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데스크칼럼] 일본의 ‘노후파산’ 남의 일 아니다
일본 도쿄 미나토구(港區)엔 고급 주택들이 밀집해 있다. 도쿄 23개구 중 잘 사는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롯폰기힐즈, 오모테산도, 오다이바 등 도쿄 여행하면 반드시 들르는 관광명소도 많다. 일본의 명문대학 중 하나인 게이오기주쿠대학도 미나토구에 있다. 

나는 몇 해 전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연수를 할 때 이곳에 거주한 적이 있다. 가끔 일본인들과 저녁을 먹을 때가 있었는데, 미나토구에 산다고 하면 ‘좋은데 사시는 군요’ 하며 부러워하곤 했다. 난 그 때 게이오대학이 싼값에 제공한 15평짜리 기숙사에서 아내, 그리고 아이 둘과 북적대며 생활했다.

서울로 치면 강남구에 해당하는 미나토구에도 ‘65세 이상 홀로 사는 고령자’의 30%가 생활보호 수준 이하(1500만원 이하)의 연수입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통계가 있다. 또 이들 가운데 지방정부의 ‘생활보호’ 자금을 지원 받는 사람은 20%에 불과하다고 한다.

일본 공영방송 ‘NHK 스페셜’ 제작팀이 펴낸 ‘장수의 악몽 노후파산’에는 일본 노인들의 비참한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연금수급, 자택소유, 예금, 가족 같은 노후를 지탱할 ‘공식’이 처참하게 깨져버린 일본사회의 민낯을 공개한 충격 리포트다.

노후파산이란 의식주 모든 면에서 자립능력을 상실한 노인의 삶을 일컫는 신조어다. 가족이 있고, 집이 있고, 착실하게 연금을 부었고, 직장에 온몸 바쳐 일했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에 맞이한 건 파산뿐인 평범한 인생들 이야기다. 

미나토구에 거주하는 한 노인의 월수입은 국민연금 65만원에 회사원 시절 기업에서 적립한 ‘후생연금’ 35만원을 합쳐 100만원 가량이다. 집세로 60만원을 내고 식비 같은 생활비로 40만원을 쓰면 끝이다. ‘집세가 좀 싼 곳으로 이사하면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노인은 “매달 생활비에 쪼들리는데 이사할 돈이 있을 리 없지 않냐”며 허탈한 웃음을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일본 헌법에서 규정한 ‘생활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죽을 때 장례비로 쓰기 위해 모아둔 수백만원의 예금 때문이다. 구청에 생활보호를 신청하면 “예금이 없어지면 그때 다시 오십시오”라는 대답만 듣는다.

우리나라 보건복지부가 기초생활보장 ‘맞춤형 급여’ 제도를 시행한지 1년이 지났다. 이 제도의 핵심은 생계ㆍ의료ㆍ주거ㆍ교육급여를 받을 요건을 넓힌 것이다. 부양의무자로 인해 기초수급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부양의무자 기준을 대폭 완화한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자가 아직도 넘쳐난다. 정부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한국 고령자의 상대적 빈곤율은 약 50%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1위다. 일본은 20% 수준이다.

우리나라도 얼마 안 있으면 일본과 같은 ‘초고령사회’로 접어든다. 고령자들이 무너져버려 소비여력을 상실한 경제가 어떻게 망가지는지 일본을 통해 잘 보고 있다. 이것은 노인복지 차원을 넘어서 국가경제 전체 생존의 문제다. ‘노후파산’은 한국 사회의 일이다.

신창훈

소비자경제섹션 에디터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