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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품 위작 근절 대책은 ②] “법미술학적으로 감정할 수 있는 전문가 키워야”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천경자의 유족들이 한국 감정기관을 믿을 수 없어 (미인도 감정을) 해외기관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과연 해외기관에서 한국 작가 천경자에 대해 얼마나 검증 능력이 있을까. 감정 문화를 정착시키려고 노력해왔던 사람들로선 치명적인 모욕감이 든다.”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

정부가 미술시장 개입에 나섰다. 위작, 대작 논란으로 시끄러운 미술계를 더 이상 자율에만 맡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9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ㆍ이하 문체부)가 내 놓은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및 활성화를 위한 정책 방안’에는 그동안 위작과 관련 미술계에서 제기돼 왔던 다양한 대안들이 ‘백화점식’으로 총망라 됐다.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및 활성화를 위한 정책 방안 토론회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정부안은 유통 투명화에 무게가 실렸다. 주요 내용은 ▷화랑, 경매회사 등 미술품 유통업 종사자들에 대한 설립 허가ㆍ등록기준 마련 ▷미술품 등록 및 거래이력신고제 도입 ▷‘미술품유통단속반’ 및 ‘특별사법경찰제도’ 도입 ▷‘국가미술품감정연구원(가칭)’ 설립과 국가 공인 ‘미술품감정사’ 제도 도입 등이다. 문체부는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오는 8월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지만, 시기는 현실에 맞게 탄력적으로 조정될 예정이다.

정부가 이날 여론 수렴을 위해 마련한 토론회에는 총 9명의 미술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가 좌장을 맡고, 박우홍 한국화랑협회장, 최윤석 서울옥션 상무, 이상규 K옥션 대표,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서진수 강남대 교수, 서성록 한국미술품감정협회장, 송향선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감정위원장, 김영석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이사장,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이 참여해 각각 발언 시간을 가졌다.

먼저 유통 분야 토론에서는 국내 양대 경매회사 대표들이 나섰다.

최윤석 서울옥션 상무는 “큰 틀에서는 동의한다”면서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작품의 이력을 정부가 들여다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다. 규제를 위한 규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두번째로 나선 이상규 K옥션 대표 역시 “전반적으로는 정부안에 동의한다”면서 “유통업 허가 제도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등록제나 신고제로 해서 누구나 자유롭게 시장에 진입하게 하되, 규칙을 잘 지키게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퇴출시켜야 더 많은참여자들이 생기고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제도 도입만 하면 모든 위작이 근절될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며 “현금영수증처럼, 제도를 강제할 것이 아니라 제도에 부응하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준모 전 학예실장은 정부안에 전반적으로 찬성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짝퉁시장은 엄연히 존재한다”며 “용산, 장안평 청계천에 가면 박수근 그림을 1000만원에 살 수 있다.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해도 이 정도 법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전 실장은 또 “양도소득세도 내는 데 거래이력제를 꺼릴 것이 뭐가 있나”라며 적극 지지했다. 그는 “문화재청과 협의해 고미술 분야도 (정부안에) 함께 묶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는 사안별 선택적 법제화와 속도조절을 요구했다. 그는 “8월 법제화 하는 것이 서두르는 감이 있다”면서 “시장이 오랜만에 좋아지고 있는데 이걸 나쁘다고 생각해서 다양한 법들을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가를 여유있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우홍 한국화랑협회장(동산방화랑 대표)은 대형 경매회사에 의해 시장이 독식되는 상황을 경계했다. 그는 “화랑과 경매회사가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유통에 임해야함에도 그런 부분에서 미진하다”면서 “서로의 영역을 침해하지 말고 상생하면서 미술판이 도약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더 많은 의견수렴을 거쳐 내년 8월 정도에 실질적으로 입법화되는 것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감정 분야에서는 국내 미술품 감정 권위자들이 토론에 나섰다.

서성록 한국미술품감정협회장(안동대 교수)은 감정 관련 중장기 로드맵 마련을 요구했다. 그는 “외국 여러 사례를 봐도 정부가 감정원을 운영하는 곳은 거의 없다”면서 “미국의 경우 감정재단에서 감정사 자격증을 줄 때 2000시간에 걸쳐 교육을 하는데, 감정교육은 주로 대학과 연계하거나 경매회사를 통해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의 경우 세계 미술시장의 37%를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은 0.1%에 불과할 정도로 소규모”라면서 “우리는 현실을 돌아보며 중장기적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향선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감정위원장(가람화랑 대표)은 “미술시장이 커지고 그림값이 오르니까 위작이 갑자기 문제가 된 것”이라며 “감정사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 자격을 어떻게 검증할지는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럴 바에는 지금 잘 하고 있는 걸 보충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정부가 현 감정평가원에 힘을 실어줄 것을 요구했다.

김영석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이사장은 “한국 미술시장은 2차시장인 경매가 주도하고 있다. 1차시장인 화랑은 외면받는 현실”이라며 “정부가 미술작품 가격을 신용 평가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유통가격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해 1차시장이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은 “지난 10여년간 국가기관에서 의뢰받은 진위 감정 3000점 중 진품이 한 점도 없었다”며 위작이 판치는 현실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우환 사건에서 보듯이 아무리 올바른 감정을 하고 국가기관이 어떤 결과를 내놔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위작 사건이 꼬리를 물고 있는 건 법제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소장은 감정이 법적 효력을 갖기 위해 프랑스처럼 법원에 자문하고 감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사법감정사 제도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 그는 “현재 법적으로는 안목감정, 과학감정 둘 다 한계를 갖고 있다. 이젠 법과학적 감정론이 필요하다”며 “법의학, 법화학처럼, 법미술학적으로 감정을 할 수 있는 감정인을 키워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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