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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르바이트 유감] ‘알바 추노’…부당대우 향한 복수극?
低시급 등 열악한 노동환경 불만
통보없이 근무지 무단 이탈·잠적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 중심
하루 수십건씩 경험담 공유 글
빈가게 절도 등 업주들 큰 피해
전문가들 “근로환경 개선 시급”



#. 서울 영등포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신모(51) 씨는 어느 날 아침 본사 직원으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았다. 아침에 본사에서 상품을 배달하러 왔는데 편의점 문은 잠겨 있고 안에 사람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신 씨는 전화를 받고 곧장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편의점에 있어야 할 아르바이트생은 보이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생이 말도 없이 편의점 문을 잠그고 도망간 것이었다. 다행히 도둑맞은 물건은 없었지만, 편의점은 밤새 닫혀 손님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고, 신 씨 역시 큰 손해를 봤다. 신 씨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이른바 ‘알바 추노’에 당했다.

[헤럴드경제]‘알바 추노’는 요즘 아르바이트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다. 아르바이트가 도중 가게 주인에게 말하지 않고 그대로 도망가는 행위를 말한다. 노비를 쫓는다는 단어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지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노비를 쫓던 내용의 동명 드라마에서 이름을 따와 흔히 쓰인다.

최근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를 중심으로 이른바 ‘알바 추노’를 했다는 경험담이 쏟아지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부당한 업무지시나 낮은 시급에 불만을 느껴 무작정 때려쳤다는 경험을 무용담 처럼 털어 놓는다. 


아르바이트생 강모(26·여) 씨 역시 얼마 전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한 지 하루 만에 도망친 경험이 있다. 매장을 관리하던 매니저가 휴식 시간인데도 업무 지시를 내렸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그 말을 듣고 바로 가게를 뛰쳐나왔다. 종일 매니저로부터 전화가 왔지만, 강 씨는 받지 않고 일을 그만두겠다는 문자 한 통만 보냈다. 강 씨는 “부당한 지시를 받으면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지 않았다”며 “당시에는 오히려 매니저에게 복수했다는 생각에 통쾌했다”고 말했다.

강 씨와 같은 경험담은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에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온다. 댓글에는 업주의 횡포를 성토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의 반응이 달린다. 최근에는 일부러 여러 일자리에 지원해 마음에 드는 일자리 한 곳을 빼고 출근하지 않았다는 글까지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통보도 없이 근무지를 이탈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늘어나면서 업주들은 피해가 심각하다고 토로한다. 신 씨의 경우처럼 가게가 문을 닫은 줄도 모르고 있거나, 가게가 비면서 절도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기 전까지 손해를 보면서 장사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업주들은 아르바이트생이 도망가더라도 대응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업주는 오히려 처벌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하고, 근로계약서를 썼다고 하더라도 도망간 아르바이트생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절차와 비용 문제로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청년들에게 가혹한 아르바이트 환경 때문이라는 의견도 많다. 부당한 업무지시나 시간 외 근로를 시키는 경우가 많은 데 따른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민선영 청년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은 “나 역시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봤지만, 아르바이트생 대부분이 부당한 지시나 업무 외 작업 등 불합리한 노동 환경에 많이 노출돼 있다”며 “부당한 대우가 심화되다 보니 최근 도망을 통해 항의 의사를 표시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알바 추노’ 현상을 아르바이트생의 열악한 현실을 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종호 노무사는 “업주들의 피해도 많은 것은 안타깝지만, 시급도 적고 불합리한 환경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많아질수록 ‘알바 추노’ 현상도 심화될 것”이라며 “아르바이트생들의 환경을 개선하면 업주들의 피해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유오상 기자/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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