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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염 소송 ①] ‘범인’은 폭염…근데 사망 보상은 누가 하나
-최근 5년 ‘폭염재해’ 60%가 건설현장서

-업무상 재해 여부 둘러싸고 법정 공방

-휴게시설 보장ㆍ평소 지병 등 주요 쟁점



[헤럴드경제=김현일ㆍ고도예 기자] 체감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은 요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게 특히나 고역이다. 흔히 쓰는 ‘살인적인 더위’라는 표현이 이들에겐 결코 과장이 아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1~2015년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열사병ㆍ열경련ㆍ열탈진 등) 재해자 44명 중 건설 근로자가 27명(61.4%)에 달했다. 사망자 10명 중 7명도 건설현장 근로자였다.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재해 인정 여부를 놓고 행정소송이 벌어지고 있어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사진은 폭염 이미지.

때문에 근로자들과 근로복지공단 사이에 업무상 재해 인정 여부를 놓고 종종 행정소송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경우 폭염이 실제 사망이나 발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는지가 중요 쟁점이 된다.

2013년 6월 경기도 양주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오모(당시 44세) 씨는 작업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러 가던 중 쓰러져 사망했다. 이날 기온은 32.5도까지 치솟았다. 부검 결과 오 씨의 사인은 급성 심장사로 추정됐다. 평소 오 씨는 심장질환으로 치료받은 적이 없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로 인한 사망으로 볼 수 없다며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거부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오 씨 어머니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은 공사현장에 그늘막이 없어 근로자들이 뙤약볕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점에 주목했다. 사망 당일 오 씨는 햇빛에 쉽게 달아오르는 철근을 절단하는 작업을 했다. 게다가 전날에도 최고기온이 31.6도에 이르는 무더위 속에서 철근구조물 안에 쪼그려 앉은 채 4시간 동안 휴식없이 작업을 수행했다. 재판부는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강도 높은 업무 수행으로 오 씨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고 보고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반면, 경북 포항의 한 공사장에서 일하던 일용직 근로자 황모 씨는 2013년 8월 뇌내출혈 진단을 받고 같은 이유로 요양급여 지급 소송을 청구했지만 패소했다.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재해 인정 여부를 놓고 행정소송이 벌어지고 있어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사진은 폭염 이미지.

황 씨는 당시 36도까지 치솟는 살인적인 폭염 속에서 회사에 요구하는 작업량을 맞추기 위해 과로한 결과 뇌출혈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당시 황 씨가 일하던 공사현장에는 에어컨이 설치된 두 평 남짓의 휴게실이 있었는데 근로자들이 많을 때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햇볕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황 씨가 이전부터 고혈압이 있었고, 뇌출혈 발병 전 급격한 업무 환경의 변화나 부담이 없었다며 요양급여 지급을 거부했다.

1심은 회사가 폭염에 대비해 제대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점을 인정해 황 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 재판부가 이를 뒤집었다. 부산고법은 전문가들의 소견을 근거로 “고혈압이 자연스럽게 악화돼 뇌내출혈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더위 속 작업과는 관련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폭염이 지속되는 상황이긴 했지만 의학적으로 더위와 뇌출혈 발생의 연관성에 대한 직접적 연구는 아직까지 없고, 다만 뇌출혈은 여름철보다는 겨울철에 더 많이 발생한다고 보고되고 있다”며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황 씨의 음주와 흡연량도 판결에 영향을 끼쳤다. 황 씨는 하루에 7개비 정도의 담배를 20년간 피운 데다 1주일에 한번 소주 1병을 마시는 습관에 비춰 음주와 흡연이 뇌출혈 발생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황 씨는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결국 패소했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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