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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08. 발끝마다 차이는 포르투 명물…시간 가는 줄…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꾸물거리는 하늘이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는다. 오늘은 남쪽의 도루강을 향하지 않고 북쪽으로 올라가 보기로 한다. 카사 다 무지카 (Casa da Música)를 찾아가는 길이다. 보아비스타 광장(Rotunda da Boavista)에 도착한다. 커다란 둥근 원형의 광장에 잔디가 심어져 있어 매우 중요한 장소 같기는 하지만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없어서 그 편안한 푸름만 눈에 담고 돌아 나온다. 목표지점은 카사 다 무지카, 탑의 오른편 뒤쪽에 특이한 모양의 건물이 보인다.



카사 다 무지카 앞에는 호스텔의 워킹투어 같은 프로그램으로 온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호스텔 직원이 이곳을 추천해 주며 꼭 가보라고 한 이유가 있었다. 직육면체의 모서리를 과감히 깎은 듯한 건물의 외양은 파격적이다. 포르투의 아름다운 건물들과 마주보는 카사 데 무지카의 초현대적인 디자인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내부로 들어가 본다. 오전이라 공연은 없지만 직원들이 있는 매표소나 음악홀 역시 철, 나무판으로 이루어진 심플한 인테리어다. 1층의 까페테리아에서 간단히 커피와 에그타르트를 주문한다. 현대적인 까페테리아의 내부에서 창밖의 유서 깊은 알록달록한 건물들을 보는 것은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며 커피를 마시는 느낌진다. 머리카락이 하얀 노부부가 책을 읽으며 이곳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이어서 젊은 커플들도 들어오고, 그러다 보니 이곳은 커피 한 잔 시켜놓고 공부하기에 그만인 장소다. 통유리로 비추는 바깥풍경은, 오늘처럼 날씨가 흐리면 흐린 대로, 햇빛이 비추면 비추는 대로 아름다운 그림일 것이다.



근처에는 카사 다 무지카 전철역이 있고 이곳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장거리 버스가 출발한다. 온 김에 근처의 버스회사 사무실에 가서 내일 오전 10시 마드리드로 출발하는 버스표도 예매한다. 점차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벗어나 여행 속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역사지구에서 멀리 나오니 현대적인 건물 일색이다. 현대 미술관(Museu de Arte Contemporanea de Serrlves)을 찾아 걷다가 괜찮아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간다.
포르투의 명물 프란세지냐(francesinha)는 빵 사이에 햄, 고기, 소시지 등을 넣고 치즈로 한 번 감싸 소스를 얹은 것이다. 그 위에 계란을 얹거나 감자칩을 곁들이기도 한다. 포르투에 오면 반드시 먹어봐야하는 음식이라고 해서 벼르다가 마침 눈에 띄는 레스토랑으로 들어온 것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느끼하다는 말을 들어서 프랑세지냐 하나에 맥주 두 병을 시켰고 선택은 옳았다. 먹는 것에 관심이 많지 않아서인지 맛은 그저 그렇다. 현지음식이란 여행자의 입맛에는 생경하지만 새로운 맛을 시도해 본다는 의미로 먹는다. 관광지 근처의 소문난 맛집도 좋겠지만 이렇게 현지인 가득한 좋은 레스토랑에서 먹어보는 맛도 괜찮다. 이걸로 오늘 점심은 해결이다.



흐린 하늘이 밝아지고 있는 것이 다행이다. 지도를 꺼내 해변을 향해 방향을 바꾼다. 바다로 가는 길엔 말을 타고 순찰을 하는 기마경찰이 있어 신기하다. 아스팔트를 두드리는 말발굽소리가 고요한 거리에 따각따각 울린다.
피스테라에서 이미 마주한 대서양이 다시 눈앞에서 일렁이고 있다. 바다가 보이는 까페에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해변에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갈매기들이 줄을 서 있다. 사람도 갈매기도 바다를 바라본다. 그 옛날 포르투에서 바라보는 대서양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우주만큼 미지의 세계였을 것이다. 저 바다가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하던 시절, 그 너머 미지의 세계로 배를 출항하던 포르투갈의 기개와 영광은 어디로 간 걸까?



해안 쪽은 의외로 사람이 많다. 여행자들, 가볍게 달리는 사람들, 강둑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공들도 많다. 여행 중이라 별 생각이 없어서 그렇지, 평화로운 휴일이다. 벤취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일요일의 느긋함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 여행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동상 하나가 강가에 서 있다. 하늘은 조금씩 맑아지고 있다.
새 전망대(Observatorio de Aves)라는 걸 보니 대서양과 도루강이 만나는 이 지점에 새들이 많은 것 같다. 노부부가 차에 새 모이를 가지고 와서 던져주고 새들이 하나 둘 모이를 받아먹으러 날아온다. 그걸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데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듯하다. 바람 부는 강가, 나무아래 묶인 배들, 모여드는 새들….



대서양을 바라보는 해변부터 도루강변을 따라 동 루이스1세 다리까지 트램이 지나는 긴 거리를 천천히 걷는다. 이제 짐 없는 발걸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까미노는 할 일을 다 했다. 들어가지도 않는 와인을 파는 바를 기웃거린다.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 것들이 다 신기하다. 낯설고 신기하고 어색한 풍경을 걷는 것, 세상 밖의 낯선 풍경에 나를 던져두는 게 여행이다.
구름이 많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있다. 어느새 도루 강변의 선착장까지 왔다. 일요일에 날씨까지 좋아져서인지 사람이 많다. 비 내리던 며칠간의 스산함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이라는 그 존재만으로 활기가 느껴진다. 나도 이 거리의 누군가에겐 그런 생동감을 주는 한 사람이 되었을까?



