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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상 밖 음역대 악기들…‘도요새의 강’낯선 감동
1956년, 일본을 방문한 영국의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 1913-1976)은 일본의 전통 가면극 ‘노(能)’를 보게 된다. ‘수미다가와’라는 작품으로, 아들을 잃어버려 실성한 어머니가 방황하던 끝에 아들의 무덤을 만나 기도한 후 그 영혼을 통해 치유한다는 내용이다. 가면을 쓴 주역 배우 ‘시테’를 중심으로 노래와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대고, 소고, 피리를 연주하는 악사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성부(聲部) 없이 같은 선율, 혹은 그저 읊조림과 같은 ‘으어어’소리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브리튼은 이 작품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는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영국의 기독교 전통의 틀에서 재해석한 작품 ‘도요새의 강(Curlew River)’을 만든다. 내용은 그대로 두고, 뱃사공, 여행객, 합창단 등이 등장하는 단막 구조도 유지했다. 대신 불교적인 배경은 기독교적으로 바꿨다. 합창단은 수도승으로, ‘나무아미타불’같은 염불은 중세 그레고리오 성가 형식으로 대체됐다. 등장인물 12명은 모두 남자가 연기하며, ‘미친 여인’을 연기하는 성악가도 남성 테너다.

서울시오페라단(단장 이건용)이 현대오페라 시리즈 첫번째 작품으로 선보이는 ‘도요새의 강’(28~31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은 낯선 경험의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다. 동ㆍ서양의 미학이 만나 만들어낸 새로운 예술 양식이 낯설고도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내용은 단순하지만, 오히려 내용보다 형식적인 면에서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1시간 20분짜리 단막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단 한번도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의 화성(和聲)을 들려주지 않는다. 플루트, 호른, 비올라, 더블베이스, 하프, 타악기, 그리고 작은 파이프오르간까지, 실내악으로 편성된 악기들은 언제나 예상을 빗겨가는 음역대에서 소리를 낸다. 예측 가능한 지점에 도달하지 않음으로써 끝까지 관객을 집중시킨다. 대신 악기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내 놓는다. 타악만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가 하면, 플루트와 하프의 불협화음이 슬픔을 배가시킨다.

사실 20세기 영국은 독일, 프랑스가 주도하던 현대음악의 전위적인 경향에서 다소 동떨어져 있었다. 브리튼 역시 실용적인 경향과 상식에 의거한 전통을 존중했던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도요새의 강’은 전위적인 유럽 현대음악의 주류 양식을 보여주면서도 실용과 경험, 상식을 존중하는 브리튼의 보수적인 색채가 함께 묻어나는 작품이다.

구모영 지휘자는 “자유를 만끽하되 방종으로 흐르지 않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음악은 박자나 마디같은 구조가 없어요. 연주자들은 항상 기댈 데가 필요한 데 그게 없어 당황하게 되죠. 자유를 만끽해야 하는데 그게 어려운 곡이에요. 그런데 자세히 보면 방종으로 흐르지 않게끔 장치를 해 놨어요. 자칫 잘못하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데 그러지 않도록 틀을 잡아놨죠.”

구 지휘자에 따르면 당초 원작에는 지휘자가 없었다. 연주자들의 음악에 대한 깊이와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였던 것. 이를 위해 악보에는 성악가들의 텍스트가 빼곡히 적혀 있다. 구 지휘자는 “삼라만상을 아우르는 유니버설한 음악”이라고 평했다.

음악 뿐만 아니라 무대와 영상도 돋보인다. 배를 형상화 한 미니멀한 구조물 뒤로 동양적인 수묵화가 물 흐르듯 흐르는 장면이 압권이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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