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민화의 위기진단-경제·사회·정책분야)“국가R&D ‘쌀로 밥하는 식의 연구’만 강요”
한국 4차산업 中에 뒤진 건 기술수준 아닌 세계 90위권 규제 탓

정부는 혁신시장·혁신금융·공정거래 등 인프라 구축만 주력해야



“세계 최대의 정부예산을 투입하고도 ‘쌀로 밥하는 식의 국가R&D’ 풍토는 실패에 대한 과도한 처벌 때문이다.” “한국이 4차 산업에서 중국에 뒤진 것은 세계 20위권의 기술수준 탓이 아니라 세계 90위권의 규제에 그 원인이 있다.”

이민화(62) KAIST 교수 겸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이 1일 한국사회의 다양한 위기상황에 대해 진단하고 처방을 내놓았다.

그는 정부가 이젠 개별 산업정책에서는 원칙적으로 손을 떼고 혁신시장·혁신금융·공정거래 등 산업인프라 구축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등 주요 혁신국가들의 정부 부처는 혁신시스템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정체·경제·사회 상황을 ‘총체적 위기’로 규정하고 분야별로 원론적인 대책들을 밝혔다.

이 교수는 먼저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룬 추격형 경제에서 과감히 벗어나 ‘선도형 경제’로 패러다임을 전환, ‘혁신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 혁신의 첫번째 미션은 혁신시스템 구축이다. 불확실한 혁신은 본원적으로 실패를 내포하나 추격경제에 최적화된 한국에서는 실패를 허용하지 않은 결과 청년들은 안전한 공무원을 지망한다”고 봤다.

그가 말한 혁신시스템은 ▷정직한 실패의 지원 ▷사전규제에서 사후평가로 ▷경쟁에서 협력으로 ▷목표지상주의에서 과정 존중으로 구성된다. 또 기업가적 교육은 정답을 답습하는 교육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찾고 도전하는 교육이며, 팀프로젝트 중심의 교육으로 가능해진다고 했다.

국가R&D 등 기술개발과 관련, ‘실패하지 않는 연구’가 혁신을 좀먹는다고 경고했다. 우리나라는 연간 19조원이라는 GDP 대비 세계 최대의 정부 R&D예산을 투입하나, 이전율은 미국의 절반 이하인 20%에 불과하다. 실제 사업화는 3% 미만 등 성과는 OECD 바닥권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실패하지 않는 연구를 해야 하는 연구풍토이며, 이는 실패 프로젝트 책임자는 차기 프로젝트 책임자가 될 수 없다는 실패에 대한 과도한 징벌 때문이라고.

이런 결과 ‘쌀로 밥하는 연구’가 일반화돼 차별화된 혁신적 연구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어 기업들의 관심이 날로 저하되고 있다는 것이다. 추격형 연구는 사전에 확실한 목표를 정할 수 있으나 선도형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경쟁연구, 중복연구를 원칙적으로 불허하는 옛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

이 교수는 따라서 ▷사전기획에서 사후평가 ▷정직한 실패에 대한 지원-모럴 해저드만 징벌적 배상 ▷과도한 연구관리와 감사제도의 폐지 ▷중복·경쟁연구의 활성화 ▷임무 중심의 연구과제 ▷협력과 개방혁신의 확대로 개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규제개혁과 관련해서는 한국이 드론, IoT, 웨어러블, 핀테크 등 4차 산업에서 중국에 뒤진 이유는 세계 20위권의 기술이 아니라 세계 90위권의 규제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추격경제에서는 사전 규제하는 포지티브 규제가 일정한 역할을 했으나, 불확실한 미래에 도전하는 선도경제에서는 이런 방식이 융합산업의 최대의 저해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중국과 같이 원칙적으로 허용을 하는 ‘네거티브규제’로의 대전환이 필요하지만 규제개혁 실적은 미미한 상황. 그 이유는 네거티브규제에 필요한 인프라가 구축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O2O 융합을 가로막는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융합서비스에 대한 규제는 국가 혁신의 결정적인 약점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의 역할도 선도경제에 맞는 시장인프라 구축과 공정한 심판자로 좁혀져야 한다고 밝혔다. 게임판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 개입은 시범사업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적용돼야 하나 지금도 모든 분야에서 ‘국가후견주의’가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후견주의란 정부가 목표를 정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그는 “추격경제 시대에는 국가가 구체적 산업목표를 정하고, 집중적 지원과 세세한 규제까지 올라운드플레이를 하는 국가후견주의로 성공했다. 그러나 선도경제에서는 자원의 왜곡을 초래할 뿐”이라며 “지난 10여년 간 정부가 구체적 산업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한 정책들은 대부분 실패를 거듭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는 선도형 국가의 필수요소이나 법인세 등 지방 재원화는 요원한 실정. ‘정부3.0’은 영국의 80% 데이터 개방에 비해 10% 미만의 개방 수준에 불과하며, 과도한 망 분리는 공공조직의 생산성 저하는 물론 민간과의 소통을 차단하고 있다고도 했다.

