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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육상쟁 상처만 남기고분열치유 만만찮은 숙제로
“투표장에 갈 땐 반드시 펜을 가져 가세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가 진행된 지난 23일(현지시간) 영국의 소셜네트워크(SNS)에서는 ‘#usepens(펜을 사용하자)’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이런 주장이 퍼졌다. 투표용지에 연필로 기재할 경우 정보당국이 투표 결과를 조작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허무맹랑한 음모론 같지만 브렉시트를 둘러싼 잔류파와 탈퇴파 간의 갈등과 불신이 얼마나 큰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날 투표 결과에 상관없이 영국 사회는 크나큰 생각의 차이를 확인했다. 영국이 EU에 남느냐 떠나느냐의 문제는 경제 문제이기도 하지만, 영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 및 주권을 규정하는 문제다. 돈만이 아닌 신념이 결부된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크게 느껴지는 분열과 상처를 영국 사회가 어떻게 봉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민투표 유세 기간 영국은 완전히 둘로 쪼개졌다. 국민 여론이 거의 정확히 반반으로 갈렸고, 유고브 여론 조사에 따르면 같은 노동당 지지자 중에서도 2/3는 잔류에, 1/3은 탈퇴에 표를 던졌다. 보수당에서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잔류를,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이 탈퇴를 택했다. 정부 내에서는 조지 오스본 내무장관이 잔류 편에,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이 탈퇴 편에 섰다. 보수-노동 양당 체제라는 기존의 정치 지형이 브렉시트 찬반으로 완전히 재편된 것이다.

많은 유권자들과 전문가들은 국민투표 캠페인이 분노와 분열을 부추겼다고 평가했다.

유세 기간 여론조사가 줄곧 박빙으로 나온 탓에 찬반 양측은 한 표라도 더 자기 쪽으로 끌어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상대 측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사기꾼’ ‘나치’ 등의 격한 표현으로 적대시했다.

투표를 일주일 여 앞두고서는 템스 강에서 각 진영이 배를 끌고 나타나 ‘해전’을 방불케 하는 격한 유세를 벌이기도 했다. EU 잔류 캠페인을 벌이던 조 콕스 노동당 의원 피살 사건은 그러한 갈등의 정점이자 자제를 요청하는 위험 신호였지만, 분열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캐머런 총리는 국민투표 승패 여부와 상관없이 나라를 두 쪽 낸 책임을 져야할 상황이다. 그는 지난해 보수당 내 EU 회의론자들을 달래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당내 갈등 봉합을 국가의 미래보다 우선시한 캐머런 총리의 판단 때문에 영국이 큰 타격을 받게 됐다”고 비판했다.

다행히 24일 탈퇴파를 이끌어왔던 존슨 전 시장과 고브 장관을 비롯해 탈퇴 진영에 합류했던 집권 보수당 의원 84명이 캐머런 총리에게 투표 결과에 상관없이 총리직을 유지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공동 서한에서 “국민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총리는 나라를 계속 이끌고 우리 정책을 이행하는 국민의 위임과 의무 모두를 갖고 있다”라고 밝혔다. 우선 보수당만이라도 캐머런 총리를 중심으로 투표 이후 국면을 수습해 나가는 데 단합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날 영국이 EU 잔류에 손을 들더라도 반이민 정서나 유럽 회의 정서가 아직 견고하게 남아있는데다, 극우성향의 독립당 등 일부 탈퇴파는 재투표를 요구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어 갈등이 완전히 봉합될 지는 미지수다.

당장, 반(反) EU를 주창하며 EU 탈퇴 운동에 앞장선 영국독립당(UKIP)의 나이절 패라지 대표는 투표 마감 뒤 스카이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잔류 진영이 근소하게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아주 놀라운 투표 캠페인이었다. 영국독립당과 나는 장래에 더욱 강해질 것이다”라고 말해 EU 탈퇴 운동을 지속할 뜻임을 시사했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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