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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정용덕 서울대 명예교수] ‘공수처’ 설립은 만병통치약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을 감안할 때 국정운영에서 원칙주의 하나만은 제대로 실현하려니 하는 기대가 있었다. 정부에서도 가장 원칙주의가 지켜져야 하는 직종인 법조 및 군 출신 인사들을 공직에 중용하는 것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했다. 그러나 2015년에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일반국민ㆍ기업인ㆍ전문가ㆍ외국인ㆍ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정부패에 대한 평가는 지난 10여 년이래 이 행정부가 최하위다.

그럴 만도하다. 소위 ‘생계형’도 아닌 ‘권력형’ 비리와 일탈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출범 첫해부터 청와대 파견 경제 관료들의 업체 상품권 수수 사건, 민정수석실 행정관의 ‘접대골프’ 사건 등의 비리가 이어졌다.

법 집행을 책임진 사법 관료들의 비행과 부정부패는 한층 더 유난스럽다. 법무차관과 검찰총장의 비행, ‘스폰서 검사’ 사건, 거액의 수임료를 챙긴 ‘전관예우’ 변호사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현직 검사장과 민정수석비서관이 비리 의혹으로 국정에 차질이 빚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군은 군대로 참모총장 연류 의혹 사건을 포함해 온갖 크고 작은 국방조달 관련 비리가 불거지고 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행정의 비리를 통제하기 위한 접근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국가기능을 중복 없이 분업화하여 조직하되, 각 조직이 맡은 임무를 철저하게 수행토록 하는 관료주의 모델이다. 행정ㆍ사법 관료들은 전문성에 더해 공직윤리와 공익수호의 사명감을 갖고 (독점적으로 부여된) 임무를 철저하게 수행한다. 관료제에 대한 이런 신뢰는 독일과 일본의 행정 전통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국가기구 간에 상호 경쟁을 유도하여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도록 조직화하는 다원주의 모델이다. 공직자들에 대한 근본적 불신을 바탕으로 제도화해온 미국 행정이 전형적 예다. 이번 공수처 신설 방안은 후자에 해당한다. 기존의 사정기구들이 제 기능을 못하는 수준을 넘어, 그 자체가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는 작금의 사정을 감안할 때 공수처 설립 안은 국민적 지지를 받을 것이다. 이참에 기소ㆍ수사 권한의 다원화 방안이 폭넓게 논의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공수처가 만병통치약이 될 것인지는 또다른 문제다. 공수처의 권한, 위상, 조직구조, 인사관리 방식 등에 따라 현저히 다른 결과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밑에 두는 경우 기존 감사원ㆍ검찰청ㆍ권익위의 한계를, 국회에 둔다면 반대로 감사원 등을 국회로 이전하는 경우에 우려되는 문제들을, 독립 기구로 설치하는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와 과거 방송위원회의 한계를 각각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심사숙고해야한다. 처장의 임명방식과 임기, 그의 기구 내 인사 권한, 구성원들의 생애 보직경로 등에 따라 공수처의 효력은 천차만별이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부패방지 관련법이 제정된 아시아 10개 체제를 ▷법만 있고 집행기구는 없는 일본 ▷단일기구가 설치된 몽골ㆍ싱가포르ㆍ인도네시아ㆍ태국ㆍ한국ㆍ홍콩 ▷복수기구가 설치된 인도ㆍ필리핀ㆍ타이완으로 구분한다. 집행기구수와 청렴도수준 간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관시’를 비롯해 의리의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유교문화권이지만, 싱가포르ㆍ홍콩ㆍ일본은 한국ㆍ타이완ㆍ중국보다 국가청렴도 면에서 월등히 높다. 단일 집행기구의 싱가포르가 아시아 최고의 청렴국가가 된 배경에는 리콴유 수상의 강력한 부패척결의지가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부패방지 전담기구들 외에 특별 ‘사정기구’까지 뒀지만, 그것을 권력유지를 위해 남용했던 이승만ㆍ전두환 행정부에서 부패가 더 만연했다.

‘부패공화국’으로부터의 탈출은 의지여하에 따라 대통령의 남은 임기 1년 반이면 충분히 착수할 수 있는 역사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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