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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진짜 골프 덕후가 책을 낸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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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호건의 다섯 가지 골프 레슨(Ben Hogan's Five Lessons) 표지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 사람이 하는 일에 ‘완벽’이라는 표현을 붙이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일이 그럴진대 세계 최고의 선수도 레슨을 받는 골프스윙이라는 분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완벽한 골프스윙에 관해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1968년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모여 골프의 과학적 원리를 규명했고, 그 핵심내용을 <완벽한 스윙의 탐색(Search for the perfect swing)>이라는 책으로 냈다. 당시에도 잭 니클라우스, 샘 스니드 등 전설적인 선수들이 다수 있었지만 과학자들이 최고로 뽑은 선수는 벤 호건(1912~1997)이었다. ‘거의 완벽에 가깝다(near perfection)’라는 평가와 함께. 이 완벽한 벤 호건이 <벤 호건의 다섯 가지 골프 레슨(Ben Hogan's Five Lessons)>이라는 레슨서를 출판했는데, 골프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기념비적인 책이 됐다.

# 내친김에 벤 호건에 대한 오마주를 좀 해보자. 니클라우스는 메이저 최다승(18승), 스니드는 역대 최다승(82승)을 기록했다. 메이저 9승을 포함해 통산 63승의 호건은 숫자에서 밀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호건은 3년간의 군복무, 세계2차 대전으로 인한 6년간의 메이저 대회 무산, 치명적인 교통사고 등의 악재에 시달렸다. 조금 쉽게 설명해 니클라우스는 메이저 대회에 96차례 출전해 18승을 거둔 반면, 호건은 고작 16번 출전해 9승을 수확한 것이다. 다승에서 앞서는 스니드도 “골프에서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번개, 벤 호건, 그리고 내리막 퍼팅”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호건은 ‘현대 골프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 손색이 없다.

# 이런 일화도 있다. 호건이 마스터스 연습라운드를 도는데 그의 클럽별 거리가 궁금했던 한 동반자가 매 샷마다 “어떤 클럽을 사용했느냐?”고 계속 캐물었다. 살짝 화가 난 호건은 페어웨이 가운데 서서 퍼터를 제외한, 골프백에 있는 모든 클럽으로 차례로 공을 쳐 그린 위 깃대 옆에 모두 붙여버렸다. 얼마나 일관된 스윙을 하기에 이런 것이 가능했을까?

# 덕후는 이제 한국사회에서 보통명사가 된 느낌이다. 원래 부정적 뉘앙스가 강한 일본말 오타쿠(オタク)에서 기원했는데, 한국에서 덕질(덕후질), 입덕(덕후가 됨, 휴덕과 탈덕도 있다), 성덕(성공한 덕후), 덕밍아웃(덕후임을 공개함), 일코(일반인 코스프레), 축덕(축구 덕후), 겜덕(게임 덕후), 야덕(야구 덕후), 밀덕(밀리터리 덕후) 등으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예전에는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으로 표현하던 것을 ‘덕후가 세상을 바꾼다’라고 하니 한국에서는 그 모태의 부정적 느낌마저 지워버린 듯싶다. 어쨌든 그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면 ‘덕후’가 되면 빨리 성공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일 게다.

# 성벽(性癖) 자체가 덕후인 사람 한 명이 있다. ▲학생 때 바둑을 처음 접하고, 급우에게 9점을 깔고도 매번 졌다. 급우가 잘난 척을 하자 ‘여름 방학 한 달이면 너를 꺾는데 충분하다’고 선언했다. 한달 내 바둑책을 보고, 툭하면 기원을 찾았다. 한달여 만에 통쾌한 복수에 성공한 것은 물론이다. ▲ 미국 유학 시절, 낚시광인 한 교포가 “나는 낚시를 5년이나 했다. 당신은 가르쳐줘도 모른다”며 무시했다. 분기탱천. 3개월만에 당신을 능가하겠다고 엄포를 놨고, 낚시잡지를 기초로 해 시간만 나면 낚시를 파고들었다. 역시 3개월 후 그 오만한 20년 경력의 낚시꾼을 혼내줬다. 무엇이든 올바른 방법으로, 덕후처럼 열심히 하면 짧은 시간만에 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사람의 ‘덕후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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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골프해설위원이자 교습가로 방송에서 레슨하는 임경빈 프로.


# 주인공은 임경빈 JTBC해설위원이다. 원래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차분한 그의 말투 덕에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그 속살을 알게 된 후 팬이 됐다. 그는 토목공학을 전공해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태권도사범으로 제법 잘 나갔다. 그러나 골프를 접해 미PGA 클래스A 자격증을 땄다. 스스로 “조금만 더 어렸을 때 골프를 접했다면 PGA투어는 몰라도 시니어 선수가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서른이 넘어 골프를 접한 후에는 지끔까지 골프 덕후의 삶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지금도 매일 새벽 미국 골프방송을 시청하며 최신 정보를 얻는다. 그러니 주로 입담에만 의존하는 다른 해설자들과는 달리 질적인 면에서 ‘최고의 해설’이라는 평을 듣는 것이다.

# 스윙교습가로도 제법 잘 나가는 임경빈 위원은 많은 제의를 받았지만 지금까지 골프책을 내지 않았다. 스스로 뭔가 해야겠다 싶으면 ‘교과서’를 파고드는 스타일이었지만 골프스윙에 대해서는 책을 낼 만큼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그가 최근 <임경빈의 도끼스윙(골프스윙의 핵심원리, 다운블로)>이라는 레슨서를 발간했다.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트랙맨과 같은 스윙분석장비의 발달로 내가 생각해왔던 이론에 확신이 들었다.” 그는 이 책이 자신의 네임밸류 덕에 한철 장사에 성공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서문에 밝힌 것처럼 ‘벤 호건의 책처럼 오랜 동안 읽히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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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임경빈의 도끼스윙'


# ‘문제는 파편적으로 쏟아져 있는 각종 미시적인 골프이론을 그냥 믿고, 가르치고, 따라하는 것이다. 체중이동, 하이피니시, 무조건적인 인-투-아웃 스윙 궤도 등을 그 원리도 모른 채 무턱대고 강조한다. 이건 선입견, 아니 무속신앙에 가깝다. 이런 분위기가 워낙 강하니 무속신앙이 기득권이 돼 골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연습법을 방해한다. 그래서 참 많은 골퍼들이 고생한다. 정확히 골프스윙의 원리를 이해하고, 여기에 맞춰 자신만의 스윙을 만드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골프연습이고, 골프라는 훌륭한 스포츠를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 젊은 애들만 ‘덕후질’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쯤이면 60대 골프덕후로 부족함이 없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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