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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간 오바마 '쌀국수 외교'·아베, 방일 G7정상에 '와규외교'
-각국 지도자들 친근한 이미지 어필 수단으로 활용



[헤럴드경제=문재연기자]요리는 가장 오래된 외교수단이다. 어려울 것만 같았던 협상도 극적으로 타결되게 하는 것이 식사 자리이기 때문이다. 1814년 9월부터 1815년 6월까지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빈회의(Congress of Vienna)의 만찬을 준비한 당대 최고의 셰프 마리-앙투안 카렘(Careme)은 패전국 프랑스가 쪼개지지 않고 승전국들과 비등한 위치에서 회의를 주도할 수 있도록 공헌했다. 


현지인 호감도 …‘음식외교’ 베테랑 오바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음식 외교’를 통해 자신의 원하는 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리얼푸드'에 따르면 지난달 베트남 방문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베트남과 ‘화해 관계’를 어필하기 위해 수행원이 아닌 CNN 음식프로그램 진행자인 셰프 앤서니 부르댕과 하노이의 유명한 서민식당 ‘분짜 흐엉 리엔’에서 쌀국수를 먹었다. 현지인들과 어울려 국수를 먹는 그의 모습은 현지인들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80년 만에 쿠바를 방문했을 때 그는 피델 카스트로의 사진이 옆에 걸린 자리에 앉아 쿠바식 스테이크와 야채구이를 시켜먹었다. 쿠바와의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지만, 해당 식당이 쿠바 정부에 사업을 허가받은 첫 민간 가정 중 하나이기 때문에 방문한 것이라는 분석이 가장 많았다. 쿠바 현지 매체인 ‘유니비전’은 “오바마가 쿠바의 시장경제화를 촉진하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며 자유시장의 묘미를 적극 홍보했다고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의 설 명절인 ‘누루즈’(Nowruz)를 맞아 이란 지도부와 국민에게 축하 메세지를 전했다. 그는 페르시아 어로 새해 인사를 건네면서 이란 핵 합의와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이때 오바마는 “백악관에서도 페르시안 전통음식으로 누루즈를 맞이할 것”이라며 “다른 미래로 향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자칫 잘못하면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영상메세지에 음식 이야기를 곁들여 친근한 이미지를 어필한 것이다.

지난달 27일과 28일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도 음식은 외교의 들러리가 아닌 ‘주인공’이었다.


식자재서 식품까지 철저한 계산…아베 총리

일왕제의 신화가 시작된 이세신궁에서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소망을 이룬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는 일본의 전통음식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에 집중했다. 이날 G7 정상들은 이세신궁을 방문한 뒤 점심으로 현지 호텔전문학교 학생들이 미에현에서 잡힌 수산물로 만든 프랑스 코스 요리를 대접받았다. 미에현의 수산물은 일본이 최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한국뿐만 아니라 러시아, 중국 등 5개국이 수입을 규제하고 있는 동일본 지역의 8개 현 중 하나다. 해산물 토마토 샐러드에서부터 일본 3대 최고급 쇠고기인 마쓰자카 와규 스테이크까지. 모든 메뉴에는 일본의 식자재와 식품을 알리기 위한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건배주와 식사와 함께 제공된 술은 일본 정주의 최고봉에 있는 ‘순미대음양주’가 꼽혔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국무장관 시절 유명 요리사 80여 명을 ‘국가 요리사’(State Chef)로 선정하고 외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음식을 만들거나 해외에 파견해 조리를 하도록 했다. 요리를 통해 미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제고하겠다는 의도 때문이다. 힐러리는 당시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음식은 외교의 강력한 일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힐러리는 영부인 시절 인도 외교사절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들에게 익숙한 향신료인 카르다뭄(cardamom)이 들어간 차(茶)를 대접했다. 이에 인도 외교사절단들은 힐러리의 배려심이 깊다고 극찬했다. 음식을 통해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음식 외교가 항상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음식은 두 나라가 갈라서게 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강력한 외교수단인 만큼 역효과도 클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프랑스와 이란 간의 정상회동이다. 서방과 핵 협상을 타결한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유럽 순방 일정으로 프랑스를 찾았지만 와인 하나를 놓고 오찬을 취소해버렸다. 이란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술을 마시지 않는다. 또한 율법에 따라 할랄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하필 프랑스에서 오찬으로 자국의 자랑거리인 와인을 메뉴에 넣으려고 한 것이다. 이란의 불편사항을 배려해 프랑스는 술을 뺀 조찬을 제시했지만, 이란은 ‘싸구려’라는 이유를 들어 조찬을 거부했다. 결국 정상회동은 조찬을 건너뛰어야 했다. 


지난해 10월 영국을 국빈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캐머런 총리는 넥타이를 매지 않은 정장 차림으로 런던 외곽 버킹엄셔의 조그만 펍에 들렀다. 양국 정상은 20분 동안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을 곁들인 영국 대표 음식인 피시 앤드 칩스와 맥주 한 잔씩을 즐겼다. [사진=CCTV]

잘되면 藥 안되면 毒…음식외교의 양면성

만찬으로 인해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깨지는 일도 있었다. 1992년 아버지 조지 부시 미 전 대통령은 미야자와 일본 전 총리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 중 위장염으로 갑자기 쓰러졌다. 그는 곧 10여분 간 휴식을 취했지만 만찬은 그대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숙소로 돌아가 휴식을 취해야 했다. 주간지 더 타임은 국제 외교무대에서 발생한 황당한 해프닝이나 결례가 된 외교적인 사건 10선 중 하나로 해당 사건을 꼽았다.

각국 음식에 관한 정상들의 발언으로 상당한 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05년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영국의 음식 문화를 혹평한 일이었다. 시라크 대통령은 2005년 7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회담하면서 “음식이 형편없는 나라 사람은 믿을 수 없다. 영국이 유럽 농업에 기여한 것은 광우병 뿐이다. 핀란드 다음으로 영국 음식이 형편없다”고 말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과 슈뢰더 총리가 폭소하며 동조했고, 현장 기자들이 이 소식을 전하자 영국 여론이 들끓기도 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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