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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치장인 3代의 탄탄한 기술력“… 중국산 파도 ‘브랜드화’로 극복”
영창단조 이건우 대표의 자부심


“망치도 엄연히 단조기술과 품질의 결정체입니다. 기술이 안되면 깨지고 부러지기 십상이죠.”

유서깊은 도구의 어머니 망치. 국내산 망치 10개 중 7~8개가 한 중소기업의 제품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충남 금산의 영창단조공업(대표 이건우)이 그 주인공. 반세기 3대에 걸쳐 망치를 만들어 온 숨은 장인이다.

모든 공구제품이 그렇듯 망치 역시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의 파고가 높기만 하다. 영창단조는 이 파고를 3대에 걸쳐 전승된 단조기술로 넘은데 이어 이젠 브랜드화를 시도 중이다. 


영창단조 이건우(39) 대표는 “품질과 기술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노력해온 게 정상의 자리를 지킨 비결”이라며 “최근에는 제품의 브랜드화와 신제품 개발을 통해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창단조는 1965년 이 대표의 조부인 고(故) 이규일 씨가 세웠다. 국내 최초로 망치 생산에 단조공법을 적용하며 단숨에 시장을 장악했다. 이전까지 망치 제조에는 주조방식이 통용됐다. 주조는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데 유리하고 모양을 쉽게 만들 수 있는 반면 깨지기가 쉬운 게 단점이 있었다.

영창단조는 단조방식의 반자동화를 통해 품질을 유지하는 한편, 재질이 균일한 철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제품을 규격화해 시장의 신뢰를 쌓았다. 이 대표의 아버지인 이도종(67)씨는 가업을 이어받아 제품을 다양화시키며 회사를 키웠다.

하지만 이 대표는 가업전승에 뜻이 없었다. 사양산업인데다 어린시절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숱하게 봐왔던 터였다. 그래서 대학도 전자공학과를 다녔다. 이 대표는 “아버지와 함께 평생 가업을 일궈온 어머니(고 배현숙 씨)가 돌아가시기 전 간곡하게 요청했다. 마음을 고쳐먹고 망치에 인생을 걸게 됐다”고 소개했다.

2003년 가업을 물려받은 이 대표의 앞에는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었다. 조부와 부친은 사업가라기 보단 장인에 가까웠다. 사무실에는 제대로 정리된 장부도 없었고 알음알음 주고받은 채권채무가 복잡했다. 또 공구 전분야에서 중국산의 도전이 거셌다. 게다가 가업을 잇자마자 공장이 산사태로 일부가 매몰됐다. 사업은 존폐기로였다.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 대표는 경영대학원에 진학해 배우면서 개선방안을 찾아나갔다. 그는 “경영자는 올바른 판단을 내려줘야 하는 자리”라며 “공장에서 숙식하며 용접 등 망치제조와 관련된 지식을 밑바닥부터 배워나갔고, 이를 통해 직원들의 인정을 받고 신뢰를 얻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한 대형조선소가 특수용접망치 제작을 의뢰해온 것. 이 제품은 조선소로부터 호평을 받은데 이어 루마니아 망갈리아조선소에도 공급이 이뤄져 영창단조의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렸다.

이 대표는 어머니의 이름을 딴 프리미엄 브랜드 ‘BHS’과 ‘토르’ 등 신제품을 출시하며 제품다각화를 꾀했다.

이 대표는 “중국산 망치는 사용 중 자루가 빠지는 등의 문제가 있다. 자루가 빠지지 않는 망치를 개발, 특허를 출원을 하는 등 제품의 차별화와 고급화에 힘쓰고 있다”며 “국내시장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세계시장에서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금산=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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