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문화스포츠 칼럼-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연구소장] 알리의 교훈과 한국경제
지난 3일 세상을 떠난 무하마드 알리가 가르친 교훈 중의 하나는 기존의 관습과 타성대로는 새로운 혁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1960년 로마올림픽 복싱 라이브헤비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알리는 굴욕적인 인종차별에 분개하며 금메달을 자신의 고향인 오하이오 강물에 던져 버리고 프로로 전향했다. 프로로 나선 알리의 성공 가능성을 점치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다. 호리호리한 몸매로 헤비급 복서로서는 중량감이 떨어진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기존 스타일과는 맞지 않는 선수였다. ‘주먹을 내리지 말라’, ‘턱을 올리지 말라’, ‘상대의 펀치를 피할 때 링에 기대지 말라’, ‘상대방을 코너로 몰지 말라’는 등의 복싱 기존 불문율에서 완전히 벗어난 복싱을 했다. 하지만 알리는 자신만만하고 대담하게 자신만의 복싱스타일을 구사했다. 주먹을 내리고, 머리를 들고, 춤추는 동작까지 하면서 상대와 근접을 펼치기도 했다.

이전까지 링에서 볼 수 없었던 알리의 복싱은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인기있는 불세출의 스타로 그를 이끌었다. 그는 빠른 민첩성과 유연성, 속도감까지 보이며 기존의 헤비급 복서와 차원이 다른 전혀 새로운 스타일을 개척했다. 신만이 그에게 천부적인 복싱 소질을 전수시켰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요즘으로 말하면 미국프로농구서 괴물센터 샤킬 오닐이 최고의 슈터 스테판 커리와 같은 현란한 드리블링을 구사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리가 상대했던 라이벌들은 그보다 강력한 파워를 갖춘 선수들이었다. 첫 세계타이틀 상대였던 소니 리스튼, 여러번 라이벌전을 치렀던 조 프레이저, ‘정글의 혈전’의 상대 조지 포먼 등은 주먹의 파괴력에서 그를 훨씬 능가했다.

특히 포먼과의 승부는 그의 영리한 전략이 잘 먹혀들어갔던 명승부였다. 월남전 반대를 위한 병역기피로 챔피언 타이틀이 박탈되고 사법처리되며 4년여간의 공백기를 가졌던 알리는 32세였던 1974년 욱일승천의 기세를 보이던 ‘핵주먹’ 포먼(당시 25세)을 맞아 회심의 전략카드를 꺼내들었다. 일명 ‘로프 어 도프(Rope-a Dope)‘였다. 정면승부를 피하고 로프에 기댄 채 반동을 이용해 충격을 흡수하며 상대의 힘을 빼는 장기전으로 맞서며 버텼다. 수세에 몰렸던 알리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전형적인 자신의 복싱스타일으로 결국 8라운드 종료 13초를 남기고 포먼을 쓰려트렸다. ’킨샤사의 기적‘으로 불린 이 승리로 알리는 다시 챔피언벨트를 허리에 차고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1981년 56승(35KO)5패를 기록하며 알리가 은퇴한 뒤 많은 복서들이 ‘알리스타일’을 비장의 무기로 삼기위해 시도를 했으나 이를 제대로 실현한 선수는 없었다. 알리의 복싱이 워낙 비정통적인 스타일로 그와 같은 방법으로 성공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우리 나라 경제는 지난 수년간 비교적 선전해왔으나 최근들어 해운, 조선, 석유화학 등 주요 제조업 등에서 심각한 구조조정의 위기속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 경제가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과 경험을 무시하고 참신한 혁신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알리의 교훈을 깊히 새겨 볼만한 일이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