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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청 특리는 ‘치유의 특별시’
동의보감촌 약초스파에 왕뜸·산책…
성스런 천왕봉의 기운 받고 대원사 묘명스님 덕담 한마디 듣고



대한민국에서 행정구역 명칭에 특(特)자가 들어가는 곳은 두 곳이다. 당연히 서울특별시가 있고, 나머지 한 곳은 바로 경남 산청군 금서면 특리(特里)이다.

특리에는 아주 특별한 곳이 있다. 동의보감촌이다. ‘한국의 파묵칼레’ 같은 곳이다. 지친 도시인, 자녀 건강을 기원하는 엄마, 백년해로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부부, 더욱 예뻐지고 싶은 도시 여인, 장애가 있는 청소년 등이 모여든다. 아토피 치유캠프, 공무원 심신 수양 등 특별한 MT도 벌어진다.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은 최고 비경이다. 태양이 옅은 붉은 색으로 동쪽 새벽하늘을 물들이다가 어느 순간 광채를 토해내는 풍경은, 밤새 추위에 떨며 기다리던 산사람의 마음을 일순 무장해제시킨다.

술자리 건배사 중에 ‘9988, 1234’가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 이틀 사흘 정도만 앓고 웰다잉 하자’는 뜻이다. 현대 의학이 청년 백세 연명 시대를 열겠지만, 현대 사회는 스트레스 때문에 55세까지만 팔팔하다가 나머지 44년을 약 기운으로 버티며 골골 거리며 산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나온다.

▶‘9988 1234’를 위하여= 2013년 산청세계전통의약 엑스포 이후 세계적인 힐링빌리지로 떠오른 이곳에서는 특별한 테라피가 입체적이고도 집요하게 이어진다. 입촌하기 전 먹는 1만원짜리 산삼 비빔밥부터 예사롭지 않다. 친환경 산채와 양념 위에 산삼 두 뿌리가 얹혀져 비벼먹는데, 효능을 확인하기 전, 맛이 일품이다. 동의본가 한의원에 가면 먼저 약초 스파를 한다. 약초탕에 들어가 약초주머니를 얼굴에 대고 심호흡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이어 십전대보탕 약첩만들기 체험을 하고 나서 갖은 한약재를 넣은 ‘장수 베개’를 배고 누우면, 서울 명의로 있다가 산청에 스카우트 된 김종권 원장이 손수 배꼽 왕뜸을 해준다. 왕뜸 때문인지, 십전대보탕 때문인지, 누워있으면 십중팔구 단잠을 잔다. 잠도 보약이다.

동의본가 김종권 한의사가 왕뜸을 뜨는 모습.

김원장의 기상 신호에 깨면, 잠시 동의보감 마을을 산책하는데 그냥 걷는게 아니다. 이곳에서 대대로 효험을 봤다고 구전되던 신비의 3석, 즉 140t에 이르는 거북바위, 자른 절단면에 봉황이 새겨진 돌 거울(석경), 복석정 바위에 머리나 손, 온몸을 대는 의례가 이다. 마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 과정과 비슷하다. 저도 몰래 그 경건함에 빠지다 보면, 뭔가 다른 느낌이 있는 듯 하다.

장소를 옮겨, 안락의자와 나무침대를 합쳐놓은 듯한 일라이트(Illite) 온열 침상에 누워 약재 나무 엮은 것을 몸에 덮은채 한방차를 마시며 멀리 남산과 정수산을 호젓이 바라본다.

▶‘뭔가 해낸 뿌듯함’의 근원은=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리산 북쪽, 가락국 왕궁이 있었던 왕산 자락과 동의보감촌을 연결해 조성한 허준순례길을 걸으며 물소리, 새소리, 여행자의 재잘거림 삼중주를 감상한다. 아주 특별한 테라피코스를 마치고 나면 머리가 시원해지고 목과 허리가 잘 돌아간다. 얼치기 여행자로선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왕산을 북서쪽으로 끼고 돌면 만나는 구형왕릉은 한국형 피라미드 모양이라 눈길을 끈다. 근처에는 허준의 스승 류의태가 탕약을 다릴 물을 뜨던 약수터가 있다. 뼈 강화와 혈액순환을 돕는 홍화제품이 인기인 한방가공품매장, 한의학박물관, 엑스포주제관, 한방약초테마공원의 여러 설명을 읽다보면 자신이 뭔가 해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 남사예담촌의 족욕 모습.

산청은 왜 특별할까. 답은 지리산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3개도 5개군에 걸친 지리산의 최고봉 천왕봉과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지리산의 대표 명소인 제석봉, 백운동계곡, 장터목, 국수봉, 유암폭포, 법천폭포, 중산리계곡, 마야계곡, 지리산 성모상이 모두 산청에 있다. 산청은 지리산의 서울특별시이다.

종점에는 온갖 문화와 문물 모여 떠들썩하다. 누구든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智者)으로 달라진다(異)는 뜻의 지리산은 백두대간의 종점이다. 지리산은 말이 없지만, 천태만상을 품었다.

천왕봉을 오르는 코스는 함양 백무동 야영장에서 출발해 산청의 장터목 대피소를 거치는 방법과 산청 읍내에서 출발해 산청 중산리 계곡을 통해 가는 산행로 등이 있는데, 중산리 또는 대원사 쪽이 당일 정복에 적합하다.