정부의 부처이기주의는 국가 차원의 정책보다 부서 차원의 정책을 양산하게 되며, 협력구조는 여전히 미진하다는 진단도 내렸다. 감사원의 정책감사는 공무원의 혁신 의지를 꺾어 놓고 있으므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정책감사는 즉각 폐지하고 도덕적 해이만 감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특히,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의 과도한 권력기관화는 정부 부처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있으므로, 과제별 예산심사를 그만해야 한다는 지적도 했다.

정부는 개별 산업정책에서는 원칙적으로 손을 떼야 한다는 주문도 했다. 정부의 역할은 혁신시장, 혁신금융, 공정거래 등 산업인프라 구축에 주력해야 하며 영국 등 주요 혁신국가들은 부처를 혁신시스템을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고 이 교수는 밝혔다.

이 교수는 “지원과 규제를 줄이고 혁신시장을 키워야 한다”면서 “단기적 실적과 공무원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정책자금과 규제는 늘어나고 있어 국가 자원의 낭비가 심화되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금융과 노동은 국제경쟁력 세계 80위권이며, 정부 개입이 가장 심한 분야로 꼽힌다. 금융 경쟁력은 바로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며, 투자은행과 핀테크 육성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4차 산업혁명과 창조경제는 한마디로 ‘대기업과 벤처의 상생발전’으로 정리된다. 상생에 필요한 혁신시장인 M&A시장의 부진이 한국경제의 아킬레스건임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정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이제 기업의 경쟁력은 단독경쟁에서 개방·협력으로 전환되고 있다. 한국 SW 등 콘텐츠산업의 문제점이므로, 개방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스톡옵션 등의 제도 확대가 요구된다는 지적도 했다.

이밖에 현행 주식회사제도가 유한책임회사로 복귀돼야 기업의 활력이 회복되고, 실패의 학습화와 자원화가 가능한 구조가 구축될 것으로 봤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의 ‘개방화’에 대해 특히 강조했다.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보면 개방산업 분야들은 20위권 이내인데 비해 금융, 교육, 의료, 노동, 법률 등 비개방 분야는 50위권 밖이다. 결국 비개방 분야의 개방이 국가 혁신의 열쇠라는 것이다.

비개방분야는 고급 인재들이 집중된 권력분야인데, 이 게 국가경쟁력 하락의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혁신은 개방에서 비롯되며 개방은 전체의 가치를 창출하나 좁은 이해가 걸린 이 분야 관계자들의 배타성으로 인해 개방이 저해되고 있다고 봤다. 대표적으로 원격의료, 배심원제 도입 등을 꼽았다.

이 교수는 “모든 권력기관의 정책결정을 개방적으로 하자는 게 OECD의 ‘개방정부2.0’의 정신”이라며 “개방을 위해 한국의 국가정체성을 한반도를 떠나 유라시아대륙의 허브국가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대륙적 기질의 확보가 개방성을 높인다”고 주장했다.

조문술 기자/freiheit@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