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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보는 ‘공유지의 비극’… 대우조선 사태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지난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대우조선해양은 ‘곶감 항아리’였다. 다들 하나 씩 둘 씩 빼먹었다. ‘내 꺼’가 아닌 것에 다들 관대했다. 덜 먹으면 손해라 생각했다. 많이들도 빼드셨다. 한국 권력의 정점 청와대에서부터, 입법권을 가진 국회, 돈줄을 쥐고 있는 산업은행, 그리고 현장 직원에게까지 대우조선은 ‘못 챙겨 먹으면 바보’가 되는 곶감 항아리였다.

너도 나도 달려들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은 보은용으로 대우조선을 사용했고, 산업은행은 퇴임 후 직장 보전자리로 대우조선을 애용했으며, 어느 사이 ‘을’이 돼버린 회계법인들은 감시 보다는 고객의 구미에 맞는 보고서 작성에 열을 올렸다. 그들이 ‘내 것’이 아니라고 여겼던 자산이 ‘국민 세금’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사회적 공분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총체적 부실 ‘대우조선’= 지난 15일 감사원은 대우조선이 분식회계를 했다고 발표했다. 들어올 돈은 많이, 나갈 돈은 적게 계산하는 방법이 사용됐다. 분식회계의 전형이었다. 분식이 일어난 자금은 1조5342억원이다. 주채권은행 산업은행은 이 과정에서 대우조선의 부실을 잡아낼 시스템을 갖췄음에도 이를 가동하지 않아 부실을 키웠다.

분식회계 정황은 산업은행의 ‘재무이상치 분석시스템’을 활용한 것이었다. 산은은 이러한 시스템이 있음에도 대우조선에 적용하지 않아 위험을 적발할 기회를 놓쳤다. 묻지마 투자도 자행됐다. 임직원들에게는 수백억원대의 격려금이 지급됐다. 산은의 관리·감독 시스템은 멈춰있었다.

산은 출신 인사들은 대우조선해양에 최고재무책임자(CFO)와 감사위원 등을 맡았지만 거수기 역할만했다. 퇴직 전 ‘편한 자리’로 대우조선해양이 여겨졌던 탓이다.

감독 당국도 ‘간섭’만 많았지 ‘감시’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금융위원회는 대우조선의 지분 12.15%를 가진 2대 주주로, 감독 역할을 산업은행에 위임하고 있으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금융감독원은 기업여신 부실이나 회계·감리 문제, 공시 위반 문제 등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었지만 1조5000억원이 넘는 엄청난 규모의 분식회계를 포착하지 못했다.

차장급이 180억 횡령= 40대 차장급 인사 임모씨가 대우조선해양 회사돈 180억원을 지난 2008년부터 8년 동안 횡령했다. 물건을 샀다며 회사에 제출한 거래 명세표는 가짜였다. 회사에 허위로 보고된 물건 대금은 임씨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임씨는 이렇게 모은 돈으로 부산 지역 상가에 투자하고 주식도 했다. 고급차도 굴렸다. ‘꼼꼼한’ 그는 명예퇴직을 신청해 퇴직금 1억원도 받아 나갔다. 14일 검찰은 임씨를 구속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임씨의 범행이 8년 동안이나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임씨의 범행을 인지한 것은 올해 2월이다. 회사측은 피해액이 60억원 가량 된다며 고발했으나 검찰이 수사해보니 무려 3배를 임씨가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임씨의 범행은 업황 악화로 본격적으로 회사가 기울기 시작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하되던 시기에 임씨가 빼내간 자금은 사실상 세금이었다. 남은 대우조선 직원은 더 걱정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임씨 때문에 모든 직원들이 도매금으로 ‘횡령범’ 낙인이 찍힐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현장 직원 1명만의 문제가 아니다. 윗물이 썩자 아랫물도 썩은 것이다.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정조준하고 있는 남상태 전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와의 친분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남 전 사장의 ‘연임로비’가 가능했던 것도 이런 ‘뒷배’ 덕분에 가능했다. 또 2008년 이후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로 선임된 인사 11명 가운데 7명이 정관계 인사들이었고, 현 정권 하에서도 7명 가운데 5명이 낙하산 인사로 분류된다. 세금을 굴린 산업은행 측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감시견’ 역할을 해야했던 회계법인은 뒤바뀐 ‘갑을 관계’ 하에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총체적 부실 속에 ‘남의 돈’인 세금은 펑펑 남용됐다.

노조는 ‘파업 결의’= 상황이 이런데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은 전날 85%의 찬성률로 파업 결의안이 가결됐다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투표 전 “투표 분위기가 좋다”고 전망했다. 파업 결의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자, ‘끝장을 보자’는 의지로도 읽혔다.

대우조선 노조가 파업 결의안을 들고 나온 것은 방산 부문 분리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론 올해 하반기 인도될 해양플랜트 물량이 줄줄이 대기중인 것과 관계가 깊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주 잔고가 바닥인 상황에서 당장 일감이 없어진 생산직 직원들이 고용 불안을 느낀 것이 높은 파업 찬성률로 이어졌다는 해석이다.

문제는 노조가 벌이고 있는 회사측을 향한 ‘싸움’이 결국 국민 세금을 사이에 둔 흥정이란 점 때문이다. 현재까지 대우조선에 들어간 공적자금은 7조원이 넘는다. 회사가 회생할 때까지 얼마의 자금이 더 투하돼야 할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대우조선 노조는 지난해 10월 4조2000억원을 지원받을 때 ‘쟁의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동의서도 제출했다. 그랬던 대우조선 노조가 파업 결의안을 가결 시킨 것은 ‘국민에 대한 배임’이다.

한편 대우조선 노조가 파업결의안을 가결시킨 바로 같은 날, 한진중공업은 임금단체협상 권한을 회사에 위임한다고 밝혔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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