▶성스러운 천왕봉 일출=천왕봉의 일출은 산사람들이 꼽는 최고 비경이다. 태양이 구름바다를 힘겹게 밀쳐내면서 옅은 붉은 색으로 동쪽 새벽하늘을 물들이다가 어느 순간 광채를 토해내는 풍경에, 밤새 추위에 떨며 기다리던 산사람은 환호하며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천왕봉 기운을 지닌 산청사람 배영록(41) 대장은 2002년에 이어 지난달 산청군 깃발을 들고 에베스르트산(8850m)을 정복했다, 

X자 형태로 겹쳐 있는 남사예담촌 회화나무.

지리산 기운을 글로 전하기는 불가능하다. 그 대신 산청의 꿀사과 얘기를 하자. 당도 높고 육질 아삭한 산청사과는 지리산 천왕봉 아래 골짜기 일대에서 생산되는데, 큰 일교차로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아 꿀 같은 액이 생긴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영빨’을 들먹일 것도 없이 지질, 식생학적으로 특별하다는 뜻이다.

1915m 천왕봉에 오르다 보면, 해발 1000m 기슭 일대에 국내에서 보기 드문 흰 칡꽃을 만날 수 있다. 보통 칡꽃(葛花)은 붉은데, 꽃차를 다려먹으면 숙취해소와 간 보호에 효능이 있다. 흰칡꽃차는 여기에다 당뇨 치료에도 좋다고 한다.

대원사 계곡도 유평계곡-무제치기 폭포를 거쳐 천왕봉에 이르는 기점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전문화재청장은 ‘남한 제일의 탁족처’라고 했다. 국내 3대 비구니절인 대원사는 예쁘고 아기자기하다. 진입로 꽃과 대웅전앞 정원이며, 선원 앞뜰 철쭉과 대나무, 등이 수줍게 조경돼 있다.

이곳도 심신 건강의 도장이다. 약초방과 찜질방을 갖추고 있으며, 사찰음식 특화사찰 답게 음식이 맛있고, 템플스테이 여행자에게 실습형 레시피 강의도 한다. 대원사 사찰음식 중 개발딱주, 민들레, 고사리를 이용한 반찬은 맛있는 약상(藥床)이다.

▶비구니들에게 커피가 대세=과거 사찰에서는 녹차 중 4월 곡우 전에 채다하는 ‘우전’을 주로 마셨지만, 요즘 비구니들에게 대세는 커피라고 묘명 주지스님은 귀띔한다. 공정무역 커피로 공양받은 것이다. 경남도청과 MOU를 맺어 불우한 환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잠시 비행에 빠진 청소년들을 교화하는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묘명스님은 “한(恨)은 피부나 몸까지 멍들게 하는 독이므로 수행을 통해 없애야 한다. 고통 뒤에 결실이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덕담을 건넸다. 그는 “잣이니, 자시라”는 법어같은 말씀으로 산사를 찾은 여행객에게 지리산 청정 잣을 건네기도 했다.

보물 제1112호 산청대원사다층석탑은 6.25때 숱한 폭격에도 건재하던 조선전기 석탑이다. 지리산 일대 돌들이 그렇듯 철분과 불소를 함유해 붉은 빛을 띤다.

영월 동강 등과 함께 국내 3대 래프팅 명소인 경호강이 레포츠를 통한 신체 건강의 화룡점정이라면, 남사예담촌은 나눔과 비움, 보호의 덕목을 가르치는 마음 수양의 상징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선정된 남사예담촌은 중산리 계곡에서 나와 20번 국도를 타고 24㎞ 동쪽으로 가면 만난다. 30여채의 기와집과 돌담길이 그대로 보존돼 있고, 아직 후손들이 사는 곳이 많아 현대와 조선시대가 공존하는 시간여행 느낌을 준다. 옛담 사이로 두 그루의 회화나무가 교차해 X자 형태로 겹친 모습은 서로 의지하는 듯 정겹다. 사진작가들의 단골 출사지이다.

마을 한가운데엔 차만 몇 대 서 있는 공터가 있는데, “비워야 채워지니 집도 논밭도 만들지 말라”는 선조들의 뜻을 따랐다.

▶산청의 나눔, 비움의 비결은?=건강이 효심과 인심을 낳았을까. 동의보감촌 북서쪽 금서면 신아리에는 쌍둥이 효자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쌍효마을이 있다. 병든 어머니 방문이 바람에 닫혔다 열렸다 하자 문을 닫으러 갔다가 갑작스런 바람에 문이 닫혀 손가락에서 피가 나자, 어머니께 핏방울을 입에 넣어 쾌유토록 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동의보감촌에서 남쪽으로 가다 밤머리재를 넘으면 나눔의 스토리가 전해진다. 한 독거 노인이 자신이 일구던 땅 6000평을 마을에 기증했고, 주민들을 이를 공동소유로 삼아 이득을 나눠갖는 홍계상촌마을이다.

최근 산청군 공무원들은 장애인과 함께 천연염색 체험 봉사를 했고, 군민들에 찾아가는 수돗물 수질점검을 해준다. 이웃 아저씨인 농협 회원들은 1인 1장학구좌를 갖기로 해, 이곳 아이들은 형편이 잠시 어려워도 교육비 걱정이 없다.

산청에 가면, ‘인심은 곳간이 아니라 건강에서 난다’는 새로운 진리를 실감할 수 있다. 

함영훈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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