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로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던 감성시인 이정하가 12년만에 ‘다시 사랑이 온다’(문이당)로 돌아왔다. 94년 큰 사랑을 받았던 ‘너는 눈부시지만~’은 최근 블로그와 SNS를 통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 중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오라”(‘낮은 곳으로)등은 캘리그라피로 많이 회자되는 시다.
이번에 출간된 ‘다시 사랑이 온다’ 에도 시인 특유의 감성적 사랑 노래가 넘친다.
![](http://res.heraldm.com/content/image/2016/07/28/20160728000010_0.jpg)
“그대 섣불리 짐작치 마라/내 사랑이 작았던 게 아니라/내 마음의 크기가 작았을 뿐//내 사랑이 작았던 게 아니라/그대가 본 것이 작았을 뿐/하늘을 보았다고 그 끝을 본 건 아닐 것이다//(…)//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니/마음이 작다고/어디 사랑까지 작겠느냐”(‘보여줄 수 없는 사랑’)
“옛사랑이었을 테지/세월이든 그리움이든/그 모든 것들의 자국,/버리지 못한 신발 끌리는/소리였던 것일 테지//아아 그러고 보면/지난 사랑도 지난 게 아니었다”(‘지난 사랑이 온다’)
이번 시집에는 독자들이 직접 써서 시인의 신작 시집에 마음을 보탠 캘리그라피들이 들어있어 눈길을 끈다. 시인은 “먼 길을 돌아오는 동안 우여곡절 또한 많았다. 마지막으로 매달리기로 한 것이 시였고,시를 쓸 때만큼은 그 어느 순간보다 기뻤고 행복했고 눈물겨웠음을 고백한다”고 새 시집을 낸 소회를 밝혔다.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장욱 시인의 네번째 시집 ‘영원이 아니어서 가능한’(문학과지성사)은 “모든 것은 이미 배달되었다”로 시작하는 시 ’우편‘으로 시작된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봉투에 쓰인 보낸 이가 누구인지 무슨 내용인지 읽고 확인하는 것. 시인은 누구보다 충실히 세상을 읽어간다. 난해한 단어를 찾고 확인하고 표시하며 해독하려 애쓴다.
![](http://res.heraldm.com/content/image/2016/07/28/20160728000011_0.jpg)
“밤마다 색인을 했다. 모든 명사들을 동사들을 부사들을 차례로 건너가서/늙어버린 당신을 만나고/오래되고 난해한 문장에 대해 긴 이야기를”(’내 인생의 책‘).
그러나 해독은 간단치 않다. 시인은 “우리가 이것들을 해독하지 못하는 이유는 영영/눈이 내리고 있기 때문/너무 많은 글자가 허공에 겹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시인의 읽는 행위는 계속된다.
“나는 깊은 밤에 여러 번 깨어났다. 내가 무엇을 읽은 것 같아서./나는 저 빈 의자를 읽은 것이 틀림없다. 밤하늘을 읽은 것이 틀림없다. 어긋나는 눈송이들을. 캄캄한 텔레비전을. 먼 데서 잠든 네 꿈을/다 잃어버린 것이”
잠결에 혹은 찰나에 읽어낸 텍스트가 이윽고 한 줄의 시로 남는 걸까.
강정 시인의 ‘백치의 산수’(민음사)는 죽음에 대한 고찰에 남다른 예민함을 지닌 시인의 또 다른 변주곡으로 읽힌다. 첫 시집 ‘처형극장’에서 시인을 “살아서 죽음을 보여주는 존재”로 규정하며, “죽음을 살아낼 테야”라고 호언했던 시인이다.
![](http://res.heraldm.com/content/image/2016/07/28/20160728000012_0.jpg)
이번 시집은 흑백, 밝음과 어둠, 해와 달의 차가운 대비속에서 밤의 에너지와 안식을 보여주는 시편들이 가득하다.
“누구, 해의 진심에 상처 입은 사람 있다면/별을 피해 내 곁에 와 쉬라/아무 말 않고 울렁대는 대낮의 신음이 낯선 시로 들린다면 친구여,/내 뿌리를 거둬 당신의 쪽방 한 구석에/신이 버린 생명의 뼈대인 양 자그맣게 걸어 두셔도 좋겠다/네 피를 마셔 네가 오래 아픈 이유를 보여 줄 테니/밤이 길다/나는 나의 누명을 혼자 사랑한다/내 안의 모든 핏기를 지워/잎도 열매도 키우지 않는/지상의 단 한 그루 나무가 되리”(‘흡혈묘목’)
거침없는 시어와 톡톡튀는 상상력으로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방출해온 김민정 시인이 7년만에 내놓은 ‘아름답고 쓸모없기를’(문학동네)은 삽화같은 시편들이 읽는 즐거움을 준다. 이번 시집에는 2016년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한 ‘입추에 여지없다 할 세네갈산(産)’외 8편의 시가 함께 실렸다.
![](http://res.heraldm.com/content/image/2016/07/28/20160728000013_0.jpg)
우수, 망종, 대서, 복과, 입추, 동지까지 많은 절기와 계절의 시들이 다수 등장한 점도 눈길을 끈다.
“이 여름에 물이/이 얼음으로 얼어붙기까지/얼마나 이를 악물었을지/얼음을 깨물어보면 안다//이 여름에 얼음이/이 맹물로 짠맛을 낸다면/얼마나 땀을 삼켰을지/얼음에 혀를대보면 안다”(‘대서 데서’)
“양망이라 쓰고 망양으로 읽기까지/메마르고 매도될 수밖에 없는 그것/사랑이라/오월의 바람이 있어 사랑은/사랑이 멀리 있어 슬픈 그것”(‘근데 그녀는 했다’)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