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광화문 광장-조우호 덕성여대 교수] 대한민국에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20세기 초 대표적인 미학이론가이자 사회사상가인 발터 벤야민은 ‘예술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미래에 충족될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가 문화정책의 기본 철학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문화정책은 현재의 문제를 파악하되 미래 수요를 위한 구체성과 방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국가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표절 논쟁을 보면 우리나라 문화정책은 현실성도 미래 방향성도 없는 기계적 행위처럼 보인다. 전혀 창의적이지 않은 디자인을 전문가 검토까지 거쳤다고 말하는 문체부나 그 장관을 두고 굳이 자신의 대학 후배임을 밝히며 표절을 주장한 야당의원이나 거기서 거기다. 문체부가 주장하는 전문가는 도대체 무슨 전문가인지 알 수 없지만, 공적인 정치에서 한 나라의 장관을 후배로 깔(?) 수 있다고 말하는 의원을 보면 대한민국 의원이 대단한 자리인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존재감 없는 장관에 강력한 의원들이 대치만 하는 정부와 국회라면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기 어렵다는 점이다.

경제정책은 어떤가. 정부의 경제정책이 20대 국회에서도 입법 추진할 4대 구조개혁과 연관이 되는 노동개혁 4법과 경제활성화 관련 6법안 등이 핵심이라면,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은 여전히 입법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에 더하여 조선과 해운 산업의 구조조정이 발등의 불이다. 브렉시트에 따른 국제 경제와 금융 흐름의 변화에 대처해야 하는 돌발 과제도 있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제대로 실현되거나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 정부 경제정책은 여전히 표류 중이다.

국회는 어떤가. 20대 개원 국회 교섭단체 연설을 보자. 여당은 갑자기 ‘중형평준화’나 ‘일자리 생태계 지도’라는 새로운 용어를 정책으로 내세우고, 더불어민주당의 경제민주화도 옹호하고 나선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대표는 당연 경제민주화 논리를 내세운다. 거대 경제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로 재벌의 의사결정 민주화를 위한 법 개정과 공정거래위원회 전속 고발권을 폐지하는 것을 언급한다. 국민의당 대표의 연설은 ‘미래일자리특위’를 제안하는 점에서는 구체성이 있다. 하지만 안 대표가 공을 들여 주장한 공정성장과 격차 해소를 위한 로드맵의 제정 등은 구체적 경제정책의 내용이라기보다는 목표나 방향의 성격이 강하다.

국회 3당의 대표 연설을 보면 경제ㆍ사회정책에서 흥미 있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모두 우리 사회가 불평등하고 분배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외치며, 산업의 구조조정과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거의 동일한 문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내용만을 두고 보면 여ㆍ야당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여야 모두 경제정책의 목표는 강조하지만 정작 그 구체적 내용은 아직 공사 중이라는 점이다. 여당의 제안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잡탕이다. 경제민주화는 그 구체적 방안이 아직 초라하다. 국민의당이 주장한 공정성장과 공정사회도 마찬가지다. 당연 국회가 정부와 협상을 벌이거나 대안을 내세울 내용은 적고, 야당의 반대나 여당의 일방적 동조가 있을 뿐이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표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럼에도 경제ㆍ사회정책이든 문화정책이든 국가의 기반 정책이 아직까지 확정되지 못하거나 방향성 없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 주된 책임은 정부에 있다. 국회와의 협상이든지 아니면 협치를 하든 어떤 과정을 거치더라도 정책을 실현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국회도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공범이란 오명을 질 수 밖에 없다. 어쩌면 국회의원의 특권 폐지가 그 대가로 다가올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