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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이규승 서울문화재단 홍보팀장] 10년간 고민만 하던 내 어머니의 첫 연극
“아들, 엄마 연극 한 편만 보여주면 안 될까?”

어느날 문득 예순을 훌쩍 넘긴 어머니가 꺼낸 얘기다. 나는 문화예술계에 몸 담고 있으면서 어머니에게 연극 하나 보여주지 못한 못난 아들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엄마에게 맞는 연극이 뭘까 고민만하다 10여년이 훌쩍 흘렀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나 스스로 정한 엄격한 바로미터를 관객으로서의 어머니에게도 적용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던 연극, ‘좋은 연극’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이른바 ‘막장 드라마’라 불리는 작품들의 달콤한 무엇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좀 더 예술적인 가치에 집중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추천하는 연극을 보고 어머니가 실망하실 게 두려웠다. 

연극‘ 곰의 아내’ 한 장면. [사진제공=서울문화재단]

나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연극을 홍보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재단 소속 극장에서 만든 연극을 사람들이 보고 싶도록 포장을 하는 일이다. “씀바귀로 만든 음식으로 정크 푸드에 길들여진 초등학생들의 입가에 침을 가득 고이게 만들겠어!”라는 심정으로 홍보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극장은 공공극장이다. 여느 공연장과 달리 ‘공적’인 역할이 중요한 곳이다. 흥행 가능성이 높은 재공연보다는 창작 초연이면서 동시대성을 담은 연극에 비중이 실린다.

조건도 많다. 일단 티켓파워가 보장된 아이돌 스타들을 앞세워 흥행을 추구하는 작품과는 거리가 멀다. 때로는 ‘유료객석 점유율’라는 여타 공연들의 목표지향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예술성과 흥행성. 두 토끼를 잡고 싶지만 쉽지 않다. 가끔은 세상과 타협하는 쉬운 길을 선택하는 유혹에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남들이 안 하는 것을 꼭 해야만 하는 무엇이 있다. 나는 그것을 ‘사회적 책임’이라고 말하고 싶다.

2013년에 재단에서 발표한 ‘대학로 연극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극인의 월평균 소득은 114만원이다. 무대에 서는 일, 그 열정 하나만으로 버티고 있는 연극인들의 험난한 ‘먹고사니즘’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간절함을 알기에 공공극장은 더더욱 ‘어려운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10여년 전쯤, 대학로 어느 소극장에서 처음으로 경험했던 나의 연극이 떠오른다. 여배우는 불같은 대사를 내뿜었다. 그때 나는“생판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저렇게 완전히 다른 사람을 연기할 수 있지?”라고 신기해했다. 그 여배우의 뜨거운 열정과 몸짓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다시금 마음을 고쳐먹는다. 다음 주에는 어머니에게 연극을 보여드려야겠다. 그것도 아주 좋은 연극을. 배우들의 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내가 믿는 ‘좋은 연극’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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