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美 스탠퍼드대 성폭행 피해자를 울린 세 번째 편지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미국 대학 내 성범죄 사건은 2014년 중 미 동부 대학 100여 곳에서 평균 10건이 발생할 정도로 빈번하다. 하지만 스탠퍼드대학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은 이례적인 가벼운 형벌과 가해자 측과 피해자 측의 입장이 드러난 편지로 미 전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이번엔 가해자의 친구가 제출한 탄원서가 화제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성폭행 혐의로 징역 6월에 보호관찰 3년형을 선고받은 스탠퍼드 대학 전직 수영선수 브록 커너의 형벌에 불만을 품은 친구 레슬리 라스무센은 8일(현지시간) 판결을 한 애런 퍼스키 지방법원 판사에게 “형벌이 가혹하다”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라스무센은 피해자가 “자기가 술 몇 잔 마셨는지 외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피해자의 증언에 터너의 형벌이 정해지는 건 불공평하다”며 “그녀의 편지 하나로 터너가 범죄자가 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징역 6월에 보호관찰 3년의 솜방망이 처벌 논란에 휩싸인 브록 터너(20). 그는 지난해 1월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최근 유죄판결을 받았다.

해당 편지는 지난 2일 선고 공판 당시 피해 여성이 낭독한 12장 짜리 의견서를 겨냥한 것이다. 당시 피해여성은 자신의 심리적불안을 설명하기 위해 재판관에게 “그가 잃은 것은 수영선수 자격, 학위 등 눈에 보이는 것들이지만 나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며 “오늘까지도 인간으로서 나의 가치와 에너지, 시간, 자신감, 목소리를 빼앗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가 낭독한 편지는 스탠퍼드대 학생 및 교수들뿐만 아니라 미국 전국민의 지지를 얻었지만,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이가 있었다. 바로 가해자의 부친이었다.

가해자의 아버지인 댄 터너는 4일 퍼스키 재판관에게 “(아들의) 20여년 인생에서 20분간의 행동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며 “행복으로 가득찼던 그의 삶은 걱정과 공포와 우울감으로 가득차게 됐다”고 주장했다. 아들 터너가 피해자에게 가한 피해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라스무센의 편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시 터너와 피해 여성 둘다 만취한 상태였다”며 “술을 마시면 사람이 감정적으로 격해질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만큼, 터너도 여성도 서로 관심을 보이던 중 오해가 발생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터너는 괴물이 아니다”며 “자기가 술 몇잔 마셨지는 기억하면서 그날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기억 못하는 여성의 말만 믿고 터너를 잔혹한 성폭행범으로 몰아부치기에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라스무센의 탄원서는 즉각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블로그 매체인 복스(Vox)는 “여성이 만취한 상태였다고 성폭행을 성폭행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며 “라스무센은 피해자를 비난할 의도가 없다고 말했지만 탄원서는 철저히 피해자를 비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가 8일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터너는 지난 공판 당시 마지막 최후변론에서 “대학의 음주문화와 선후배 문화로 인해 발생하는 문란한 성문화에 휩쓸려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명했다. 그는 자신의 ‘잘못’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 일로 학생으로서의 지위와 수영선수로서의 지위를 모두 잃었다”고 호소했다. 이어 “분위기에 휩쓸려 술을 마시지만 않았더라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에 매일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 포스트(WP)는 터너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기사 제목을 실었다며 여성들의 질타를 받았다. WP는 이번 사건을 보도할 때 ‘강간’(rape)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국민을 대표하는(All-American) 수영선수가 의식없던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를 놓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전했다. 여성들은 WP가 다른 대학 캠퍼스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을 놓고 가해자가 흑인일 때는 ‘강간’과 ‘강제’라는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며 터너가 백인인데다 명문대학의 수영선수이기 때문에 옹호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았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교수진들은 단체를 구성해 퍼스키 판사의 사임을 촉구하기 위한 활동에 나섰다. 스탠퍼드 법학대학교의 한 교수는 “퍼스키 판사가 이번 판결을 놓고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며 “피해자를 두둔했다는 이유로 살해 위협을 받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을 옹호한다고 살해위협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안전한 대학 캠퍼스 문화를 구축하고 여성을 향한 폭력을 막기 위해서라도 퍼스키 판사를 사임해야 한다”고 뉴스위크에 주장했다. 스탠퍼드 대학교 학생들은 오는 11일 치뤄질 졸업식에서 집회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온라인 청원사이트 ‘체인지’에서는 퍼스키 판사의 사임과 재판결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한창이다. 서명운동에는 2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대학의 음주문화에 익숙하지 못해 만취상태에 빠지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터너의 주장이 거짓인 정황이 포착됐다고 CBS방송에 밝혔다. CBS방송이 입수한 터너의 휴대폰에는 터너가 예전부터대마초와 술을 즐긴 정황이 포착됐다. ‘분위기에 휩쓸려’ 반강제적으로 술을 마시게 됐다는 터너의 주장과는 대치된다는 것이라고 방송은 설명했다.

/munja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