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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 많은 한국 사람들, 고마워요”…귀화 중국인, 한국서 새생명 찾아
- 길병원, 중국 의료기관과 협력해 악성 급성골수백혈병 환자에 조혈모세포이식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중국 한족 출신으로 2011년 한국에 귀화한 등희하 씨는 그해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인근 산부인과를 다녔고, 검진 결과 오른쪽 난소에 혹이 발견됐다.

등 씨는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산부인과 의사와 상담 후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혹은 점점 커졌다. 등 씨는 안타깝게도 둘째 아이를 유산했다.

유산 후 생리 불순과 복통이 계속됐고, 거듭된 치료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피검사 결과에서는 백혈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나왔다. 산부인과 의사는 큰 병원에 가볼 것은 당부했고, 그해 12월 가천
등희하(좌)씨와 박진희 가천대 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우).[사진제공=가천대 길병원]

등희하(좌)씨와 박진희 가천대 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우).[사진제공=가천대 길병원]
대 길병원을 방문했다. 등 씨는 급성골수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코리안드림을 가지고 귀화해서 한국말도 잘 못하는 남편과 결혼해 작은 중국집을 차리고 세살난 아들과 행복한 삶을 꿈꾸던 등 씨였다. 등 씨에게 암 선고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급성골수백혈병은 성인 백혈병 중 가장 흔한 형태로, 급성 백혈병의 65%를 차지한다. 매년 인구 10만 명당 1.46명꼴로 발생한다. 아직까지 정확한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유전성 요인, 방사선 조사, 화학약품 노출과 항암제 등이 발병 원인으로 보고되고 있다.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 후 가천대 길병원 혈액종양내과 박진희 교수는 곧바로 등 씨를 무균실로 옮겨 치료를 시작했다. 관해(완화) 유도 요법 치료로 다행히 완전관해에 도달했지만, 염색체검사 결과 재발 방지와 장기생존을 위해서는 조혈모세포 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조혈모세포이식을 위해서 등 씨와 조직적합성(이식 시 거부반응을 일으킬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요인)이 같은 조혈모세포가 필요했다.

등 씨는 곧바로 중국의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다행히 중국 현지 의료기관의 검사 결과 4남매 모두가 등 씨와 조직적합성이 일치했다. 남매 중 가장 젊고 혈액형이 같은 작은 오빠가 이식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식 가능 여부 확인과 실제 이식을 위해서는 넘어야할 절차가 많았다. 게다가 증여자는 중국에 있는 상황이었다.

박 교수를 비롯한 의료진들은 중국 현지 의료기관과 전화와 이메일을 수시로 주고받으며 등 씨의 조혈모세포 이식을 준비해나갔다. 오빠의 한국행 비자발급에 문제가 생겼다. 중국영사관에서 비자발급 불가 판정을 받은 것.

등 씨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조혈모세포이식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한 박 교수가 직접 중국영사관에 전화를 해 상황을 설명하고 비자발급을 부탁했다.

박 교수의 설득에 결국 중국영사관에서는 한국행 비자를 발급해줬고, 조혈모세포를 증여받아 등 씨는 성공적인 이식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이식수술은 성공적이었으나 모두에게 그렇듯 암 치료 과정은 등 씨에게도 큰 고통이었다. 음식을 먹으면 토했고, 이는 영양부족 사태로 이어졌다. 환청이 들리고,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신경은 예민해졌고, 급기야 병실에 불을 켜는 것조차 싫어할 정도가 됐다.

등 씨는 “매일 식후 먹는 곰팡이균 예방약은 너무 힘들었다. 그 약을 먹으면 토했다”며 “그런 제 모습을 보고 간호사가 쌀음료와 함께 먹을 것을 알려주고, 그 뒤로는 비위가 덜 상해서 약을 잘 먹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등 씨는 의료진의 격려와 가족을 생각하며 힘든 암 치료 과정을 견뎌냈다. 조혈모세포 이식은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서서히 건강을 되찾아 갔다.

매일 20~30분씩 걷고 스트레이칭을 했다. 야채, 고기, 생선을 골고루 배분해 식단을 짜고 과일을 매일 먹었다. 평소 식단에 오이와 토마토는 반찬처럼 항상 곁에 두고 먹었다.

등 씨의 의지에 길병원 의료진들의 헌신과 노력이 더해져 최근 완치 판정을 받았다.

등 씨는 “길병원 의료진을 비롯해 정이 많은 한국 사람들, 끝까지 곁에서 지켜준 가족에게 깊이 감사하다”며 “암으로 투병 중이라면 모두가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치료를 받는다면 모두가 성공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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