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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희지의 사라진 ‘난정서’…한국 경제학자가 미스터리 풀다
中서예작품 최고봉 국보1호급 대우
물굽이에 술잔 띄우고 詩짓는 놀이
난정연회의 분위기ㆍ감회 서문으로




‘서성(書聖)’ 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에는 ‘천하제일행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모든 서예작품 가운데 최고봉이란 얘기다. 중국인들이 국보 1호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난정서’이지만 원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베껴 쓴 유명한 필사본만 500여종. 그런데 이들의 글자 모양새가 조금씩 달라 진본이 어떠했는지 알 길이 없다. 심지어 난정서를 왕희지가 쓴 게 아니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난정서’는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이런 ‘난정서’에 꽂혀 10여년 동안 문헌을 파고 든 경제학자가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하태형 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 교수가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정리, ‘난정연회’(한길사)를 펴냈다. 난정서의 탄생과정, 내용과 판본, 난정연회의 문화까지 아우른 이 책은 난정서를 둘러싼 안개를 걷어내며 ‘난정서’와 난정문화를 새롭게 조명해낸다. 

난정서가 탄생한 난정연회는 동진(東晉) 우군장군이었던 왕희지가 353년 3월3일 아들 7명과 사족, 명사 등 동진을 대표하는 41명의 인물들을 회계현의 난정에 초청해 열었던 대규모 연회다. 왕희지는 동진 왕조 건설 에 기여한 왕도의 조카이자 왕광의 아들로 최고 귀족가문출신이다. 이날의 모임은 술잔을 물에 떠내려 보내는 동안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로 술 세말을 마시는 소위 ‘유상곡수’(流觴曲水) 연회였다. 당시 참석자 중 주인인 왕희지와 사안, 손작 등 26명은 시를 지었고 나머지 15명은 시를 짓지 못해 술을 마셨다.

이날 지은 시들을 모아 철을 하고 왕희지가 서문을 쓴 게 ‘난정서’다. 난정서는 연회가 벌어진 삼짓날의 날씨와 분위기, 유한한 인생에 대한 슬픔, 감회 등을 담고 있다. 

난정서는 지금까지 주로 서예의 관점에서 연구, 논의돼왔다. 저자는 이와 관련, “난정서를 반의 반 밖에 보지 못하는 격이다”며, 완전히 이해하려면 이날의 난정연회 자체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난정서의 배경이 되는 난정의 연회는 남북조시대 정치적 암흑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가장 화려하게 타오른 중국 귀족문화의 마지막 불꽃”이었다며, 난정문화를 알아야 난정서의 전체 면모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난정연회는 그에 앞선 50년전, 서진시대 최대 부호 석숭의 금곡연회를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석숭은 왕후란 사람을 송별하기 위해 자신의 별장이 있는 금곡에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를 초청해 연회를 베풀고 시를 짓게 한 뒤, 짓지 못한 사람에게는 벌주로 술을 세 말 마시게 했다. 이렇게 며칠동안 연희를 즐기고 난 뒤 지은 시를 모아 자신이 서문을 쓴 게 바로 ‘금곡시서’다.

난정연회는 금곡연회에서 한 발 더 나간다. 바로 귀족문화의 정점을 찍은 ‘유상곡수’다.

굽이치는 물굽이를 만든 뒤, 술잔을 띄워 보내는 동안 시를 짓는 이 물놀이는 신라, 일본 등 주변국으로 전해졌다. 그 유상곡수의 시조가 바로 난정연회다.

이 날의 난정연회에는 초국 용항 환씨 집안에서도 한 인물이 참석했다. 바로 환위다. 환위의 아버지 환온은 동진의 권력을 쥐락펴락하며 황제를 폐하고 세우기도 했던 인물. 환위의 배 다른 형제인 환현은 마침내 동진을 멸망시키고 초나라를 세운 인물이다. 환위는 환온의 5남으로 형주지사를 지내고 표기장군에 봉해졌으며 이날 난정연회에서 오언시 한 수를 남겼다.

“주인(왕희지)은 비록 회포가 없다지만/사람들은 나름의 세상사 근심이 있는 법./공자께서 기수가에서 즐겼을 때/조용하지만 맘속에 생기가 넘쳐 흐르셨다네./몇몇 제자들은 제 나름의 생각을 말함에/증점만이 홀로 맑은 소리로 노래 불렀다네./오늘의 놀이가 이처럼 즐거우니/세상사근심 또한 잠깐 사이에 다 풀어지누나.”

이날 연회에 참석한 인사들은 각자의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각자가 가진 고민을 풀어버렸다고 노래하고 있지만 가문간 조정이 쉽지 않았음이 엿보인다.

‘난정서’의 미스터리의 한 쪽은 당 태종과 연결돼 있다.

당 현종 때 문인인 하연지가 기술한‘난정시말기’에 따르면, 당 태종은 왕희지의 글씨를 무척 좋아해 그의 작품을 모두 모았는데 특히 ‘난정서’를 아껴 자신이 죽을 때 같이 묻어줄 것을 명했다고 한다. 이후로 ‘난정서’는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하연지는 기술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판본의 진위문제와 연결된다. 최근 중국 학자 곽말약이 ‘난정서’가 위작이라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저자는 추사 김정희의 논지까지 살펴 ‘난정논변’을 검증해 나간다. 저자의 주장은 양나라 소명태자가 천하의 명문장을 모두 모아 펴낸 ‘문선’(文選)에 ‘난정서’가 실리지 않은 점, 연희 중에 쓴 난정서에는 도교의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는데 나중에 쓴 ‘난정서’에는 도교를 비판하고 있는 점을 들어 ‘난정서’가 왕희지의 저작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다,

이 책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난정서’ 한구절 한구절을 전고를 따져 재해석해낸 데 있다. 특히 어려운 말로 시담을 즐겼던 당시의 문화 탓에 해석이 어려운 모호한 문장들을 전고를 찾아 매끈하게 해석해냈다. 또 오기 논란을 빚고 있는 단어들을 논리적으로 풀어내 난정서 이해에 큰 디딤돌을 놓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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