는 ‘국왕정년제’ 논쟁이 불거졌다. 아키히토 일왕의 차남인 후미히토(文仁) 왕자가 기자들에게 “정년제가 역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당시 마이니치(每日)신문 등은 왕족이 이례적으로 왕실전범에 대한 입장을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국왕정년제가 실현될 가능성은 적다. 마이니치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가 왕실 법률에 관한 ‘황실전범’의 16조 2항을 완화해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섭정을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아베 총리가 아키히토 일왕에 한해 ‘생전퇴위’를 허용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베 내각이 국왕정년제 도입을 꺼리는 이유는 연호, 호칭 등 논란거리가 산적하기 때문이다. 국왕정년제가 도입되면 당장 아키히토 일왕과 차기 왕위에 오를 나루히토 왕세자의 호칭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가 된다. 교도(共同)통신은 현재 일왕에게 붙이는 경칭인 ‘폐하’라는 명칭을 퇴위 시에도 붙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루히토 왕세자가 즉위할 경우 연호도 현행 헤이세이(平成)에서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국왕정년제에 따라 나루히토 왕세자가 왕위에 오를 경우,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헌법 개정에 차질이 생길 공산이 크다. 포스트 세븐 지에 따르면 나루히토 왕세자는 개혁적인 성향이 강한 인물이다. 그는 왕실 전통을 깨고 현진 외교관이었던 마사코(雅子) 왕세자비와 결혼에 성공했다. 특히 나루히토 왕세자는 자신의 생일 때마다 “우리나라(일본)는 전쟁의 참회를 통해 전후 헌법을 기초로 녹력해 평화와 번영을 향유하고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아베 내각이 생전 퇴임보다는 섭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 ‘모계 일왕’ 실현 가능할까= 가장 큰 논쟁거리는 바로 왕위계승 문제다. 상속 문제는 아키히토 일왕의 영상메세지에 앞서 일본에서 가장 해묵은 논쟁거리 중 하나다. 특히 장자에게서 장자에게로, 남자에게서 남자에게로 이어지는 ‘부계장자 상속제’를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나루히토 왕세자와 마사코 왕세자비 사이에는 아이코(愛子) 공주뿐이다. 현행 왕실전범은 모계 승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나루히토 일왕 뒤를 이을 왕위계승자는 아키히토 일왕의 차남인 후미히토(文仁) 왕자와 그의 아들 히사히토(悠仁)왕자다. 이에 대해 요코다 교수를 비롯한 모계 일왕 지지론자들은 아이코 공주가 나루히토 왕세자의 뒤를 이은 여성 일왕이 되는 방법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요코다 교수는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郞) 전 총리 산하의 왕실전범 유식자회의에서 “모계 일왕을 인정하더라도 헌법 개정의 필요성은 없다”라며 “오히려 왕실전범이 남계 남성에 한정한 것이 위헌이 될 여지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히사히토 왕자가 태어나기 전인 2006년 상반기까지 고이즈미 내각은 모계 일왕의 취임을 허용하기 위한 왕실전범 개정을 검토했다. 하지만 같은해 9월 일본 왕실에 아들이 41년 만에 태어나자 왕실전범 개정과 모계 승계에 대한 논의는 사라졌다. 이후 노다 요시히코(野田 街彦) 전 내각이 2012년 여성왕족을 대상으로 한 천황제 개혁을 검토했지만 아베 총리가 정권은 잡은 뒤 부계 남자 왕족에 의한 안정적인 왕위계승을 실현하기 위해 제도 개선을 검토했다. 때문에 닛케이는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퇴위 의사로 과거의 논쟁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사기에 따르면 125대 일왕 중 생전에 물러난 일왕은 총59명에 이른다. 하지만 대부분 권력투쟁에 휘말렸기 때문에 전후 왕실전범이 정립된 이후 생전 퇴위에 관한 규정이 사라졌다. 1984년 궁내청의 야마모토 사토루(山本悟) 차장은 왕실전범에 생전퇴위에 관한 규정이 없는 이유가 “상황이나 법황이란 존재가 폐해를 불러올 우려가 있고 일왕의 자유의사에 근거하지 않은 퇴위 강제, 일왕에 의한 자의적 퇴위 가능성이 있기 때문”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한편, 닛케이에 따르면 향후 유식자 회의를 통해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퇴위에 대한 헌법 개정 가능성과 상왕의 지위와 새로운 일왕의 지위 및 연호, 그리고 왕실전범 개정과 모계 일왕의 검토 가능성을 모두 검토한 뒤 보고서를 아베 내각에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 내각이 국무회의를 통해 보고서를 채택하면 보고서는 국회에 제출돼 표결을 통해 결의되거나 재논의될 전망이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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