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마약과의 전쟁 선포한 경찰] ‘시원한 술’꾐에 빠졌다?…경찰 함정수사 도마위에
서울경찰청 마약수사계 즉석만남 앱접속
모텔에 마약 들고 오게 해 검거 성과
‘범의유발’ ‘기회제공’ 함정수사 해당 논란
警 “마약소지범 대상…SNS유통근절효과”



“시원한 술 있어요.”

지난해 초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혐의로 집행유예형을 선고 받고 풀려난 A 씨는 필로폰을 끊으려 노력하던 중이라고 했다. 무료한 일상에 A 씨는 가벼운 만남을 가질 여성을 찾고자 ‘즉석만남’ 스마트폰 앱에 접속했다.

A 씨는 앱에서 한 여성을 발견했다. ‘시원한술아는사람(여ㆍ34)’으로 아이디를 설정한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동안 참아왔던 필로폰에 대한 욕구가 다시 피어올랐다.

‘시원한 술’이란 마약계 은어로 필로폰을 의미했다. A 씨는 ‘시원한술아는사람’과 채팅을 시작했다. ‘시원한술아는사람’은 “님, 오늘이랑 내일까지 할 수 있을 정도 (필로폰 분량이) 되나요?”라고 A 씨에게 물었다.

A 씨는 “필요하다면 함께 할 수 있죠.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라고 답했다. ‘시원한술아는사람’은 “저 많이씩 하면 큰일나요. 반 칸?” 정도로 답했고, A 씨는 “저도요”라고 답했다.

A 씨는 ‘시원한술아는사람’과 몇차례 통화하고 사진도 주고받았다고 했다. 만나기로 했다. ‘시원한술아는사람’은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에 위치한 모 모텔 501호로 오라고 했다.

모텔에 도착한 A 씨는 501호 문을 두들겼다. ‘시원한술아는사람’ 아이디의 주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문을 열어주더니 A 씨를 지나쳐 모텔방을 나가버렸다. 황당해하는 A 씨의 양팔을 모텔방에 있던 신체 건장한 남성 4명이 붙잡았다. 이들은 서울경찰청 마약수사계 소속 경찰관들이었다.

구치소에 수용된 A 씨는 자신을 비롯한 마약사범 수십여명이 같은 방법으로 경찰에 잡혔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구는 같은 모텔 601호에서 잡혔다. 또 다른 누구는 필로폰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시원한술아는사람’ 쪽으로부터 먼저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필로폰을 구해오란 말에 사서 갔다가 현행범으로 잡히기도 했다.

경찰에 붙잡힌 마약사범 중 한 관계자는 “얼핏 듣기론 ‘시원한 술 있어요’ 꾐에 넘어간 사람들이 4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마음잡고 살아보려고 하는 마당에 저렇게 유혹하는 것은 함정수사 아니냐”고 했다.

대법원은 함정수사를 ‘기회제공’과 ‘범의유발’로 구분 짓고 있다. ‘기회제공’은 범죄를 저지를 생각을 이미 갖고 있던 사람에게 수사기관에서 기회를 제공해 범죄를 저지르게 한 뒤 붙잡는 것을 의미한다. ‘범의유발’은 범죄를 하려고 하는 생각이 없었으나, 수사기관에서 유혹해서 범죄를 저지르게 한 뒤 붙잡는 것을 의미한다. 대법원은 ‘범의유발’을 통한 수사는 함정수사로 봐 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단순 ‘기회제공’의 경우엔 함정수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다. 


법조계 관계자는 “서울경찰청의 마약 수사는 함정수사로 볼 수 있는 ‘범의유발’과 ‘기회제공’의 경계선에 걸쳐 있다”며 “누가 먼저 메시지를 보냈는지를 따져보고, 세부적인 메시지의 내용을 살폈을 때 필로폰, 주사기 등을 경찰 쪽에서 구해오라고 했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시원한 술’, ‘아이스’를 검색하면 많이 나온다”며 “마약을 이미 갖고 있으면서 섹스까지 같이 할 대상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수사 대상이었다”고 했다.

이어 “함정수사의 소지가 있는 사람들, 즉 마약을 구해오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잘라버렸다”며 “이러한 수사 기법 덕분에 SNS, 스마트폰 앱을 통한 마약 유통이 많이 줄었고 상선(마약유통책)까지 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김진원 기자/jin1@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