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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한 권의 시집, 휴가에 마침표를 찍다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시는 무릇 사랑을 노래할 때 가장 빛난다. 여름날 낭만에 어울리는 시 한편을 가슴에 품을 수 있다면 한층 풍요로운 휴가가 되지 않을까.

시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로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던 감성시인 이정하가 12년만에 ‘다시 사랑이 온다’(문이당)로 돌아왔다. 94년 큰 사랑을 받았던 ‘너는 눈부시지만~’은 최근 블로그와 SNS를 통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 중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오라”(‘낮은 곳으로)등은 캘리그라피로 많이 회자되는 시다.

이번에 출간된 ‘다시 사랑이 온다’ 에도 시인 특유의 감성적 사랑 노래가 넘친다.


“그대 섣불리 짐작치 마라/내 사랑이 작았던 게 아니라/내 마음의 크기가 작았을 뿐//내 사랑이 작았던 게 아니라/그대가 본 것이 작았을 뿐/하늘을 보았다고 그 끝을 본 건 아닐 것이다//(…)//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니/마음이 작다고/어디 사랑까지 작겠느냐”(‘보여줄 수 없는 사랑’)

“옛사랑이었을 테지/세월이든 그리움이든/그 모든 것들의 자국,/버리지 못한 신발 끌리는/소리였던 것일 테지//아아 그러고 보면/지난 사랑도 지난 게 아니었다”(‘지난 사랑이 온다’)

이번 시집에는 독자들이 직접 써서 시인의 신작 시집에 마음을 보탠 캘리그라피들이 들어있어 눈길을 끈다. 시인은 “먼 길을 돌아오는 동안 우여곡절 또한 많았다. 마지막으로 매달리기로 한 것이 시였고,시를 쓸 때만큼은 그 어느 순간보다 기뻤고 행복했고 눈물겨웠음을 고백한다”고 새 시집을 낸 소회를 밝혔다.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장욱 시인의 네번째 시집 ‘영원이 아니어서 가능한’(문학과지성사)은 “모든 것은 이미 배달되었다”로 시작하는 시 ’우편‘으로 시작된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봉투에 쓰인 보낸 이가 누구인지 무슨 내용인지 읽고 확인하는 것. 시인은 누구보다 충실히 세상을 읽어간다. 난해한 단어를 찾고 확인하고 표시하며 해독하려 애쓴다.


“밤마다 색인을 했다. 모든 명사들을 동사들을 부사들을 차례로 건너가서/늙어버린 당신을 만나고/오래되고 난해한 문장에 대해 긴 이야기를”(’내 인생의 책‘).

그러나 해독은 간단치 않다. 시인은 “우리가 이것들을 해독하지 못하는 이유는 영영/눈이 내리고 있기 때문/너무 많은 글자가 허공에 겹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시인의 읽는 행위는 계속된다.

“나는 깊은 밤에 여러 번 깨어났다. 내가 무엇을 읽은 것 같아서./나는 저 빈 의자를 읽은 것이 틀림없다. 밤하늘을 읽은 것이 틀림없다. 어긋나는 눈송이들을. 캄캄한 텔레비전을. 먼 데서 잠든 네 꿈을/다 잃어버린 것이”

잠결에 혹은 찰나에 읽어낸 텍스트가 이윽고 한 줄의 시로 남는 걸까.

강정 시인의 ‘백치의 산수’(민음사)는 죽음에 대한 고찰에 남다른 예민함을 지닌 시인의 또 다른 변주곡으로 읽힌다. 첫 시집 ‘처형극장’에서 시인을 “살아서 죽음을 보여주는 존재”로 규정하며, “죽음을 살아낼 테야”라고 호언했던 시인이다.


이번 시집은 흑백, 밝음과 어둠, 해와 달의 차가운 대비속에서 밤의 에너지와 안식을 보여주는 시편들이 가득하다.

“누구, 해의 진심에 상처 입은 사람 있다면/별을 피해 내 곁에 와 쉬라/아무 말 않고 울렁대는 대낮의 신음이 낯선 시로 들린다면 친구여,/내 뿌리를 거둬 당신의 쪽방 한 구석에/신이 버린 생명의 뼈대인 양 자그맣게 걸어 두셔도 좋겠다/네 피를 마셔 네가 오래 아픈 이유를 보여 줄 테니/밤이 길다/나는 나의 누명을 혼자 사랑한다/내 안의 모든 핏기를 지워/잎도 열매도 키우지 않는/지상의 단 한 그루 나무가 되리”(‘흡혈묘목’)

거침없는 시어와 톡톡튀는 상상력으로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방출해온 김민정 시인이 7년만에 내놓은 ‘아름답고 쓸모없기를’(문학동네)은 삽화같은 시편들이 읽는 즐거움을 준다. 이번 시집에는 2016년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한 ‘입추에 여지없다 할 세네갈산(産)’외 8편의 시가 함께 실렸다.


우수, 망종, 대서, 복과, 입추, 동지까지 많은 절기와 계절의 시들이 다수 등장한 점도 눈길을 끈다.

“이 여름에 물이/이 얼음으로 얼어붙기까지/얼마나 이를 악물었을지/얼음을 깨물어보면 안다//이 여름에 얼음이/이 맹물로 짠맛을 낸다면/얼마나 땀을 삼켰을지/얼음에 혀를대보면 안다”(‘대서 데서’)

“양망이라 쓰고 망양으로 읽기까지/메마르고 매도될 수밖에 없는 그것/사랑이라/오월의 바람이 있어 사랑은/사랑이 멀리 있어 슬픈 그것”(‘근데 그녀는 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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