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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는, 왜?]아동 음란 화상 채팅이 ‘가족사업’?…아동 음란 화상 채팅의 아이러니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지난 2011년 필리핀 경찰은 ‘니콜(13ㆍ가명)’이라는 소녀의 집을 급습했다. 방 한 칸짜리 집의 침대 위에서는 11ㆍ7ㆍ3살 여동생들이 침대 위에서 야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니콜은 키보드를 두드리며 백인 남성들과 채팅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부모를 체포하고 아이들은 보호시설로 넘겼다.

필리핀에서 아동 음란 화상 채팅이 빈곤 가정의 생계 유지를 위한 ‘가족 사업’처럼 운영되며 성행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아동 성적 학대를 막기 위한 국제 공조까지 이뤄지고 있지만, 단순히 도덕적 잣대만을 들이대기에는 문제가 복잡해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동 음란 화상 채팅은 비교적 최근 나타난 신종 범죄다. 인터넷 속도 향상, 휴대폰 카메라 성능 개선, 국제 자금 거래 활성화 등에 힘입어 빠르게 늘고 있다.

UN에 따르면 이미 수만 명의 아이들이 이 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시장 규모도 미화 10억 달러(1조1500억 원)에 달한다. 주로 선진국의 남성이 저소득 국가 소녀들의 성을 산다는 측면에서 보면, 화상 채팅이라는 형태만 새로울 뿐 기존 성매매와 본질은 동일하다. 오히려 음란 채팅 한 번에 5~200 달러밖에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수요층의 저변은 훨씬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는 필리핀에서는 선진국의 성매수자와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확장세가 더욱 크다. 당국은 2010년대 초반에 이를 인지하기 시작했고, 적발 건수도 2013년 57 건, 2014년 89 건, 2015년 167 건으로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가정에서 은밀하게 행해지고 있어서 실태 파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해 필리핀 사이버범죄수사국에 접수된 온라인 아동 성적 학대 신고가 1만 건이 넘는다는 점은 전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어떤 경우는 한 지역 사회 전체가 음란 채팅 사업으로 경제가 운용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서비스 이용 고객들은 전 세계에 퍼져 있다. 필리핀 아이들은 주로 아침에는 미국ㆍ유럽의 남성과 오후에는 호주의 남성을 상대로 채팅을 한다. 아동 문제에 관한 네덜란드 자선단체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는 2013년 ‘스위티(Sweetie)’란 대화명으로 10살짜리 필리핀 사이버 아동을 만들어 고객의 출신 국가 파악에 나섰다. 그 결과 10개월 동안 70여개 국가에서 2만명이 넘는 남성들이 말을 걸어왔으며, 그 중 1000명은 음란행위를 요구했다.

국제 사회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아동 음란물 근절을 위한 국제사법기관 모임인 ‘가상 TF’(Virtual Global Taskforce)와 인터폴은 올해 아동 음란 화상 채팅 근절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이 달에는 유니세프가 아이들에게 온라인 세계의 위험성에 대해 교육하는 캠페인을 시작할 예정이며, 온라인 아동 학대 관련 국제 동맹인 ‘위프로텍트(#WeProtect)’가 1000만 파운드의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명확한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우선 수사 상 어려움이 있다. 화상 채팅은 사진이나 영상 등 기존의 아동 음란물과 달리 증거가 남지 않는다. 자금 흐름을 추적해서 돈을 보낸 고객을 찾아내더라도 아이가 아닌 어른의 음란 행위에 대가를 지불한 것이라고 잡아떼면 처벌이 어렵다. 화상 채팅이 이뤄지는 현장을 덮치는 것이 대안이지만 구체적인 혐의 사실이 없다면 영장이 발부되지도 않는다. 때문에 수사관들은 자신도 성매매 종사자인 것처럼 위장해서 소녀들을 꾀어 일정 정도 혐의점을 잡은 뒤에 현장을 급습하는 식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니콜의 사례는 이 문제가 보다 근본적이면서도 잔뜩 뒤엉켜 있는 뿌리를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아이들이 일반적인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니콜네 집이 처음 음란 채팅을 시작한 것은 아이들이 먼저 제안했기 때문인 것으로 조사 결과 밝혀졌다. 아이들은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이웃집에서도 그런 식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부모에게 제안했다. 부모가 집을 비웠을 때는 아이들끼리 알아서 음란 채팅을 했다.

성윤리를 제대로 교육받아 본 적도 없는데다, 주변에서 모두 하고 있기 때문에 범죄라거나 학대라고 인지를 못한 것이다. 보호 시설 관계자는 아이들이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문제를 이해하기 어려워하고 있으며 행동 방식도 학대 피해자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태연하다고 전했다. 아이들은 오히려 경찰에 적발돼 부모와 떨어져 살게 된 것이 불만이다.

음란 채팅으로 아이들이 혜택을 본 측면도 있다. 니콜네 집은 경제적으로 다소 나아졌고, 니콜의 어머니는 아이들만 남겨둔 채 공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게 됐다. 니콜의 어머니는 고작 초등학교 1학년만 마쳤을 뿐이지만, 니콜은 그보다 훨씬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빈곤이라는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채 부자 나라의 도덕적 잣대만을 들이대는 것이 한가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범죄 피해자가 곧 범죄의 공모자이자, 범죄의 수혜자가 된 아이러니한 상황. 국제 사법 당국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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