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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탠퍼드대 성폭행 사건을 둘러싼 두 개의 편지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지난해 1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을 둘러싼 두 개의 편지가 화제다. 두 편지를 계기로 미국 대학 내 성폭행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편지 하나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었고, 다른 하나는 전 세계적인 비난을 받았다.

편지 하나는 피해 여성이 법정에서 직접 낭독한 것이다. 합의 하에 이뤄진 성관계였다는 가해자 브록 터너(20ㆍ전 수영선수)와 변호인의 주장에 피해 여성은 묵묵히 편지를 낭독했다. 그녀는 “나는 다음날 신문을 통해 내가 무슨일을 당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며 “스스로에게 환멸감을 느끼고 모든 것이 혼란스럽던 찰나, ‘가해자는 피해자가 합의했으며 기뻐했다고 말했다’는 문구를 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가 잃은 것은 수영선수 자격, 학위 등 눈에 보이는 것들이지만 나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며 “오늘까지도 인간으로서 나의 가치와 에너지, 시간, 자신감, 목소리를 빼앗기고 있다”고 말했다. 

성폭행 혐의에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형벌이 수영선수로서의 삶에 “가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징역 6월과 보호관찰 3년의 가벼운 형벌을 받은 브록 터너

편지에는 피해자를 ‘가해자’로 모는 미국 법원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피해자는 “변호사는 파티에 같이 갔던 내 동생의 증언이 논리적이지 않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며 “사건과 관련없는 사소하고도 황당한 질문들을 수없이 받았다”고 밝혔다.

이날 샌타클라라 지방법원은 가해자 브록 터너에게 징역 6월과 보호관찰 3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징역 6년을 구형했지만, 재판을 맡은 애런 퍼스키 판사는 터너가 전과기록이 없는 데다 형벌이 수영 선수로서의 삶에 “가혹한 영향”(severe impact)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터너는 법정에서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인 줄 몰랐으며, 피해자가 좋아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터너와 피해 여성의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각각 미국 법정 허용치의 2배와 3배를 넘어선 상태였다.

관대한 처분에 스탠퍼드 대학생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이 분노했다. 하지만 분노를 부추긴 것은 다름아닌 가해자 터너의 아버지가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였다.

터너의 부친인 댄 터너는 탄원서를 통해 “터너의 삶은 사건 발생 이후 360도 달라지게 됐다”며 “행복으로 가득찼던 그의 삶은 걱정과 공포와 우울감으로 가득차게 됐다”고 호소했다. 이어 “20년 인생에서 20분동안의 일을 가지고 치뤄야 하는 대가치고는 혹독하다”고 주장했다. 

브록 터너의 아버지인 댄 터너가 “20년 인생에서 20분동안의 일로 치뤄야 하는 대가치고는 혹독하다”며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 해당 편지는 스탠퍼드대 학생뿐만 아니라 미 전국민의 비난을 받았다.

성폭행범이 부친의 편지 하나로 되려 피해자로 비쳐진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터너의 탄원서가 공개되자 대중은 터너가 백인인데다 유명 대학에 재학 중인 유망 운동선수였기 때문에 법조망을 피할 수 있었다고 분노했다. 심지어 워싱턴포스트(WP) 등 매체들은 터너와 관련된 기사에서 ‘강간’(rape)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미국민을 대표하는 수영선수, 스탠퍼드 대학서 의식없는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 유죄 판결”이라는 제목을 사용해 소식을 전했다. 같은 대학 캠퍼스 내 성폭력 사건이라도 가해자가 흑인일 경우 매체는 제목에 ‘강간’과 ‘강제’라는 단어를 빼먹지 않고 사용했다.

온라인 청원사이트 ‘체인지’에서는 퍼스키 판사의 사임과 재판결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한창이다. 서명운동에는 2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스탠퍼드 대학 교수진들은 단체를 구성해 퍼스키 판사의 사임을 촉구하기 위한 활동에 나섰다. 11일 치뤄질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학생들은 집회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아틀란틱스와 CNN, USA투데이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한 두 개의 편지를 통해 미 전역이 인종ㆍ성별을 둘러싼 차별 및 대학 내 성범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며 “스탠퍼드대 성폭행 사건은 무수히 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이 왜 경찰에 신고하기를 꺼리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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