파란 하늘 아래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의 색감은 흐린 날보다 훨씬 좋다. 선명한 푸른색의 타일과 노란 색감, 그리고 나부끼는 빨래가 포르투 역사지구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까만 망토를 입은 학생들은 언제나 시선을 끈다. 까만 교복으로 칭칭 감았어도 그 새파란 청춘을 숨길 수는 없다.
동 루이스 1세 다리(Ponte de Dom Luiz I)는 에펠탑을 지은 에펠의 제자 테오필 세이리그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복층구조라 다리 아래는 인도와 차도가 있고 위에는 인도, 차도에 메트로 선로가 있다. 에펠의 제자의 작품답게 철골구조로 지은 다리에서는 에펠탑의 향기가 난다.



비 내리던 어제와 비슷한 각도의 사진인데 맑은 하늘이 배경이 되니 느낌이 다르다. 지난 사흘간 비가 내렸지만 지금이라도 맑은 하늘을 보여준 포르투가 고맙다. 오랜만에 햇볕을 쬐며 걸으니 기분도 좋아진다.
강변에서 좁은 골목들을 따라 오르다가 뒤돌아 볼 때마다 점차 내려다보이는 도루강의 풍경이 멋지다. 언덕으로 이루어진 도시, 아름답다고 생각하던 건물들의 이면 골목에는 더 이상 예쁘지도 멋지지도 않은 그냥 사람 사는 집들이 있다. 좁은 골목과 계단을 오가는 사람들은 무심한 얼굴로 목적지를 향할 뿐이다. 골목을 구경하며 정처 없이 걸어 힘들여 언덕 꼭대기에 오르니 어제 다니던 길들과 이곳으로 내려오는 여행자들이 나타난다.



그렇게 걸어서 다시 상벤투역에 다다른다. 비 내리던 첫날 얼떨결에 들렀던 상벤투역에도 오늘은 햇살이 비추고 있다. 20세기 초에는 수도원이던 상벤투역의 아줄레주(Azulejo: 장식타일)는 2만개의 타일 위에 대항해 시대에 세상을 호령하던 포르투갈 역사를 그려 넣은 것이다.
흰 타일위에 파란색 하나로 채색되었지만 농담이 조절되어 생동감 넘치는 그림들이 완성되었다. 아줄레주라는 독특한 타일문화가 포르투를 더 멋지게 한다.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여행 온 사람들에게도 무척 특이하게 느껴질 것 같다. 오래전 유럽 여행에서 시간이 없다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와보지 않은 게 후회될 정도다. 물론 역의 본래 목적인 기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에겐 큰 감흥이 없는 듯하지만 각 아줄레주마다 이야기가 담겨있어 여행자에겐 미술관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내일 케이가 코임브라로 떠날 버스정류장을 찾아 그 위치와 버스시간도 알아놓고 다시 리베르다드 광장으로 온다. 이곳에 머문 나흘간 매일 지나쳤지만 맑은 하늘, 물기 없는 바닥은 오늘 처음 본다. 빨강 파랑 시티투어버스도 대기 중인 광장은 활기차다. 비 갠 후라 더 선명한 풍경이다. 광장 옆의 아름다운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맥도날드는 다국적 프랜차이즈라는 상업적 성공을 넘어 문화가 되고 있다. 전 세계 어딜 가도 맛보게 되는 공통의 입맛을 구축하고 가는 곳마다 지역 중심가에서 특색 있는 외관과 인테리어로 명물이 되니 말이다.



비오는 거리에선 보이지 않던 시청사 앞의 풍경 또한 편안하다. 사람들은 바닥에 앉거나 벤취에서 쉬고 있고 그렇게 기대는 작은 바위에도 예쁜 타일이 붙어있는 게 재미있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색감과 중세의 느낌이 그대로 남은 포르투는 여행자로서 지나치기엔 참 아름답고 곱지만 그 이면의 투박한 골목길이나 허름한 집들도 많다. 겉으로는 옛날의 영광을 뽐내지만 경제 위기 등으로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많이 걷기도 했지만 발끝에 차이는 포르투의 명물들 덕분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쾌청한 하늘 아래, 포르투만의 독특한 향기들을 따라 취한 듯이 걷던 하루다.



게다가 포르투는 상상한 것보다 더 멋진 야경을 보여준다. 세라 두 팔라르 수도원(Mosteiro da Serra do Pilar)에도 불이 켜져 있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밤이 되자 불빛에 선명해진다.
다리 건너편에서 도루강을 바라본다. 와인 저장고의 빨간 지붕도, 강 건너편 역사지구의 알록달록한 풍경도, 강물마저도 어둠에 가려져 불빛의 궤적만이 남는다. 어디쯤이 강이고 바다인지, 어디가 대성당인지, 상벤투 역은 어딘지, 숙소는 어느 쪽인지 이젠 다 알 수 있는데 내일 아침이면 이 도시를 떠난다. 포르투에서의 마지막 하루가 저문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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